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부르 비너스 여신상 발굴현장

2004.10.09 17:00

박상준 조회 수:927 추천:14

루부르 비너스 여신상 발굴현장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염원은 끝이 없다.
신화 속의 미를 대표하는 여신 아프로디테.
이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는 지금 루부르 박물관 긴 회랑 맨 끝에 자리하고 
방문객들을 맞이 하고 있다. 신화 속에서만 보았던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의 현실세계 환생 작품이다.

루부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밀로스 섬의 비너스를 보기 전에 우선 
신화 속 비너스를 만나 보자. 
비너스는 그리스 말 아프로디테 의 이태리식 이름이다.


신화 속의 아프로디테

 
아프로디테는 키프로스 섬의 파포스 (또는 키테라 섬) 근해의 거품 
속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크로노스가 아버지인 우라노스의 남근을 절단
하여 바다에 던지자 남근 주위에 정액의 거품이 모여 여기에서 여신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녀가 섬에 올라오자 에로스와 기타 여신들이 마중 
나오고, 그녀가 가는 길에 꽃이 만발했다고 한다. 

아프로디테의 별명인 아나디오메네는 '바다에서 올라온 것', 키프리스는 
'키프로스 섬사람'이란 뜻이다.호메로스에 따르면,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로서 헤파이스토스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
는 그의 외모와 다리를 못 쓰는 불구 때문에 아내가 없었다. 
하지만 헤파이스토스는 올림포스 신들 중 최고의 손재주를 지녔다. 

올림포스의 신들이 티탄족들과 최고의 자리를 놓고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을 때, 헤파이스토스는 번개라는 무기를 발명하여 이것을 제우스에게 
선물로 줬다. 당시 제우스는 티탄족을 무찌를 수 있게 해주는 자에게 
신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번개로 제우스는 티탄족들을 하나하나 토벌했다. 
그 댓가로 제우스는 아프로디테를 그의 아내로 맺어 주었다. 하지만 
헤파이스토스가 대장간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프로디테와 함께 하지 
않자 아프로디테는 전쟁의 신 아레스와 밀회를 하기 시작하였다. 

호전적인 성격임에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아레스는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받았다. 아레스는 아프로디테와 함께 그녀의 남편인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를 피해 자주 밀회를 즐겼다.

 이를 지켜본 태양신 아폴론이 헤파이스토스에게 이 사실을 밀고하자, 
헤파이스토스는 청동을 가늘게 늘여서 짠 그물을 만들어 아프로디테의 
침대에 쳤다. 이것을 모르고 아레스와 밀회를 즐기던 아프로디테는 
헤파이스토스를 보자 아레스와 함께 자리를 피하려 하지만 그물에 걸려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여러 신들에게 망신을 당하였다. 

포세이돈이 두 사람을 풀어주라고 설득하자 헤파이스토스는 아레스가 
보상을 하겠다는 포세이돈의 보증을 받고 두 사람을 풀어준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도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는 계속 교제를 하였다. 서로에 대한 
관리도 철저히 하였지만, 아프로디테가 아도니스에게 반하자 아레스는 
멧돼지로 변하여 그를 받아 죽이고 만다.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에오스가 아레스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가 
사랑하게 되는 인간은 모두 죽는 저주를 내린다. 아레스는 아프로디테와의 
사이에서 공포를 뜻하는 포보스와 두려움을 뜻하는 데이모스, 에로스, 
하르모니아를 낳았다. 







 
이 여신상은 사랑과 미의 여신인 밀로 섬의 비너스로 기원전 100년 경에 
제작된 헬레니즘 시대의 걸작품 이다.

약간 몸을 비틀고 있는 자세에서 어디에서도 볼수 없는 독특한 곡선미가
드러난다. 어느 각도에서 바라다 보아도 비너스의 아름다움은 완벽하다.
.





 

밀로의 비너스는 고대 비너스의 조각 머리 부분이 완벽하게 붙어 있는 조각품이기에 가치가 더더욱 크다.

보기 드믈게 얼굴 모양 전체, 그리고 몸통 전체가 거의 완벽하게 발견 되었다.

그런 이유로 작품은 루부르의 보물로 꼽힌다.

 

밀로의 비너스는 1820년 4월 8일 당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밀로스 섬의
농부 요르고스 켄트로타스에 의해 발견되었다.
발견될 당시 하체 부분과 몸통으로 두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며칠 후 프랑스 해군 장교 쥘 뒤몽 드위빌이 이 조각상의 중요성을
인식, 터키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마르키 드 리비에르를 설득해
조각상을 구입했다.
이 조각상은 1821년 루이 18세에게 헌납되었으며,
이후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헌데 밀로의 비너스에겐 팔이 없는 것일까?
왜 승리의 여신의 날개를 복원 하듯, 팔을 복원하지 않은 것일까?

사실 당시엔 비너스의 복원을 위한 여러 가지 안이 검토 되었다.
잠시 그 시안들을 살펴 보자.

비너스가 머리에 장신구를 꼽고 잇는 모습도 있고,
커다란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보는 모습도 있다 .
기둥에 팔을 얹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이것은 두 팔을 복원한 상상도 이다.




 
갖가지 복원 시안 중 한가지가 특히 눈길을 끈다.
 
비너스의 복부를 자세히 살펴 보면 동그란 모양의 작은 흔적이 있다.
이 동그란 흔적이 비너스상 복원을 위한 연구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 하게 된다.
사실 오른쪽 팔은 흔적이 있는 곳과 붙어 있는 상태 였다.
즉 오른손이 반대편 옷자락 위에 놓여 있었던 것이엇다.
 
 
 
그렇디면 왼팔은 어땠을까?
왼쪽 어깨의 근육형태를 미루어 보아 어렵지 않게 짐작 할 수 있다.
아마도 팔을 이렇게 들고 있었을 것이다.
 
어째서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었을까?
 

 
 
벌국현장에서는 몸통과 함께 다른 것들도 나왔다.
발굴된 조각상 파편 중엔 왼쪽 손으로 추정된 조각이 있었는데,
무언가를 쥐고 있던 형상 이었다.
까마득한 옛날 부터 사과는 사랑의 상징 이었기에 밀로의 비너스도
사과를 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발굴현장
 
아랫 사진은 밀로스 섬의 제일 큰 도시 플라카 이다.
화살표가 비너스 상이 출토된 발굴 현장 이다.
원형 점선은 야외 반원형 극장이다. 
 


 
 
비너스 상이 발견 된 현장은 기대 보다는 매우 초라 했다.
산 기슭에 이렇게 팻말 하나 붙어 있을 뿐이다.
 
이곳의 지형은 특이하게도 사암층으로 되어 굴이 곳곳에 뚫려져 있다.
비너스 상도 어떤 한 굴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부르 박물관 큐레이터들의 결정
 
루부르는 비너스가 사과를 든 손을 앞으로 뻗어 내밀고 있었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큐레이터들은 그렇게 복원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밀로의 비너스가 팔이 없는 상태로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팔을 만들어 붙히면
비너스의 신비로움이 깨질까 두려워 했다.
루부르의 큐레이터들은 불필요한 복원을 단호하게 거부함으로써
극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해 냈다.
 

 
 
전편에서 소개한 승리의 여신상 니케의 얼굴은 이 정도의 미모를
지니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이번엔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은 밀로의 비너스도 또한 관람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승리의 여신상과 밀로의 비너스 이 두 작품의
전혀 다른 접근방식으로 이루어낸 성공적인 루부르의 뛰어난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가상공간의 인용 가능한 자료들, NHK Documentary 에서 발췌)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24
어제:
52
전체:
671,8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