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지털세대

2008.06.26 19:03

정영권 조회 수:746 추천:9

아나지털세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정 영 권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가 디지털(Digital)이고 그 상대되는 개념은 아날로그(Analog)다. 전자와 통신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하고 변화하면서 아날로그는 디지털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생활풍습이나 문화도 그러하거니와 사상까지도 그 시류에 휩쓸려버렸다.

   우선 식생활을 두고 보자. 대가족을 이루고 살던 옛날에는 가장이 중심이었다. 가장이 식사를 해야 다른 식구들이 따라 먹었다. 음식도 가장의 취향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핵가족시대로 접어들면서 가장의 입지는 낮아지고 좁아졌다. 식사시간도 각자의 활동양식에 따라 달리하고 있다. 음식 역시 외식이 많아졌고, 가정에서 식사를 하더라도 제각기 취향대로 먹는다. 그러다보니 주부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 반찬까지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식생활도 점차 서구화되어 간다. 우리 집만 하더라도 아버지가 아니면 나는 아내와 아이들에 밀려서 옛날의 토속적인 음식을 맛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어른을 어떻게 모시는가. 옛날에는 효친(孝親)이 가장 큰 덕목이어서 늙으신 어른들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른들에게 문안을 드리며 안색부터 살피고 불편한 것은 없었는지 여쭈어야 했다. 어른이 심심하지 않도록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까지 말동무를 해드리거나 재롱을 떨었다. 식사 수발은 물론이요 의복이며 소일거리 그리고 잠자리에 이르기까지 성심을 다해 봉양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모시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겨우 식사나 차려드리는 정도가 아닌지. 의복이나 잠자리도 손수 챙기는 건 아닌지. 소일거리 역시 스스로 찾고 외로움도 혼자서 견뎌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거동이 불편하여 자리에 눕게 되면 복지시설이나 요양병원에 의탁하고 돈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많다.

  우리 아버지는 기력은 좀 떨어지셨지만 건강상태는 괜찮은 편이라 다행이다. 아내가 좀 힘들어하지만 그래도 슬기롭게 견디며 그런대로 모시고 있으니 참으로 고맙다. 다만 태생이지만 내가 아버지에게 살갑게 대해드리지 못한 점이 항상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방식은 어떤가. 옛날이라고 해서 부모가 자식을 키우고 가르치는데 무심하고 소홀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 정도가 좀 심한 것 같다. 부모 중에서도 어머니들이 자식에게 쏟는 정성은 대단하다. 옛말에 여자는 결혼하기 전에는 부모에게 의지하고, 결혼해서는 남편에게 의지하며, 늙어서는 자식에게 의지하게 된다고 했던가. 그래서 소위 보험 차원에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자식을 키우고 가르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마치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듯하다. 아이들은 거기에 내둘려 동심을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다. 그러다보니 엄부자모(嚴父慈母)가 아니라 엄모자부(嚴母慈父)로 변모되는 것 같다. 옛날의 어머니상이 자애와 희생이었다면 요즘의 어머니상은 집착과 열정이라고나 할까.
  자식 잘 키우겠다는 게 어찌 잘못이랴 만 어른 모시는 것과 대비하여 생각해 보면 씁쓸하다. 우리 부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생각하면 저마다 타고난 개성과 재능 그리고 소질이 다른데 너무 욕심을 부려 다그친 것 같아 미안하고 후회가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그려본 세태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더 심한 사례도 있을 것이다. 다만 주변에서 보고 느낀 시류변화의 대강을 한 번 짚어 보았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어느 세대에 살고 있을까? 아날로그시대를 건너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내면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연로하신 어른들은 아날로그세대이고 아이들은 디지털세대라 할만하다. 나 같은 중장년층은 그 중간 정도인 아나지털(Analgital)세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나는 아날로그도 디지털도 아닌 어정쩡한 회색세대이다. 아나지털세대가 아날로그 어른을 모시고 디지털 아이들을 거느리고 살다보니 혼돈스러운 점이 많다. 그래서 이해하고 배려하며 이해도 시키고 설득과 충고도 해야 하는 완충역할이 필요하리라.
  디지털은 간편한데 아날로그는 불편하다고 한다. 디지털은 과학적인데 아날로그는 정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이 동(動)적이라면 아날로그는 정(靜)적이라 할 것이다.
  사람은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어야 온전하다고 하듯이, 우리 사회도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가르침도 있지 않는가? 아날로그세대의 옳고 바른 사상과 정서는 이어받아 건전한 디지털사회로 승화시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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