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난 머슴들
2008.07.11 12:30
화난 머슴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기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데 화가 날만도 하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이명박 대통령 불신임안을 표결하려는 대의원집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의견은 저마다 다르리라.
대통령이 누구인가?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선거를 통해 위임받은 국가의 행정권을 총괄하는 최고위 공무원으로서 거의 모든 공직자의 임명권자다. 그런데 자기들의 최고 수장인 대통령을 공직자들이 불신임하려 한다니, 이치로 따져서는 말도 안 되는 짓거리다. 설사 공무원노동조합에서 불신임안이 통과된다 해도 아무런 법적효력도 없다. 하지만 오죽이나 답답하면 공직자들이 그런 불신임투표까지 하려고 했겠는가 하는 동정론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주인인 국민은 머슴인 공무원들에게 정치가 어떻게 바뀌고, 언론이 무어라 떠들던 누구의 눈치를 볼 것 없이 “그저 귀먹은 중 마 캐듯”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공정하게 열심히 일만하는 공직자가 되기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주인이 바라는 공직자가 되려면 우선 근무환경부터 제대로 만들어 주어야한다. 공직자가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라도 자기의 소신이 옳다고 생각할 때는 ‘No!’라고 말할 수 있고, 정권에 줄을 서거나 아부하지 않아도 신분에 영향을 받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확실한 직업공무원제도가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거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잡은 자들은 직업공무원제도를 철 밥통 운운하며 흔들어대고,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기관단체장들을 전 정권에서 임명되었다 하여 사표를 내라고 종용하고, 사표를 내지 않으면 특별감사나 사정기관의 힘을 동원하여 강제로 퇴출시키며, 업무진단도 해보지 않고 일률적으로 공직자들의 수를 몇 % 줄이라고 하는가 하면, 기구를 통폐합하는 등, 힘의 논리로 밀어붙인다. 공직자들을 전 정권의 시녀노릇이나 하고, 그저 철학도 영혼도 없는 집단으로 매도하며 기죽이는 발언만을 예사로 한다. 나는 비록 퇴임했지만 공직에서 34년이나 몸담았던 까닭에 속이 상해서 밤잠을 설친 때가 더러 있었다.
제5공화국 시절, 함께 근무했던 존경스런 과장님이 제출했던 사직서의 문구가 생각난다.
“세도불급(勢道不及)하여 삭발위승(削髮爲僧)하고 수도(修道)코자 자이 사표 제출(辭表 提出)함.”
사직서의 내용은 세도가 너희들에게 미치지 못하여 중이 되어서 수도를 하려고 사표를 제출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명문의 사표를 내셨던 과장님은 공직자로서 청백할 뿐만 아니라 정이 깊고 한도 많으셨던 어른이었다. 간혹 나와 술을 마시다가 눈물 바람을 하시던 과장님께서는 대도시에서 근무하시다가 바른말을 잘하고 바르게 업무처리를 하다가 억울하게 우리 군으로 좌천 되어 명문의 사표를 제출하여 당시 우리 공직사회에서 명성이 높은 분이었다. 그렇다. 어느 조직이나 대동소이하겠지만 특히 공직사회에서는 바른말을 많이 하면 모난 돌이 정 받는다는 속담처럼 손해 보는 일이 많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벙어리처럼 산다.
공직자들은 승진을 낙으로 삼고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부처의 장관자리는 물론 차관자리와 지방의 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 모두 정치인들의 몫이 되어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특정부서는 개방형직위 도입이다 뭐다 하면서 정치인들이 계속 밀고 들어와 승진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거기다 봉급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머물고, 무엇 하나 만족스럽지 않아 일할 맛이 나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옛날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직자들을 사냥터에서 잡은 노획물이나 전쟁터에서 얻은 전리품 정도로 취급해도 옛날 공직자들은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속앓이를 하면서도 맡은 일을 충실히 해서 나라가 이만큼이나 잘살게 되었다.
요즘 미국 산 쇠고기수입, 남북문제, 경제침체 등 나라사정이 여러 가지로 어려워 국민 모두가 걱정하고 있다. 이럴 때는 억울하고 아픈 마음을 호소하면서도 맡은 일은 더욱 충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참된 머슴이라면 선거에 당선되어 주인처럼 행세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실질적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기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데 화가 날만도 하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이명박 대통령 불신임안을 표결하려는 대의원집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의견은 저마다 다르리라.
