북극권을 찾아서(1)
2008.06.16 23:08
북극권을 찾아서(1)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중) 김 호 택
싱그러운 계절 5월의 끝자락 어느 날, 푸른 빙하를 자랑하는 북극권을 찾았다. 나는 넉넉한 계절만큼이나 마음의 양식을 얻고자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은 백야의 나라 러시아,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을 둘러보기로 했다.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지 10여시간만에 러시아의 옛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공항에 도착하였다.
러시아상공 비행 중 갑자기 기내방송이 나왔다.
“긴급 상황이 발생하였으니 손님 중 의사선생님이 계시면 ○○좌석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어와 한국어로 방송을 하였다. 이때 외국인 1명과 한국인 2명이 달려가 응급조치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자 외과교수와 여자 내과의사는 우리 팀이었다. 서로 돕고 사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여행기간 내내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다. 인천공항에서 오후 5시에 이륙했는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공항에 도착하니 현지시간으로는 밤 10시 30분이었다. 그런데도 해는 서산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잠시 뒤 낙조가 끝났으나 ‘백야(白夜)현상’으로 어두워지지 않아 앞산이 보일정도였다.
어릴 적부터 동토(凍土)의 나라로 기억한 러시아는 우리 한반도와 접해있지만 먼 나라로 생각되었다. 한반도 북단의 접경지역 블라디보스톡(Vladivostok)에서 모스크바(Moscow)까지만 해도 기차로 7박8일, 비행기로는 우리나라와 거의 같은 비행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인구는 약 1억 5천만 명이고 면적은 1천 7백만여㎢로 한반도의 78배, 미국의 1.8배로 세계에서 제일 넓은 나라다. 우리나라와 시차는 6시간이 늦지만 3월의 마지막 일요일부터 10월의 마지막 일요일까지는 써머타임 기간으로 5시간이 늦다. 현대적인 빌딩들 사이로 러시아정교 첨탑들이 오색 빛을 발하는 곳이다. 레닌과 스탈린 시대 어둠의 흔적사이로 푸쉬킨(A. S Pushkin)과 톨스토이(L. N Tolstoi) 등이 상상력을 펼쳤던 곳 러시아,
사람들의 굳은 표정, 오랜 혼란의 시대를 거쳐 지금은 지속적으로 도약하고 있는 나라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문화예술의 거리 중심부에는 푸쉬킨(A. S Pushkin)의 동상이 있었다. 그 동상 앞에서 푸쉬킨의 ‘삶’에 대한 시 한 구절이 내 머리를 스쳤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러시아 분수들의 수도’라고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교외의 여름궁전에 가보니 바다를 바라보며 대궁전 앞 폭포와 몇 백 미터의 운하를 개설하였다. 양편의 분수들이 140여 개가 저마다 자랑하고 있었으며, 산위의 저수시설을 이용하여 자연분수로 장관을 이룬다고 했다. 당시 왕실에서 여름궁전은 별장, 네바강변 중심가 겨울궁전은 주거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힘에 의한 왕정(王政)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703년 피터대제의 절대왕정이 65개 운하를 만들고 100여 년 동안 수도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17년 10월 ‘볼셰비키혁명’으로 다음해 모스크바(Moscow)로 수도를 이전했다. 그 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스탈린이 ‘레닌그라드’로 이름을 바꿨다. 소비에트 시절의 레닌그라드를 거쳐, 1991년 공화국으로 다시 거듭나면서 그 명칭이 과거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회귀하였다. ‘닥터 지바고’의 배경도시이기도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역사, 문화, 예술의 도시로, 모스크바는 경제중심의 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넵스키 대로 카잔성당 옆 유료화장실을 가니 14루블(700원 상당)씩 받고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5개의 역(驛)이 행선지별로 모스크바 역, 핀란드 역, 바르샤바 역 등 도착지 이름을 붙여 특이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네바 강’은 수심이30여m, 폭이500m~2㎞이며 강물속도가 시속11㎞의 빠른 속도로 30여㎞거리인 핀란드만(灣)으로 흘러 ‘발트 해(Baltic Sea)’에 닿는다. 네바 강에는 14개의 다리가 있다. 이 다리들은 철골조개폐식으로 시설하여 ‘배’가 통과할 수 있도록 새벽1시부터 5시까지 일제히 열린다고 한다.
