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것이 아닌, 누군가의 고통 · W.H.오든

2004.10.03 13:48

강학희 조회 수:4701 추천:7




모두의 것이 아닌, 누군가의 고통 · W.H.오든










브뤼겔의 「이카로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 1558

Musees Royaux des Beaux-Arts de Belgique at Brussels
























|  이카루스의 추락






Bruegel, Pieter -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c. 1558, Oil on canvas, mounted on wood, Musees Royaux des Beaux-Arts de Belgique, Brussels




  영국 시인 오든(W.H Auden)은 브뤼셀을 방문했을 때 피터 브뢰겔

(Bruegel, Pieter,1525?-1569)의 그림들을 보고는 「미술박물관」
이라는
한 편의 시를 썼다. 아름다운 시의 형식을 빌린 한 장의 생각은 이렇다.


이 그림을 보라.

대가들은 인간사 속에서 고통이 차지하는 위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이들이 먹거나, 창문을 열거나, 길가를 걷고 있는 동안,

또 다른 이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 찾아온다.

물론 기적과 경이 역시 그렇기는 하다. 머나먼 세기의 어느 12월,


베들레헴을 향해서 동방 박사라 불리는 세 명의 노인이 경건한 마음으로

혹은 불타는 열망으로 기적적인 탄생을 바라며 달려갔다. 그러는 동안


작은 마을의 숲가에서 어린 아이들은 거울처럼 맑게 언 호수 위를 미끄러져

노는 데
정신이 팔렸을 뿐, 특별히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끔찍한 순교
역시 세계의 한 구석에서 일어날 뿐이다.


브뢰겔이 그린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the Fall of Icarus),


어쩌면 그렇게 모든 것이 이 재난에 무심할 수 있을까? 농부는 아마

첨벙 소리와 함께 곤두박질치는 이카루스의 외마디 비명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열하는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면서 촛농으로 날개를 붙인

소년의 어리석음이 농부에게 중대한 실수는 아니었다.

태양도 평소와 다름없이 사방을 비추었다.

오른쪽 한 구석에 그려진 녹색 바다. 그 속으로

사라져가는 이카루스의 다리가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 소년의 추락을 틀림없이 목격했을 호화로운 여객선도

가야 할 목적지를 향해 고요히 운항을 계속했다.



그런데 그 무엇이 화가를 사로잡았을까? 그는 무엇 때문에,

생략할 수도 있었을 소년의 하얀 종아리를 세밀하게 그리고, 캔버스의

작고 작은 귀퉁이만을 점유한 이 사건을 작품의 제목으로 내걸었을까?


나도 오든(W.H Auden)처럼 감탄할 수밖에 없다.

모든 대가들은, 우리의 고통이 충격적인 파국(破局)이 아니라,

지루한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컨대,

내가 어느 노상카페에서 파리지엔느처럼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림의

머나먼 한 구석에서, 몇 십 원을 받고 하루 종일 커피콩(Coffee Beans)을

따던 아이가 일사병으로 쓰러진다. 언제쯤 나는 16세기의 세밀화가처럼

내가 그려진 이 세계의 고통을 온전히 느끼고 묘사할 수 있을까?

※ 글 : 진은영 시인.




Wolf-Ferrari, The Jewels of Madonna














 Musee des Beaux Arts
미술박물관  /  W. H. Auden (오든)



About suffering they were never wrong,

The Old Masters: how well they understood,

Its human position; how it takes place

While someone else is eating

or opening a window or just walking dully along;

How, when the aged are reverently, passionately waiting

For the miraculous birth, there always must be

Children who did not specially want it to happen, skating

On a pond at the edge of the wood:
They never forgot

That even the dreadful martyrdom must run its course

Anyhow in a corner, some untidy spot

Where the dogs go on with
their doggy life and the torturer's horse

Scratches its innocent behind on a tree.


고난을 이해함에 있어 옛 거장들은 그릇됨이 없었다.

고난이 인간 삶의 어떤 곳에 위치하고 있는지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식사중이거나, 창을 열거나, 혹은

맥없이 걷고 있을 때... 고난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노인들이 경건하고 열렬하게 기적 같은 탄생을 기다리는 동안

숲속 연못에는 스케이트를 타며 이를 별로 원하지 않는

어린애들이 늘 있음을. 거장들은 잊지 않았다.

무서운 순교조차, 어떻게든 어느 한 구석, 개들이 개처럼 살아가고,

고문자의 말이 애꿎은 궁둥이를 나무에 비벼대는

어느 지저분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In Brueghel's Icarus, for instance: how everything turns away

Quite leisurely from the disaster; the plowman may

Have heard the splash, the forsaken cry,

But for him it was not an important failure; the sun shone

As it had to the white legs disappearing into the green

Water; and the expensive delicate ship that must have seen

Something amazing, a boy falling out of the sky,

Had somewhere to get to and sailed calmly on.