대통령이 누구인가?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선거를 통해 위임받은 국가의 행정권을 총괄하는 최고위 공무원으로서 거의 모든 공직자의 임명권자다. 그런데 자기들의 최고 수장인 대통령을 공직자들이 불신임하려 한다니, 이치로 따져서는 말도 안 되는 짓거리다. 설사 공무원노동조합에서 불신임안이 통과된다 해도 아무런 법적효력도 없다. 하지만 오죽이나 답답하면 공직자들이 그런 불신임투표까지 하려고 했겠는가 하는 동정론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주인인 국민은 머슴인 공무원들에게 정치가 어떻게 바뀌고, 언론이 무어라 떠들던 누구의 눈치를 볼 것 없이 “그저 귀먹은 중 마 캐듯”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공정하게 열심히 일만하는 공직자가 되기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주인이 바라는 공직자가 되려면 우선 근무환경부터 제대로 만들어 주어야한다. 공직자가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라도 자기의 소신이 옳다고 생각할 때는 ‘No!’라고 말할 수 있고, 정권에 줄을 서거나 아부하지 않아도 신분에 영향을 받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확실한 직업공무원제도가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거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잡은 자들은 직업공무원제도를 철 밥통 운운하며 흔들어대고,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기관단체장들을 전 정권에서 임명되었다 하여 사표를 내라고 종용하고, 사표를 내지 않으면 특별감사나 사정기관의 힘을 동원하여 강제로 퇴출시키며, 업무진단도 해보지 않고 일률적으로 공직자들의 수를 몇 % 줄이라고 하는가 하면, 기구를 통폐합하는 등, 힘의 논리로 밀어붙인다. 공직자들을 전 정권의 시녀노릇이나 하고, 그저 철학도 영혼도 없는 집단으로 매도하며 기죽이는 발언만을 예사로 한다. 나는 비록 퇴임했지만 공직에서 34년이나 몸담았던 까닭에 속이 상해서 밤잠을 설친 때가 더러 있었다.
제5공화국 시절, 함께 근무했던 존경스런 과장님이 제출했던 사직서의 문구가 생각난다.
“세도불급(勢道不及)하여 삭발위승(削髮爲僧)하고 수도(修道)코자 자이 사표 제출(辭表 提出)함.”
사직서의 내용은 세도가 너희들에게 미치지 못하여 중이 되어서 수도를 하려고 사표를 제출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명문의 사표를 내셨던 과장님은 공직자로서 청백할 뿐만 아니라 정이 깊고 한도 많으셨던 어른이었다. 간혹 나와 술을 마시다가 눈물 바람을 하시던 과장님께서는 대도시에서 근무하시다가 바른말을 잘하고 바르게 업무처리를 하다가 억울하게 우리 군으로 좌천 되어 명문의 사표를 제출하여 당시 우리 공직사회에서 명성이 높은 분이었다. 그렇다. 어느 조직이나 대동소이하겠지만 특히 공직사회에서는 바른말을 많이 하면 모난 돌이 정 받는다는 속담처럼 손해 보는 일이 많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벙어리처럼 산다.
공직자들은 승진을 낙으로 삼고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부처의 장관자리는 물론 차관자리와 지방의 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 모두 정치인들의 몫이 되어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특정부서는 개방형직위 도입이다 뭐다 하면서 정치인들이 계속 밀고 들어와 승진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거기다 봉급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머물고, 무엇 하나 만족스럽지 않아 일할 맛이 나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옛날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직자들을 사냥터에서 잡은 노획물이나 전쟁터에서 얻은 전리품 정도로 취급해도 옛날 공직자들은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속앓이를 하면서도 맡은 일을 충실히 해서 나라가 이만큼이나 잘살게 되었다.
요즘 미국 산 쇠고기수입, 남북문제, 경제침체 등 나라사정이 여러 가지로 어려워 국민 모두가 걱정하고 있다. 이럴 때는 억울하고 아픈 마음을 호소하면서도 맡은 일은 더욱 충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참된 머슴이라면 선거에 당선되어 주인처럼 행세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실질적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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