네바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에르미타쥐 국립박물관’은 약 300만점의 전시품을 소장한 세계적인 박물관이라고 하였다. 1,056개의 방과 117개의계단, 2천개가 넘는 창문으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한 규모의 박물관이다. 전시된 작품들을 한 점당 1분씩만 봐도 총 관람시간이 5년이 걸린단다. 서유럽미술관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 미켈란젤로, 등 우리와도 친숙한 화가들의 작품을 비롯하여 2시간여를 관람하였다. 겨울궁전인 ‘니꼴라이 대공궁전’에서 붉은 카펫을 깐 중앙계단을 올라 공작석 거실 원형식탁에 앉아 우리가곡 등 피아노연주곡을 들으며 우아하고 여유롭게 식사를 즐겼다. 나는 러시아 귀족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었다. 그리고 식사를 한 뒤 네바 강 유람선에서는 ‘선내 민속 쇼’가 공연되는 등 문화예술의 나라 러시아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항에서 1시간 반의 비행 끝에 모스크바(Moscow)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서 레닌그라드 대로를 따라가면 시내중심가에 있는 ‘크레믈린(Kremlin)’은 모스크바의 심장부로서 러시아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러시아어로 ‘요새’를 의미하는 크레믈린 안에는 15세기의 장대한 교회에서부터 현대적인 의회까지 다양한 건물이 있었다. 레닌, 스탈린,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으로 활동했던 곳이기도 하다. 대 크레믈린 궁전을 비롯하여 높이 2,235m에 이르는 크레믈린의 망루, 세계에서 가장 큰 황제의 종, 우스펜스키사원, 병기고 등 건물과 보물들이 감탄을 자아내는 러시아문화의 정수가 모여 있었다. 크레믈린 궁전을 돌아 나와 ‘붉은 광장’ 중심에 서고 보니 시대의 변화에 따른 감회가 새로웠다. 붉은 광장 주변에는 아직도 살았을 때의 모습 그대로 누워있는 ‘레닌의 묘’가 크레믈린 궁 장벽 밑에 있었다. 건너편에는 ‘굼(GUM)’국영백화점, 그리고 좌우에는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성 바실리 성당’과 ‘국립역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스크바 중심가와 대로 등에서 교통은 체증되었으나 많은 차들 중에 택시를 구경하기 힘들었다. 이곳은 콜(Call)택시만 운행되고, 손을 들어 자가용 불법운행차량을 아무데서나 이용한단다. 모스크바에는 교통체증이 심하여 시속100㎞를 달릴 수 있는 180㎞의 원형외곽순환도로가 있었다.
나는 호텔에 도착하여 호텔 앞 원형정원둘레에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 등 10개국 국기게양대에서 우리나라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어 깜짝 놀랐다. 반가운 마음에 교포가이드에게 물었다. 한국인들의 예약이 있어 태극기가 게양됐느냐고 하니 평소에도 그렇게 게양된다고 했다. 러시아에서 우리나라의 위상(位相)을 짐작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호텔마다 여권을 보관하도록 되어 있다고 현지 교포가이드는 일행의 여권을 수집하여 호텔에 맡겼다. 모스크바공항에서 중심가로 가는 차안에서 교포가이드가 몇 마디 러시아어를 가르쳐주었다. ‘도브라이웃드라’-아침인사, ‘뚜알렛’-화장실, ‘스빠시바’-감사합니다. 등으로 말했더니 웃으면서 상냥하게 대했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큰 ‘볼쇼이극장’을 비롯한 문화시설들은 웅장하였다. 시민들도 1주일에 2~3편은 공연을 관람하여 문화예술의 나라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우리나라 유학생들도 150여명으로 대부분 문화예술분야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하였다. 모스크바 국립대학은 모스크바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바라뵤비 언덕(구 레닌언덕)의 숲 속에 30층짜리 건물의 관리 탑이 있는 러시아 최고의 학부다. 입학은 아무나 들어 갈 수 있도록 쉬워도, 졸업은 어렵다고 하였다. 경관이 좋아 웨딩촬영을 하는 젊은이들도 눈에 띄었다. 군수산업은 우월한데 비해 민생경제는 어려워 보였으며, 러시아는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고 하였다.
