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술(仁術)을 베푸는 명의(名醫)

2025.11.08 21:22

김수영 조회 수:32

 

인술(仁術)을 베푸는 명의(名醫)

미국에 이민   온 지도 44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정착하느라 정신 없이 바빴다. 그 와중에 과로로 독감에 걸려 고생하게 되었다. 어떤 의사를 찾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낯설고 물선 이국땅에 모든 것이 생소하여 어리둥절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의사를 찾던 중 신문에 의사 개업 광고를 보게 되었다. 다행하게도 집 근처에 그 병원이 있었다. 흉곽내과 전문의로 호흡기 계통 모든 질환을 치료한다는 광고였다. 아 참 다행이다. 만성 기관지염을 앓고 있는 데다 설상가상으로 독감이 걸렸으니, ,내가 찾고 있던 바로 그 의사가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전화로 예약하고 병원을 찾아갔다. 진한 경상도 사투리로 맞이하는 의사는 나의 호감을 사게 되었다. 내가 경상도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다짜고짜로 병세를 물어보아 답변을 하면서 치료받게 되었다.

개업한 후 놀랍게도 내가 제 1호 환자라며 정성을 다해 치료해 주었다. 의사의 치료와 사랑을 듬뿍 받는 기분이었다. 독감 치료가 끝난 다음에도 만성기관지염 치료에 두 달여 걸렸다. 의사는 내가 살고 있는 집까지 찾아와서 건강하게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어보곤 했다. 내 평생 의사가 환자 집까지 찾아와 병세를 물어보고 인사하는 의사는 처음 보았다. 아 이 의사야말로 내가 평생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믿음이 가는 의사구나 생각하니 신뢰가 가기 시작했다.

   그때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44년 동안 이어져 왔다. 나의 주치의로 믿을 수 있는 인술을 베푸는 명의로 내 마음에 자리매김했다. 내가 오늘날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이 물론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이 명의를 만나게 되었고 연약했던 내가 건강을 유지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이 모두 이 의사 덕분이라 생각하면 고마움이 북받쳐 오른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의사를 찾게 되었는데 내년 1월에 병원 문을 닫고 은퇴한다고 말했다.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의사 선생님도 평생 환자들을 돌보느라 고생했기 때문에 은퇴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지만, 나는 앞으로 어떤 의사를 만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물론 이 의사는 나의 건강을 돌보는 명의이지만, 인간적으로도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분이다. 처음 이민 와서 남편이 비즈니스를 실패했을 때 내 사정을 듣고 난 후 생활비에 보태어 쓰라며 봉투를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나만 보면 이 원수를 어떻게 갚지?하면서 우스갯 소리를 하곤 했다. 내가 미국회사에 취직하여 좋은 보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치료비를 다 지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년에 미수를 맞이하는 나이임에도 내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또한 인술을 베푸는 명의를 만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2025년 11월 5일 중앙일보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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