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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자녀에게 동성애는 설마가 아니다
2018.04.21 10:05
자녀에게 동성애는 설마가 아니다
최근 기독교 모 기관에서 동성애에 대한 관심도를 설문조사하여 그 결과를 %로 발표한 일이 있었다. 동성애는 설문으로 관심도 조사를 하여 발표하거나 그 관심도 결과에 따라 여론을 형성, 유도하려거나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아예 금지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성으로 가정을 이루도록 축복하셨지 동성애를 조정하신 일은 어디에도 없다. 동성결혼은 가정 파괴의 길이며 인간을 멸망시키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이는 인간의 출생과 죽음을 인간이 변화시킬 수 없음 같이 절대적인 천륜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동성애는 죽음에 처해지는 형벌을 받았다. 구약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약에서도 이 죄악이 강하게 강조되고 있다(롬1:24-27;고전6:9,10).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交合)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20:13).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함. 이는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가 됨(딤전1:9,10).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롬1:24). 이 말씀이 26절과 28절에 다시 반복되고 있음을 주목하라. 바울은 짐승의 신격화(23절) 성적 타락의 보편화(26, 27절) 일반적인 죄가 만연되고 있는(29-32절) 이방 세계의 적나라한 우상숭배를 공격하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동성연애자들을 유전자의 결함자(선천적 신체장애자)라는 발표가 있는가 하면, 동성연애자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정상인'이라고 맞서고 있다. 연구가들에 의하면 동성연애(Homo Sexuality)는 이상 성욕의 일종으로 정상인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어떤 환경적 조건 밑에서 이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지만 이성애(異性愛)의 발달과 더불어 소실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동성애자들에게는 이성애의 발달이 급선무이다. 만일 동성애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때에는 일종의 변태성욕이 된다. 또한 통상적인 성적 자극에 마비된 사람이 동성애로 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동성애의 원인에는 생리적인 이상(異常, 주로 性腺分泌의 이상)에 의한 半陰陽的인 반응, 자기에 대한 성적 태도(자기 성욕)가 동성애에 투사되어 나타나는 경우(이상 성욕이 외적 조건으로 만족하지 못할 때) 등인데 일반적으로 남성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상호 자위 등에 생리적 만족에 의하여 조건강화가 이루어져서 치료가 곤란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성경을 거역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요, 인간 멸망의 길을 자초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교도의 나라,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동성연애가 확산되는 사실에 비참한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더구나 이런 습성이 개인이나 가정 사회에로 번지는 그 직전까지 도래했는데도 왜 이 사회는 말이 없는지, 동성연애자들의 낙원으로 변해가도 좋다는 것인지, 아니면 무능력해서 말 할 기운조차 없는 것인지, 참다운 아픔이 우리들 가슴을 끊임없이 방망이질하고 있다.
성숙한 자녀들을 거느리고 있는 가정마다 설마에 앞서 자녀들을 유심히 살피고 교육하는 철저한 예방책이 시급하게 도래해 있다. 학교에서 우리 자녀들에게 동성연애가 정상이라고 가르치게 되고, 동성결혼주례를 거부하면 형법에 저촉된다니, 과연 세상이 왜 이렇게 변해 가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확실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성경을 믿고 지키며 바로 살고자 하는 이들이 동성연애 폐기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운동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시련이 아닐 수 없다. 기도와 협력으로 우리의 역량을 다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시험의 강을 건너, 진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때가 어서 도래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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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2018.04.2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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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오
2018.04.24 02:07
우리 부모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녀들이 바른 성적경향을 가지길 바라지요.
일단 필자분께서 성경구절을 인용하셨트니까 성경구절로 댓글을 답니다.
레위기 20:10인가 이웃의 아내와 간통하면 둘다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보면 동성관계보다 남녀불륜관계를 더 잘봐주라고 되어있지 않습니다. 똑같이 죽음의 대상입니다.
필자분께서는 동성관계를 죽음의 제거 대상으로 보셨는데 성경말씀처럼 남녀의 불륜관계도 같은 대상으로 보시는지 의아스럽습니다.
어쨋든 예수님 자신도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시고 돌로 쳐죽임을 당하는 처지에서 구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성서적배경을 보면 동성애자만 죽여제거한다는 주장은 불합리합니다.
