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의 선율
2004.10.03 12:21

이 계절의 정서에 가장 잘 들어맞는 악기는 첼로가 아닐까?
첼로의 선율은 무르익은 중년 남성의 목소리를 닮았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중에 하나가
바로 중년 남성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하긴 삶의 간난신고(艱難辛苦)도 겪을 만큼 겪었고,
그래서 노련해 보이기도 하고 여유로와 보이기도 해서일까?
여담이지만, 이 시기의 남성들이 소위 [바람]에 흔히 시달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를 듣기 좋은 말로 [그레이 로맨스]라 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르익었으며 그 무르익은 값을 해야지,
인기 좋다고 한철 메뚜기 꼴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특히 중년에 해당되는 분들은 가을을 조심해야 한다.
봄바람은 여인들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하고
가을바람은 사내들의 가슴을 뒤흔든다 하지 않던가?
이 바람의 계절을 탈없이 넘기기 위해서라도
오늘 들려드리는 음악에 귀 기울이시길 권한다.
물론 평소 자주 들으시던 곡이리라 믿는다.
그런데 오늘 들려드리는 것은
보통 듣던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 아니라
피아노가 오케스트라 부분을 대신하고 있는 곡이다.
원래 관현악 반주가 주는 풍성함 혹은 심오함,
작곡가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고양된 낭만성,
그 종교적 분위기를 이 연주에서 느끼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또 곡 중반 이후,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곤 하는 첼로와 하프,
그리고 대규모 관현악이 조성해주는 신묘한 화성도 물론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정갈한 피아노의 반주로 인하여 더욱 살아나는 듯한
첼로의 절묘한 음색은 더욱 확연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작곡자 막스 브르흐(Max Bruch, 1838 - 1920)는
바하 못지 않게 기독교 정신에 투철했던 음악가로
기악보다는 합창이나 독창의 종교적 성악곡을 주로 작곡했다.
독일 출신인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음악박사 학위를,
베를린 대학에서는 신학 및 철학박사 학위를 보내올 만큼
학식 또한 높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경건한 신앙심을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성악곡에도 불구하고 그를 유명하게 해준 것은
이 [콜 니드라이]와 세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 기악곡이다.
[콜 니드라이 / 히브리 선율에 의한 첼로, 관현악, 하프를 위한 아다지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곡은
두 개의 히브리 찬송가 선율을 근거로 한 변주곡 형태를 띠고 있다.
곡 중간에 독주악기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부분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고,
그래서 연주자에게 상당한 기교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첼리스트라면 누구나 연주하고 싶어하는 곡 중의 하나다.
[콜 니드라이(Kol Nidrei)]의 의미는 [모든 맹세 혹은 약속]이다.
원래 유태교에서 속죄일 전야의 예배 초에 부르는 기도문의 이름으로,
이 기도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실행하지 못한
하나님에 대한 모든 맹세를 모두 없었던 것으로 하고
모든 율법의 위배도 용서하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출발,
즉 거듭남을 다짐하는 의미가 서려있는 것이다.
이 또한 가을의 정취와 어울리는 내용이 아닐까?
왜? 가을은 기도하는 계절이라고 알려져 있으므로...
"가을엔 기도 하게 하소서.
그 기도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게 하소서...."

첼로 연주는 매혹적인 영국 출신 첼리스트
자클린느 뒤 프레(Jacqueline du Pre, 1945-87)가 맡고 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렘보임(Daniel Barenboim)의
부인이기도 했던 그녀의 때 이른 죽음은
많은 음악 애호가들을 안타깝게 했었다.
첼로 독주 부분을 듣고있노라면
첼로가 흐느끼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이 곡은 늦가을 커피 한잔을 마주하고 듣다보면
떨어지는 낙엽에게 말을 걸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한다.

[Kol Nidrei / Jacqueline du Pre]
출처블로그 : 환희! 그리고 부자가 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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