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 그 신비로운 미소의 비밀

2004.10.11 02:00

김정숙 조회 수:640 추천:16

모나리자 - 그 신비로운 미소의 비밀  








모나리자 - 그 신비로운 미소의 비밀

Leonardo Da Vinci   "Mona Lisa" (La Joconda), 1503-05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모나리자의 초상'이다.
이것은 바로 '리자'라는 이름을 가진 피렌체의 한 부인의 초상화다.


 레오나르도의 '모나리자'처럼 지나치게 유명해져 버리면 그런 명성은 하나의 미술 작품으로서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만 할 수 없다.


우리는 그림엽서나, 심지어 광고에서까지 너무 자주 모나리자를 보아 온 나머지 그 그림을,


 한 남자가 피와 살을 지닌 한 여인을 그린 작품으로서 참신하게 보기가 어렵게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그 그림에 대해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모두 잊고, 마치 그것을


처음 대하는 것처럼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감탄스러운 것은 모나리자가 놀라울 만큼 살아 있는 것같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녀는 실제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녀 나름의 영혼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그녀는 우리들 눈 앞에서 변화하며 우리가 되돌아와 다시


그녀를 볼 때마다 매번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심지어 이 그림의 사진에서조차 우리는 이와 같은 이상한 느낌을 체험하며 루브르 미술관의


 원화(原畵)는 거의 괴기스러울 정도다.


 때로는 우리를 비웃는 것처럼 보이고, 또 때로는 그녀의 미소에서 어떤 슬픈 구석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말은 모두 불가사의하게 들리지만 사실이 그렇다.


 모든 위대한 작품이 주는 효과는 바로 그런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나르도는 이러한 효과를 어떻게, 무슨 수단으로 이룩할 수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자연에 대한 이 위대한 관찰자는 그 이전의 어느 누구보다도 사람이 사물을 볼 때 두 눈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연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묘사할 수 있게 되고나자 미술가들이 부딪힌 문제 -


정확한 소묘와 조화있는 구성을 결합시키는 문제 -


못지 않게, 미묘하고 까다로운 또 하나의 문제를 레오나르도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마사치오(원근법을 회화에 처음 적용한 사람)가 터놓은 길을 따랐던 15세기 초 이탈리아 거장의 작품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즉 인물들이 어딘가 거칠고 딱딱하며, 마치 나무로 만든 것같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런 효과가 나타나게 된 것이 결코 인내심의 부족이나 지식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누구도 '반 아이크(Van Eyck)'보다 더 참을성 있게 자연을 모방할 수는 없었고,


 정확한 소묘와 원근법에 관해 '만테냐(Mantegna)' 보다 더 잘 알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자연 묘사는 매우 장려하고 인상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들은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조각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한 인물을 선은 선대로, 디테일은 디테일대로 보다 사실적으로 베끼면 베낄수록 우리는 그것이 실제로 움직이고 숨쉰다는 점을 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화가가 주문을 외우자 '잠자는 미녀'라는 동화 속의 사람들처럼 그 인물들이 영원히 돌로 굳어져 버린 것 같다.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미술가들은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예를 들어 '봇티첼리(Botticelli)'는 그의 그림 속에서 인물들의 윤곽이 보다 부드럽게


보일 수 있도록 물결치는 듯한 머리카락과 펄럭이는 옷자락 등을 강조했다.


 그러나 다만 레오나르도만이 이 문제의 진정한 해답을 발견했다.


 즉 화가는 반드시 보는 사람에게 무언가 추측할 여지를 남겨 주어야만 한다.


 만약 윤곽선이 그렇게 확고하게 그려지지 않고, 마치 연기 속으로 사라져 가듯이, 형태가


어딘가 애매한 데가 있다면 그런 메마르고 딱딱한 인상을 피할 수가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레오나르도가 창안(創案)한, 유명한 '스푸마토(sfumato)'이다.


 '스푸마토'란 이탈리아 말로서 한 형태와 다른 형태가 뒤섞여 들어가는 듯 항상 우리에게


상상할 구석을 남겨 놓는 흐릿한 윤곽선과 부드러운 색채를 가리킨다.