러시아를 둘러보면서 절대적인 왕권에서 공산주의로 이어져 사회주의가 붕괴된 뒤 10여년이 지난 오늘날, 지극히 러시아적인 과거 권력의 흔적들과 더불어 봇물처럼 들이닥친 서구사회의 모습이 공존하는 아주 흥미로운 광경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모스크바공항에서 스칸디나비아항공으로 3시간여의 비행 끝에 덴마크 코펜하겐공항에 도착하였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중) 김 호 택
싱그러운 계절 5월의 끝자락 어느 날, 푸른 빙하를 자랑하는 북극권을 찾았다. 나는 넉넉한 계절만큼이나 마음의 양식을 얻고자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은 백야의 나라 러시아,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을 둘러보기로 했다.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지 10여시간만에 러시아의 옛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공항에 도착하였다.
러시아상공 비행 중 갑자기 기내방송이 나왔다.
“긴급 상황이 발생하였으니 손님 중 의사선생님이 계시면 ○○좌석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어와 한국어로 방송을 하였다. 이때 외국인 1명과 한국인 2명이 달려가 응급조치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자 외과교수와 여자 내과의사는 우리 팀이었다. 서로 돕고 사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여행기간 내내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다. 인천공항에서 오후 5시에 이륙했는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공항에 도착하니 현지시간으로는 밤 10시 30분이었다. 그런데도 해는 서산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잠시 뒤 낙조가 끝났으나 ‘백야(白夜)현상’으로 어두워지지 않아 앞산이 보일정도였다.
어릴 적부터 동토(凍土)의 나라로 기억한 러시아는 우리 한반도와 접해있지만 먼 나라로 생각되었다. 한반도 북단의 접경지역 블라디보스톡(Vladivostok)에서 모스크바(Moscow)까지만 해도 기차로 7박8일, 비행기로는 우리나라와 거의 같은 비행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인구는 약 1억 5천만 명이고 면적은 1천 7백만여㎢로 한반도의 78배, 미국의 1.8배로 세계에서 제일 넓은 나라다. 우리나라와 시차는 6시간이 늦지만 3월의 마지막 일요일부터 10월의 마지막 일요일까지는 써머타임 기간으로 5시간이 늦다. 현대적인 빌딩들 사이로 러시아정교 첨탑들이 오색 빛을 발하는 곳이다. 레닌과 스탈린 시대 어둠의 흔적사이로 푸쉬킨(A. S Pushkin)과 톨스토이(L. N Tolstoi) 등이 상상력을 펼쳤던 곳 러시아,
사람들의 굳은 표정, 오랜 혼란의 시대를 거쳐 지금은 지속적으로 도약하고 있는 나라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문화예술의 거리 중심부에는 푸쉬킨(A. S Pushkin)의 동상이 있었다. 그 동상 앞에서 푸쉬킨의 ‘삶’에 대한 시 한 구절이 내 머리를 스쳤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러시아 분수들의 수도’라고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교외의 여름궁전에 가보니 바다를 바라보며 대궁전 앞 폭포와 몇 백 미터의 운하를 개설하였다. 양편의 분수들이 140여 개가 저마다 자랑하고 있었으며, 산위의 저수시설을 이용하여 자연분수로 장관을 이룬다고 했다. 당시 왕실에서 여름궁전은 별장, 네바강변 중심가 겨울궁전은 주거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힘에 의한 왕정(王政)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703년 피터대제의 절대왕정이 65개 운하를 만들고 100여 년 동안 수도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17년 10월 ‘볼셰비키혁명’으로 다음해 모스크바(Moscow)로 수도를 이전했다. 그 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스탈린이 ‘레닌그라드’로 이름을 바꿨다. 소비에트 시절의 레닌그라드를 거쳐, 1991년 공화국으로 다시 거듭나면서 그 명칭이 과거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회귀하였다. ‘닥터 지바고’의 배경도시이기도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역사, 문화, 예술의 도시로, 모스크바는 경제중심의 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넵스키 대로 카잔성당 옆 유료화장실을 가니 14루블(700원 상당)씩 받고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5개의 역(驛)이 행선지별로 모스크바 역, 핀란드 역, 바르샤바 역 등 도착지 이름을 붙여 특이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네바 강’은 수심이30여m, 폭이500m~2㎞이며 강물속도가 시속11㎞의 빠른 속도로 30여㎞거리인 핀란드만(灣)으로 흘러 ‘발트 해(Baltic Sea)’에 닿는다. 네바 강에는 14개의 다리가 있다. 이 다리들은 철골조개폐식으로 시설하여 ‘배’가 통과할 수 있도록 새벽1시부터 5시까지 일제히 열린다고 한다.