여기는 물론 토론장이 아니지만 일단 중대한 글을 올리셨기에 댓글을 달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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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
2018.04.24 11:22
샬롬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을 이기셨으므로 죄와 사망을 초월하신 구세주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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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2018.04.24 11:51
Ode to joy
너섬의 까마귀들/ 류 현
너섬(여의도)의 양말산 한쪽에
까마귀 삼백 마리가 우글우글 모여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
패거리로 나누어
대가리 털 다 빠지도록
사사건건 물고 뜯는 싸움질
고약한 냄새만 나고
대가리도 새 대가리니
검은 새 대가리에서
검은 것 이상 나오는 것이 없다
먹거리 찾는대만 이골이 나
황금빛 무궁화가 녹 쓰는 줄도 모르고
금방 자기가 한 말도 잊어버리면서
듣기 싫은 괴성만 내지르고 있다
차라리 저것들을
철새로 바꿀 수만 있다면
저 멀리 동토의 땅으로
날려 보내버리고 싶다.
- 계간 《애지》 2016년 봄호
..................................................
특정지역의 면적을 언급할 때 '여의도 면적의 몇 배'라는 식의 표현을 종종 듣는다. 장소의 넓이를 강조할 때 주로 사용된다는 건 알겠는데, 어째서 여의도가 그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도심에서 그만큼 편평한 땅덩어리가 별로 없고 많은 사람들이 어림짐작이지만 그 크기의 감을 잡고 있으리라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비교를 통해 단순수치만의 제공보다는 개괄로나마 그 크기를 짐작하기는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여의도 면적'이란 게 뚜렷한 기준치가 없이 각각 제 입맛대로 갖다 붙여져 도무지 신뢰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부처마다 다르고 같은 부처라도 발표하는 사안에 따라 또 달라진다. 행정구역상 여의도동 전체일 때가 있고, 수십 년 전 한강개발 이전 여의도 면적일 경우도 있다. 나도 서울 생활을 제법 한 편이지만 우리 같은 촌놈들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되레 헛갈리고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여의도는 오랫동안 들꽃과 억새들의 천국이었고 개발 전에는 군용비행장으로 사용되었던 ‘비무장지대’나 다름없는 땅이었다. 그런 곳이 70년대 이후의 본격적 개발에 힘입어 지금의 모습으로 크게 탈바꿈하였다. 국회의사당, 방송국, 63빌딩, 증권거래소, 전경련회관, 순복음교회, 종합안보전시관 등 이 나라의 상징적인 기관과 건물들이 줄이어 들어섰다. 금융 중심지역으로 서울의 맨하탄이라 흔히 불리지만 무엇보다 여의도는 우리나라 정치의 1번지이다.
민의의 전당에서는 300명 국민의 대표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불철주야 바쁜 일과를 보내신다. ‘방망이’로 상징되는 의사봉을 두들길 때마다 각종 법안이 통과되고 우리네 삶의 질은 개선된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늘 ‘까마귀 삼백 마리가 우글우글 모여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 ‘패거리로 나누어 대가리 털 다 빠지도록 사사건건 물고 뜯는 싸움질 고약한 냄새만’ 풍긴다. 이렇게 여의도는 거대한 소음과 스트레스 발생원이 된지 오래다.
혈세를 받아가며 일은 나 몰라라 하고 생트집으로 싸움에만 몰두해있다. 부도덕하고 무능력한 정권에서 벗어나 이제 제대로 굴러 가려나 기대했건만 민생법안과 개헌안마저 거들떠보지 않은 채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그들은 역지사지라 말하지만 과거 정권의 행태와 현 정권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한다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현 정권도 미숙하고 부족한 면이 적지 않다. 국민들이 수긍할만한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야당의 대안 제시도 필요하다.
정책으로 한수 위라는 걸 보여주고 환골 탈퇴할 때 보수 재건의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그들 가슴의 ‘황금빛 무궁화가 녹 쓰는 줄도 모르고’ 엉뚱한 곳에 몰려가서 염병을 떨고 있는 그들이 측은하기 그지없다. 그 옛날 별 쓸모없는 이 땅을 두고 ‘너나 가져라’ 했다고 해서 붙여진 ‘너섬’이 ‘까마귀’들의 천국이 되도록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 통일의 부푼 꿈과 한강 르네상스의 중심이 되어야할 그 땅을.(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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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2018.04.25 00:33
논개 -- 변영로(邊榮魯) (1898~1961)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립땁던 그 아미(娥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魂)
어이 아니 푸르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신생활>(1923)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역사적 인물인 논개의 충절을 빌어, 과거의 역사적 사실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현실 즉, 우리나라를 침탈하여 식민지로 만든 일제에 대하여 민족적 정기를 노래하고자 한 작품이다.
