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도 세상이/강민경
여행에서 돌아온 뒤
오랜만에 오르는 첫 산행길이
예상과는 다르게
차가 들락거릴 만큼 폭넓고 환해서
마음을 놓는데 시샘이라도 하는 듯
남, 여, 구분도 안 되는 발자국으로
뒤엉킨 진창이 앞을 가로막는다
같은 무리가 되고 싶지 않아
옷자락을 거머쥐고
까치발로 앞만 보고 가는데
누군가가 옷자락을 잡아끌어
뒤돌아보는데 정신 차리라는 듯
딱 하고 이마를 때리는 나뭇가지의 당돌한 말
‘산속이라고 세상이 없는 줄 알면’ 큰 오산이라고
짓궂은 개구쟁이처럼 머리를 흔들며 노려본다
억울해서 울상이 되는데
재미있어하는 그이
세상은 어느 곳이라도 있는데
당신만 피해 가려 했으니
그 나뭇가지, 안타까워
심술이 동했나 봐 하며 웃는다
따라 웃을 수밖에 없는
나는
어느새, 여기를 건넌 사람들과
한 동아리로 얽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