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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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250130/1549996

월리를 떠나보내며

이희숙

 

  우리 집 와이파이 패스워드는 Wall-e703이다. Wall-e는 개 이름이고 703은 입양된 날짜다. 월리는 14년 전에 우리 가족이 되어 이제 16살이다. 산에서 주인을 잃고 헤매던 강아지를 딸 친구가 하이킹 길에서 발견했고, 우리가 입양 절차를 밟아 데리고 왔다. 월리는 산속에서 혼자 겪은 아픈 경험으로 예민하고 불안해했지만, 곧 적응했다. 성격이 밝고 사람을 좋아해 누구에게나 사랑받았다. 막내 자리를 차지했기에 하이킹이나 여행할 적엔 개를 허용하는 장소와 호텔을 택해 동행했다.  

  그런데 5년 전부터 그의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숨이 가쁘고 가슴 부위가 뚱뚱해지며 힘겹게 움직여 병원을 찾은 후 의사로부터 슬픈 사실을 들었다. 심장이 커지고 신장에 이상이 생겨 6개월밖에 살 수 없다고 했다. 시중에서 파는 사료 대신 신장에 좋은 음식으로 직접 만들어 먹이며 정성을 기울였다.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월리가 쉴 수 있는 소파와 헝겊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집 안 구석구석에 CCTV를 달아 핸드폰으로 그를 모니터링했다.  

  월리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동생 두비를 입양했다. 그 동생에게 월리는 모든 걸 양보했다. 곁에 돌봐야 하는 생명이 있어서였는지 그 결과 생명을 연장받았다. 이제 사람의 나이로 90세가 넘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요도가 막혀 소변을 못 보았다. 수술로 많은 돌멩이를 끄집어냈지만, 몇 달 후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입원해 소변을 빼내도 일시적인 방법일 뿐 치료 효과는 없었다. 이에 따르는 합병증으로 인해 고심해야 했다.

  이젠 의사가 주사로 잠을 재우자고 했다. 이별을 준비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동생 두비도 무언가를 느꼈나 보다. 다가오는 사람을 경계하고 무섭게 짖으며 월리를 지켰다. Dog Bakery를 찾아 맛있는 케이크를 사 오고, 손주와 조카 등 가족을 불렀다. 월리와 한자리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송별 자리라고 할까? 더 이상 고통을 주지 않고 편안한 상태로 보내주기로 마음을 다져 먹었다. 우리 집 뜰을 돌아보며 큰 나무 아래 월리가 잠들 자리를 마련했다.  

  이별은 슬픔, 후회와 미련이라는 여운을 안겨준다. 월리가 여기저기 싸 놓은 소 대변을 치우며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았던가. 떠나보내고 난 후 마주하는 빈자리에서 연민과 아쉬움 가운데 빠진다. 함께 나누었던 추억, 웃음, 눈물, 그리고 그 시간이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주인 없는 침대, 밥그릇, 옷가지들, 마주한 상황들을 보며 단순히 우리의 관계가 끝난 게 아니라는 걸 느낀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겠다. 모든 관계는 영원할 수 없으니까. 그가 곁에 머물렀던 시간 동안 내게 주었던 교훈과 감정을 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이별은 새로운 사랑을 위한 자리를 만들 수도 있다.  

  월리는 평온한 모습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너 갔다. 잿빛 하늘은 부슬부슬 비를 뿌린다. 메마른 땅을 적시듯 월리와의 추억이 내 마음에 스며든다. ‘Be with me’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희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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