제1연에서 조선을 유린한 왜적에 대한 논개의 분노와 애국적 정열이 종교보다도 깊고 사랑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대조법과 직유법을 통하여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제2연에서는 왜장을 안고 강물을 향해 뛰어드는 죽음의 순간을 오히려 미화하고 있다. 이 죽음에 대한 미화는 논개의 고운 자태와 잘 어우러져 있다. 아미와 입술과 같은 어쩌면 관능적인 이미지가 서로 어울릴 것처럼 보이지 않는 '죽음'과 오히려 조화를 이루는데, 그것은 논개의 아름다운 자태로부터 '입맞춤'이라는 어휘를 매개시킴으로써 논개의 '죽음'조차도 아름답고 숭고한 것으로 승화시키는 시적 효과를 거둔 것이다.
제3연에서는 논개의 그 거룩한 혼이 강물의 유구한 흐름과 함께 길이길이 빛날 것임을 역시 색채적 대조를 통해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무엇보다도 후렴이다. 후렴은 논개가 빠져 죽은 남강의 물결의 색채가 강낭콩꽃의 그것보다, 또 그러한 논개의 애국적 정열의 색채가 양귀비꽃의 그것보다 더 강렬함을 색채의 대조를 통하여 선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이 시의 주제를 더욱 강하게 우리에게 부각시켜 준다.
* 특징 : 청사(靑史)에 길이 빛날 논개의 애국적 충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민족주의적)
* 표현 : ㉠ 다양한 수사법 - 반복, 대조, 비교, 영탄, 설의, 직유, 대구법
㉡ 4음보의 율격 - 고전적 균형미와 경건성
㉢ '붉음'과 '푸름'의 색채적 대조
㉣ '본사 + 후렴구'의 민요적 형태 응용
㉤ 후렴구 - 의미의 강조 및 음악적 효과
▷작자 변영로(卞榮魯: 1897.5.9-1961.3.14)
호는 수주(樹州). 경기도 부천 출생. 중앙학교에 입학하여 3학년 때 중퇴한 뒤 중앙기독청년회관 영어반을 6개월만에 수료하고 17세때 영시 《코스모스》를 발표하였다. 1918년 중앙고보 영어교사가 되어, 1919년 3·1운동 때는 YMCA에서 독립선언서를 영역하여 해외로 발송하였다. 1920년 《폐허》 동인으로 문단에 데뷔, 1922년 이후 《개벽》지를 통해 해학이 넘치는 수필과 발자크의 작품 등을 번역해서 발표하였다.
1924년 일제하의 민족적 울분을 노래한 시집 《조선의 마음》을 내놓았고, 193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산호세대학을 수료하고 귀국, 1935년 동아일보사에 입사, 《신가정(新家庭)》 편집장이 되었다. 그는 《신가정》 표지에 손기정 선수의 다리만을 게재하고 ‘조선의 건각’이라고 제목을 붙이는 등 일본 총독부의 비위를 건드려 압력을 받아 회사를 그만두기도 하였다. 1927년 ‘우리의 것’을 알아보기 위해 백두산에 올라가 《두만강 상류를 끼고 가며》 《정계비(定界碑)》 《천지(天池) 가에 누워》 등 10여 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1949년 제1회 서울특별시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수필집으로 《명정(酩酊) 40년》이 있고, 1981년 3월 그의 20주기를 맞아 새로 발견된 그의 작품까지를 수록하여 《수주 변영로 문선집(樹州卞榮魯文選集)》이 출간되었다. ( net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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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도 서로 기대고 사는 인연 ?
우리는 많은 사물과
자연에 기대어 살아 갑니다.
우울한 날에는 하늘에 기대고
슬픈 날에는 가로등에 기댑니다.
기쁜 날에는 나무에 기대고
부푼 날에는 별에 기댑니다.
사랑하면 꽃에 기대고
이별하면 달에 기댑니다.
우리가 기대고 사는 것이
어디 사물과 자연뿐이리요.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대어 살아 갑니다.
내가 건네는 인사는 타인을 향한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 아닌 타인입니다.
나를 울게하는 사람도 타인
나를 웃게하는 사람도 타인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비스듬히
기댄다는 것은 그의 마음에
내 맘이 스며드는 일입니다.
그가 슬프면 내 마음에도
슬픔이 번지고 그가 웃으면
내 마음에도 기쁨이 퍼집니다.
서로 기대고 산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연이겠지요.
그 인연의 언덕은 어느 날은 흐리고
어느 날은 맑게 갤 겁니다.
흐리면 흐린 대로 개면 갠 대로
그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이 서로 기대고 살아가는
인연의 덕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