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최고야

2008.07.13 10:20

김영옥 조회 수:747 추천:9

발이 최고야
                            행촌수필문학회 김영옥


                                                        

  우리 지체 중 가장 천하게 여겨온 것이 이렇게 귀한 것인 줄 미처 몰랐다. 가장 고귀한 얼굴이나 머리만 다듬느라 온갖 힘을 쏟으면서 이것은 그냥 따라만 다니는 하찮은 걸로 여겼다가 큰 코를 다쳤다.

우리 몸은 크게 머리, 가슴, 배, 팔, 다리로 나누고 오장으로는 심장, 비장, 간장, 폐, 신장이 있으며 육부에는 위장, 담낭, 소장 대장, 자궁, 방광이 있다. 눈, 코, 귀, 입, 혀의 오관이 있고 뼈, 근육, 맥, 살, 피부 등 5체가 있는가하면 손가락도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듯 많은 지체들이 모여 몸을 구성하여 살아간다. 이 많은 것들 중에 하나라도 고장이 나면 우리 몸은 불편을 겪는다.

  얼마 전에 나는, 눈이 잘 못 살폈는지, 머리가 지시를 잘못했는지, 발이 잘못한 건지 모르지만 땅을 보지 않고 걷다가 조금 패인 길바닥에서 발목을 삐어 넘어질 뻔하였다. 마침 친구와 손을 잡고 걸었기에 넘어지진 않았지만 땀이 바짝 나도록 놀랐다. 하룻밤 자고나니 발목이 부어오르면서 발을 딛고 다닐 수가 없었다. 얼굴이었다면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겠지만 발이기에 따뜻한 물로 주무르고 약만 바르면서 견뎠다. 몸 중에서도 가장 아래에 있는 발이라고 무시한 것이다. 절뚝거리고 다니면서 지내다 3일 만에 병원엘 갔더니 뼈에는 이상이 없지만 오래 가니 되도록 걷지 말고 아끼라고 당부했다. 앉고 일어설 때나 걸음을 걸으면 다른 쪽 다리와 허리, 온몸이 아프니 갈 곳은 많은데 마음대로 갈 수 없어 짜증만 나고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곰곰 생각하니 다른 지체보다 차별하고 천대한 것이 사실이다. 씻을 때도 얼굴, 손 다 씻고 맨 마지막에 더러워진 물에 씻고, 얼굴에는 깨끗한 수건으로 닦아주면서 발은 낡은 수건으로 아무렇게나 닦는 등 함부로 취급했다. 남이 알아주는 얼굴과 손에는 고급화장품을 발라주며 신경을 썼지만 발에는 그 흔한 크림 한 번 발라주지 않았으니 잘못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걸었을 때부터 70여년 넘게 사용했으니 몇 천 킬로나 걸었을까. 다른 누구보다 걸음도 더 많이 걷고 살아온 내 발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안쓰럽기 그지없다. 그러니 발이야말로 화가 나서 투정을 부릴만도 하다. 발이 고분고분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그 많은 곳을 어떻게 휘젓고 다닐 수 있었겠는가?

우리 몸의 지체도 이러하거늘 이 사회구조도 마찬가지려니 싶다. 우두머리 자리에 앉아 머리만 굴리고 펜대만 잡고 앉아 지시하고 지배해야만 제일이라는 생각은 바꿔야 할 것 같다. 말단 현장에서 직접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는 사람들,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있기에 이 사회가 잘 살 수 있게되지 않았던가. 몸의 지체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고 필요하듯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도 모두가 귀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할 것 같다. 여러 지체들의 역할은 달라도 목적은 하나다. 건강한 몸으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이기에, 높다 낮다 하면서 차별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려니 싶다.

이 사회는 아직도 높은 권좌에 않거나 많이 가진 자들이 못 배우고 없는 사람들을 아끼고 잘 돌봐야 하거늘 오히려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화가 되면서 차츰 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 사상이 남아있어 사람들은 벼슬 한 자리 얻으려고 안간힘을 다한다. 자식들에게 지식을 넣어주려고 모든 부모들이 허리띠를 동여매는 이유도 높은 자리에서 대접받고 살게 하려는 게 아닐까. 사실 이기적인 못 된 생각을 하는 것은 몸의 머리지 발이 하는 게 아니다. 발은 거저 머리의 지시대로 옮겨 놓았을 뿐이다. 위아래 구성원 모두가 서로 존중하면서 이 사회를 위하여 각자의 능력대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잘하는 일이 아닐까? 꼭 내 발처럼 말이다.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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