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05 11:39
뒤늦게 피운 꽃 이희숙
철 지난 가을바람이 지나다가 하늘가를 스친다 세월에 쓸린 등뼈를 허옇게 드러내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곁에 머무르리라 기대하지 못했는데 줄기 타고 꿈틀거리며 짙은 색으로 또렷해진다
앙상한 가지에서 태어나 드러나지 않는 몸짓으로 끝내는 밝은 빛 머금는 꽃망울 본디 모습을 확인한다
고희에 받은 문예창작과 졸업장 늦은 나이에 마주한 원고지는 지나간 흐름을 몸으로 밀고 나가 깊이를 품는다 쌓인 시간을 한 자 한 자 눌러 담는다 잔주름 사이 녹아든 글줄기 되어 흐른다 이야기는 바로 지금부터 시작된다
묵혀둔 씨줄과 날줄을 엮어 버티며 걸어온 자신의 빛깔로 깨운다 잉크가 닳아 더는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보이지 않는 길을 만날 때까지 꿈을 피우기 위해 펜을 고쳐 잡는다
뒤늦은 만큼 더 애틋하게 온 누리에 남기고픈 나의 조각들 살아있음 그 자체로 찬찬히 피어나 괜찮아! 나의 시간은 결코 늦지 않다 여태 걸어온 흔적을 꽃이라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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