네바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에르미타쥐 국립박물관’은 약 300만점의 전시품을 소장한 세계적인 박물관이라고 하였다. 1,056개의 방과 117개의계단, 2천개가 넘는 창문으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한 규모의 박물관이다. 전시된 작품들을 한 점당 1분씩만 봐도 총 관람시간이 5년이 걸린단다. 서유럽미술관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 미켈란젤로, 등 우리와도 친숙한 화가들의 작품을 비롯하여 2시간여를 관람하였다. 겨울궁전인 ‘니꼴라이 대공궁전’에서 붉은 카펫을 깐 중앙계단을 올라 공작석 거실 원형식탁에 앉아 우리가곡 등 피아노연주곡을 들으며 우아하고 여유롭게 식사를 즐겼다. 나는 러시아 귀족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었다. 그리고 식사를 한 뒤 네바 강 유람선에서는 ‘선내 민속 쇼’가 공연되는 등 문화예술의 나라 러시아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항에서 1시간 반의 비행 끝에 모스크바(Moscow)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서 레닌그라드 대로를 따라가면 시내중심가에 있는 ‘크레믈린(Kremlin)’은 모스크바의 심장부로서 러시아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러시아어로 ‘요새’를 의미하는 크레믈린 안에는 15세기의 장대한 교회에서부터 현대적인 의회까지 다양한 건물이 있었다. 레닌, 스탈린,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으로 활동했던 곳이기도 하다. 대 크레믈린 궁전을 비롯하여 높이 2,235m에 이르는 크레믈린의 망루, 세계에서 가장 큰 황제의 종, 우스펜스키사원, 병기고 등 건물과 보물들이 감탄을 자아내는 러시아문화의 정수가 모여 있었다. 크레믈린 궁전을 돌아 나와 ‘붉은 광장’ 중심에 서고 보니 시대의 변화에 따른 감회가 새로웠다. 붉은 광장 주변에는 아직도 살았을 때의 모습 그대로 누워있는 ‘레닌의 묘’가 크레믈린 궁 장벽 밑에 있었다. 건너편에는 ‘굼(GUM)’국영백화점, 그리고 좌우에는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성 바실리 성당’과 ‘국립역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스크바 중심가와 대로 등에서 교통은 체증되었으나 많은 차들 중에 택시를 구경하기 힘들었다. 이곳은 콜(Call)택시만 운행되고, 손을 들어 자가용 불법운행차량을 아무데서나 이용한단다. 모스크바에는 교통체증이 심하여 시속100㎞를 달릴 수 있는 180㎞의 원형외곽순환도로가 있었다.
나는 호텔에 도착하여 호텔 앞 원형정원둘레에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 등 10개국 국기게양대에서 우리나라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어 깜짝 놀랐다. 반가운 마음에 교포가이드에게 물었다. 한국인들의 예약이 있어 태극기가 게양됐느냐고 하니 평소에도 그렇게 게양된다고 했다. 러시아에서 우리나라의 위상(位相)을 짐작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호텔마다 여권을 보관하도록 되어 있다고 현지 교포가이드는 일행의 여권을 수집하여 호텔에 맡겼다. 모스크바공항에서 중심가로 가는 차안에서 교포가이드가 몇 마디 러시아어를 가르쳐주었다. ‘도브라이웃드라’-아침인사, ‘뚜알렛’-화장실, ‘스빠시바’-감사합니다. 등으로 말했더니 웃으면서 상냥하게 대했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큰 ‘볼쇼이극장’을 비롯한 문화시설들은 웅장하였다. 시민들도 1주일에 2~3편은 공연을 관람하여 문화예술의 나라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우리나라 유학생들도 150여명으로 대부분 문화예술분야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하였다. 모스크바 국립대학은 모스크바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바라뵤비 언덕(구 레닌언덕)의 숲 속에 30층짜리 건물의 관리 탑이 있는 러시아 최고의 학부다. 입학은 아무나 들어 갈 수 있도록 쉬워도, 졸업은 어렵다고 하였다. 경관이 좋아 웨딩촬영을 하는 젊은이들도 눈에 띄었다. 군수산업은 우월한데 비해 민생경제는 어려워 보였으며, 러시아는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고 하였다.
러시아를 둘러보면서 절대적인 왕권에서 공산주의로 이어져 사회주의가 붕괴된 뒤 10여년이 지난 오늘날, 지극히 러시아적인 과거 권력의 흔적들과 더불어 봇물처럼 들이닥친 서구사회의 모습이 공존하는 아주 흥미로운 광경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모스크바공항에서 스칸디나비아항공으로 3시간여의 비행 끝에 덴마크 코펜하겐공항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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