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0 16:00
그날 버스 정류장 이희숙
버스가 오지 않는 요양병원 정류장이 있다 멀어져 간 그림자처럼 텅 빈 채로 남아 우리의 못다 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등하교 때마다 어김없이 기다렸던 안내원이 꾹꾹 밀어 넣던 만원 버스 풀 먹인 카라는 구겨지고 하얀 운동화는 시커멓게 밟혔다 비 오는 날 우산 들고 기다리던 엄마 퇴근길에 발걸음 서두르던 아버지 어딘가로 가는 설렘에 들떠있던 때가 있었다
바람이 차가웠던 그 날 햇살은 희미하게 흔들리고 지나가는 차 소리만이 우리가 남긴 대화를 대신하며 고요히 숨 쉬고 있는 버스 정류장 말없이 마음으로만 가득 찼던 오랜 기억 속 장소로 멈춘 듯하지만 시간은 천천히 녹아 과거와 현재가 겹쳐진다
가족이 보고 싶어 무작정 나가 집을 찾는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기억을 더듬으며 워커에 의지한 힘없는 다리로 버스 정류장을 향한다 기억을 잊는다는 건 누구나 가까운 날에 마주하는 일이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그러나 기다림은 끝나지 않는다 - 어르신 버스가 늦게 오나 봐요 잠시나마 마음을 달래주려 한다 기다리는 어르신네 눈빛에 편안한 쉼이 담긴다
움직이지 않는 정류장이지만 마음은 여행 중이다 기억의 조각들이 마음을 두드리며 여전히 벤치 위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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