예를 들어, 브뤼겔의 '이카루스'를 보자. 어쩌면 모든 것이

그처럼 유유하게 재난을 외면하고 있는가. 농부는 아마도

그 첨벙 소리, 그 외로운 외침소리를 들었으련만,

그에게 그 소리는 대단한 실패가 아니었던지.

태양은 푸른 바다로 사라지는 하얀 두 다리에 예사롭게
내려 비췄고, 값비싼 유람선은 뭔가 놀라운 광경을,

한 소년이 하늘에서 추락하는 것을 보았으련만,
어딘가 갈 곳이 있어, 조용히 항해를 계속해 갔던 것이다.




이 시는 오든(W. H. Auden)이 벨지움의 브뤼셀에 있는 <미술박물관>

(Musee des Beaux Arts)을 방문하였을 때,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플랑드르 화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hel the Elder,1525~69)의

<이카로스의 추락>을 보고 감명을 받고 쓴 것이다.

그림은,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얼마나 무관심한가

를 그지없이 잘 표현하였음에, 그는 감탄한다.


Icarus: 서구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다이달로스(Daidalos)의 아들.

미로(迷宮, labyrinth)를 만든 뒤 감옥에 갇힌 아버지와 함께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붙이고 크레타 섬(Creta Ⅰ)을 탈출하다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 가까이 날다 밀랍 날개가 녹는 바람에 바다에 추락하고 만다.

다이달로스와 함께 예술가의 원형으로 기억된다.









Funeral Blues - W. H. Auden, 1936  






Stop all the clocks, cut off the telephone,

Prevent the dog from barking with a juicy bone,

Silence the pianos and with muffled drum

Bring out the coffin, let the mourners come.


Let aeroplanes circle moaning overhead

Scribbling on the sky the message He Is Dead.

Put crepe bows round the white necks of public doves,

Let the traffic policemen wear black

cotton gloves.


He was my North, my South, my East and West.

My working week and my Sunday rest,

My noon, my midnight, my talk, my song;

I thought that love would last forever;
I was wrong.


The stars are not wanted now: put out every one;

Pack up the moon and dismantle the sun;

Pour away the ocean and sweep up the wood;

For nothing now can ever come to any good.



시계를 모두 멈춰라, 전화도 끊어라

개에게 뼈다귀를 주어 짖지 말게 하라

피아노를 연주하지 말고 북은 소리를 죽여

관을 내어 놓고 조문객들을 맞으라



비행기를 머리 위에 띄워 탄식하며

하늘에 “그가 죽었다”는 글자를 쓰게 하라

비둘기들의 흰 목에 검은 상장을 두르고

교통경찰에게 검은 면장갑을 끼게 하라


<그는 나의 동, 서, 남, 북이었고

내 일상의 노동, 내 일요일의 휴식

나의 정오, 나의 자정, 나의 대화, 노래였다

나는 사랑이 영원하리라 여겼으나,
틀린 생각이었다



이제 별들은 필요 없다. 다 꺼버려라

달도 치워버리고 해도 없애 버려라

바닷물도 빼버리고 숲도 없애 버려라

이제 그 어느 것도 다 소용 없나니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Four Weddings And A Funeral, 1994)

Charlie and Fiona - Can't Smile Without You.








Four Weddings And A Funeral 의 ' hot n cold - kate perry'


















영국 태생의 시인. 1930년대의 대공황기에 좌파 문인의 중심적 인물로 명성을

떨쳤다. 의사였던 아버지와 간호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처음에는

과학에 관심을 두어 생물학을 공부하였으나 1922년에 시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1925년에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해서 그곳에서 시인으로서의 이름을 날렸다.


데이 루이스(C. Day Lewis), 루이스 먹니스(Louis MacNeice),

스티븐 스펜더(Stephen Spender) 등의 시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쳐

이들의 이름이 오든과 함께 거론되는 수가 많다.

저널리즘에서는 이들을 보통 <오든 그룹 Auden Group>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혁명적 정치학을 가진 대표적인 좌파 시인 그룹으로 알려졌다.


오든의 시 경력은, 1939-46 : 미국 시민으로 귀화하여

종교적 지적 사고에서 결정적인 변화를 맞는 시기. 기독교적 색채가 강해진다.

1948년에 <불안의 시대 The Age of Anxiety>로 퓰리쳐 상 수상.

1948- : 매년 유럽을 방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지에 머물면서

친구 시인 테스터 칼만(Chester Kallman)과 함께

오페라 대본(opera libreto)을 쓰기도 하고
평론과 시집을 편집하기도 하고 번역을 하기도 한다.

이 마지막 시기에 그는 볼링겐 상(1953), 전미도서상(1956) 등 많은 상을 받는다.

1956-61년에는 옥스퍼드 대학 시학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쏘스 제공: Yoons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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