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온 편지

2008.06.06 10:32

김병규 조회 수:723 추천:2

미얀마에서 온 편지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병규
“재해를 입은 이들에게 전달할 옷이 필요합니다. 헌옷도 상관이 없습니다.”이는 미얀마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는 조명택 문우의 편지글 서두입니다.
문우는 고급장교 출신으로 수필반에서 우리와 함께 공부를 했습니다. 그 인연으로 행촌수필문학회의 회원 신분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문수학하며 내가 느낀바로, 그는 고급장교출신 답게 의협심이 강하고 의리가 있으며 정이 두터운 분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남겨둔 채 타국에 가서 선교활동을 착수한 용기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편지를 받고서 나는 가슴이 무거웠습니다. 우리가 도와줄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이가 들어 경제활동이 중단되고, 소득이 없어 자식들의 짐이되고 있는 탓에 나서지 못하고 망설였습니다.

미얀마는 우리 나라에 6.25 전쟁이 일어나 위태로웠을 때 도와준 우방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와서 피를 뿌리며 싸워준 혈맹의 나라입니다. 결국 우리가 많은 빚을 진 나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의 동란 때처럼 몹시 어려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싸이클론 나르기스의 강타라는 큰 천재지변(天災地變)이 발생하여, 2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고, 25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여 구호의 손길이 필요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특히 5살 이하의 어린이 3만 명이 심한 영양결핍증으로 죽어가고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습니다.
일제말, 영양가 없는 콩깨묵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던 내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8.15광복과 6.25전쟁의 혼란기에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한 경험도 우리에게 있슴니다. 당시 곡기를 먹지못하여 얼글이 퉁퉁부어 부황으로 죽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토록 지긋지긋하고 처참한 과거를 지닌 우리들이었기에,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이 없어 죽어가는 어린 생명들의 모습이 더 애절하게 떠오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드리면 문이 열린다더니, 다행스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행촌수필문학회(김정길 회장)와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원우회(서진숙 회장)가 미얀마 난민 돕기로 뜻을 같이 했습니다.
원우회 2008년봄 행사날은 5월 28일 이었습니다. 4천 명에 가까운 회원 중에 관광버스 2대의 인원만 모였습니다. 행촌에서는 김정길 이기택 이수홍 이강애 이의 김금례 최정순 김병규 등 8명이 참석했습니다. 남녀의 구성비가 딱 맞은 행촌가족은 서로 마음이 맞았습니다. 일행이 전주시내를 벗어날 때 목마르던 대지에 단비가 내렸습니다. 비에 젖은 숲길을 지나고 모내기가 한 참인 들길을 지나 순창군에 있는 장류연구사업소에 도착했습니다. 사업소 사무실은 산뜻하고 쾌적했습니다. 그 곳에서 행사가 이루어졌습니다.

1부행사에서는 순창군 부군수의 군정현항과 장류사업개항을 실감있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순창군정의 알찬 실상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일행 모두에게 푸짐한 선물도 주었습니다. 그 내용물이 순창고추장통을 포함 알차고 실속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교육원장의 특강도 있었습니다.
2부행사에서는 서진숙 원우회장의 미얀마 돕기 배경설명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김정길 행촌회장은 미얀마의 처참한 실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돕자는 간절한 호소를 했습니다. 전 회원은 감동적인 환호로 뜻을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8명의 행촌 가족이 앞장서서 모금함으로 달려갔습니다. 공감한 회원들은 호주머니를 털어 모금함을 채웠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보람지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의 지난 날을 돌아보면 어려운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8.15 광복 전 일제는 마지막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우리 땅의 곡물은 모두 수탈해 가고 영양가 없는 콩깨묵을 배급했습니다. 6.25 전란 뒤에는 흉년마져 계속들어  풀뿌리 나무껍질로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독새풀씨를 털어다 볶아서 물에 말아 마실 때면 목에 걸려 쾍쾍거리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 때는 누구나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고충속에서도 내 어머니는 하루 한끼정도는 우리들에게 곡기를 먹여 우리 형제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 어려운 세상에서도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을 보호하여 기를 지혜가 있었던 듯 싶었습니다. 어릴 때 내 친구들 중에는 살결이 노랗고 얼굴이 팅팅 부어올라 부황으로 죽은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지금 미얀마의 실상이 그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배고픈 세상을 살아왔기에 미얀마 어린이들 생각이 더 간절하게 떠오릅니다.

천재지변으로 초토화된 땅에서 구호의 손길을 거머쥐고 동분서주하는 조명택 문우의 장한 모습이 자랑스럽게 떠오릅니다. 내 손자같은 어린 아이 3만 명이 죽어가는 모습도 떠오릅니다. 그래서 우리의 보다 적극적인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이곳에 보내신 하나님께서 이때에 일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땀 흘리기로 했습니다.”이렇게 당찬 마음으로 일하는 조명택 문우에게 뜨거운 격려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옷 1매(3000원)와 스레트 한 장(5000원)이 미얀마 난민 구호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원우회와 행촌수필문학회에서는 미얀마 난민 돕기성금함을 설치하였습니다. 미얀마에서 도움 받았던 옛 정을 회상하면서 많은 분들의 동참하여, 옷 수집함과 모금함을 찾아주시기를 호소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2008.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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