이제 모나리자 이야기로 되돌아가면 우리는 그 작품에서 어딘가 그 신비스런 효과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레오나르도가 그의 스푸마토 수법을 아주 교묘하게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종이 위에 얼굴을 그리거나 낙서해 본 일이 있는 사람은 그 얼굴의 표정이 주로 다음 두 가지 부분의 특징에 달려 있다는 점을 안다. 즉 그것은 입 가장자리와 두 눈 가장자리다. 레오나르도가 부드러운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가게 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애매모호하게 남겨 놓은 부분은 입 가장자리와 눈 가장자리 부분이다. 모나리자가 어떤 분위기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지 우리가 분명히 알 수가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녀의 표정은 항상 붙잡을 수 없다.

물론 그러한 애매모호함만이 이러한 효과를 생겨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배후에는 많은 것이 숨겨져 있다.


 레오나르도는 극도로 완벽한 솜씨를 지닌 대가(大家)가 아니고서는 감히 시도해 보기 힘든


 아주 대담한 작업을 했다.


 만약 그 그림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그 그림의 양쪽이 잘 들어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배경의 환상적인 풍경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왼쪽의 지평선은 오른쪽 지평선보다 훨씬 낮은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우리가 그림의 왼쪽에 초점을 맞추면 오른쪽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보다 그녀는


 더 키가 크게 보이거나, 또는 몸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얼굴도 또한 이러한 시점(視點)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 보인다.


 왜냐하면 얼굴조차 양쪽 부분이 완전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레오나르도가 이러한 매우 복잡한 트릭을 사용하여 어느 한도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면, 아마도 모나리자는 위대한 작품이 아니라 교묘한 요술을 부리는


 정도에서 그치고 말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손의 입체감이나 섬세하게 주름잡힌 소매를 묘사한 방식을 살펴보라.


 레오나르도는 자연을 끈기있게 관찰하는 데 있어서 그의 선배들 누구 못지않게 정성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러나 단지 그만이 자연에 '충실하게 순종'하지 않았다.


오래전 옛날 사람들은 두려움을 품고 초상화들을 보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술가가 형상(形象)을 보존함으로써 그가 묘사한 사람의 영혼을 보존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위대한 과학자인 레오나르도는 이 태고의 '형상제조자(Image Maker)'의 꿈과


 두려움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마술적인 붓끝으로 칠해진 색채 속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는 주문(呪文)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Attribuzione non determinata - “Cartone Mona Lisa”


 




‘모나리자가 중요한 것은 정면 초상화의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중시했던 르네상스 화가들은 인물의 생생한 표정 변화를 담기 위해 그전까지 그렸던 옆면 초상화를 정면으로 바꿉니다. 당시 명성이 자자한 초상화가들이 경쟁하듯 새로운 기법을 선보였지만 누구도 다빈치의 솜씨를 능가하지 못했습니다. 다빈치는 몸을 약간 비튼 포즈로 모나리자를 그렸어요.
이 포즈는 옆면 초상과 정면 초상의 장점을 하나로 결합한 것입니다.
그 덕분에 모나리자는 우아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1급 초상화로 창조되었습니다.’

◇설명 출처: 미술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들... /이명옥 지음 /304쪽 1만5000원/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들이 ‘뼈’라고 한다면 작품을 낳은 시대와 사회를 설명하고 ‘왜 그렸을까’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역사 사회적으로 작품의 의미를 풀어 내는 저자(이명옥)의 설명은 ‘살을 붙이는 작업’처럼 보인다.






'모나리자'…어? 모나리자가 임신을 했네










야스마사 모리무라의 ‘임신한 모나리자’(1998·왼쪽),
페르난도 보테로의 ‘모나리자’(1978·오른쪽).



나이 497세(추정).


 ‘착상’부터 계산하면 500년.
분명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지금도 ‘그녀’는 미의 상징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거처를 정한 뒤 고국 이탈리아로 유괴되거나(1911년) 팔꿈치에 돌을


 맞기도 했고(1956년) 국빈 대접을 받으며 미국 일본 등지를 여행하기도 했다.


 
화가와 작가들이 꾸며낸 상상력의 산물을 더하면 ‘그녀’ 는 훨씬 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다른 그림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고 깜짝 임신을 하기도 했다.


 


그동안 명성은 더욱 높아져 2000년 루브르 박물관 안내소가 받은 가장 많은 질문은


 ‘라 조콩드(모나리자의 프랑스어 제목)가 어디 있죠?’ 였다.



쏘스 제공: yoons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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