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0 04:10
우리는 모두 작가이다
고국을 떠난 지 50년이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어머니 품에서 익히고 배운 모국어에는 몸의 일부처럼 동질감이 느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모국어로 듣고 읽고 말하는 것이 편하듯이, 모국어로 쓰는 것 또한 훨씬 자연스럽다. 미국에 사는 이민 1세로서 영어구사 면에서 아직도 완벽한 수준에는 미흡하다는 것을 자인함과 동시에,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진화해가는, 모국어에 대해서도 비슷한 한계성을 느끼고 있다.
말과 마찬가지로 글도 쓰고자하는 생각만 있다면 누구나 다 쓸 수 있게끔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다 좋은 표현이 아니듯, 쓰여 진 모든 글이 다 좋은 표현이라는 보장은 없다. 잘 쓰여 진 아름다운 글도 있겠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따라서 글로 표현된 모든 것에서 문학적 가치를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민중서관이 발행한 국어사전은 문학을 ‘상상의 힘을 빌려서 문자로 나타낸 예술 및 그 작품’이라고 풀이 한다. 한편 웹스터 사전에서는 ‘상상력을 동원 하거나 또는 비판적 성격을 지닌 산문이나 시, 소설 같은 모든 작품(Writings)은 그 우수성(Excellence)여부를 떠나서 모두가 다 문학 이다’ ‘단지 과학 논문이나 뉴스보도 등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정의 하고 있다.
외국에서의 신인발굴은, 일반적으로 출판사의 검토를 거쳐 이루어지는 풍토가 관행상 정착돼 있다고 한다. 출판사의 검증을 통과하고 시장(서점)에 나온 신인 작가의 작품은, 다시 일반 독자의 심사(?)를 받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시장원리의 적용 대상이 되는 것이다. 신문사의 신춘문예 공모나 문예잡지사를 통한 신인상 제도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문학 동인들이 자비로 동인지를 발행하여 문학관련 단체에 무료로 기증하고 거기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 한국에는 일찍부터 신인 등용문으로서의 ‘등단’이라는 특유의 제도가 관례화되어, 문화계에 많은 기여를 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문학을 아끼는 사람들의 눈에는, 문학에 관한 그 어떤 형태의 기득권적 배타의식도 추하게 비쳐질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모든 것을 자연도태(Natural Selection)라는 진화 기능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문단은 아마튜어 문인을 포함한 전체 문인들에게 문이 언제나 열려 있어야할 자연 발생적 문화 공동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76세(2009년)에 글쓰기 대열에 새치기로 끼어들 만용을 부린 자칭 ‘아마츄어-늦되기-문학노년’이다. 처음에는 고관절 수술이후의 건강 상실에서 오는 실의를 달래고자 붓 가는대로 쓰기 시작하였다.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껴오던 이런 저런 일들을 산문 형태의 글로 옮겨, 늙어가는 말년의 내 모습을 담아 자식들에게 남기려는 동기에서 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덧 글쓰기가 습관이 돼버렸다. 어쩌다가 얼마동안 글을 못 쓰는 일이 생기면 마치 중요한 일과라도 빠트린 듯 보완 심리가 작용하여 이내 글쓰기 충동을 느끼곤 한다. 멋있는 글을 써서 남겨야겠다는 욕망은, 사행을 바라는 것처럼 치부 됐다. 솔직히 말해 매너리즘(Mannerism)에 젖은 나의 글을 읽노라면 어쩐지 다듬어지지 못한 딱딱한 인상을 풍기는 삼류 칼럼 같아서, 내심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문학적 한계를 스스로 느껴오는 터이다.
내 주위에는 다양한 분야(의사, 회계사, 교수, 엔지니어, 사업가등등)에 종사하다가 은퇴한 후에, 자서전이나 수필집을 출간한 친족 친지가 여럿이다. 그들은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닌 아마츄어들이지만 나에게 신선한 동기 부여자의 역할을 한 사람 들이다. 처음에는 한글 맞춤법,글 띄어쓰기 등에 서툰지라 많이 힘들었다. 컴퓨터에 한글자판을 깔고 한글타자를 익히는 일은 넘어야할 또 다른 고개이었다. 한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들겨서 완성된 글을 프린트 하고나니 한글타자에 자신이 생겼다. 그럭저럭해서 쌓인 수필이 어느덧 60여 편에 이르다 보니 또 다른 만용을 부리게 됐다. 2015년 초에 에쎄이 집을 내기로 한 것이다. 경험부족에서 오는 졸속 결정으로 편집 과정에서 생긴 적지 않은 착오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그런대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 써놓은 글 70여 편이 또 쌓였다.
글쓰기는 더 이상 어떤 특수한 부류의 사람들만의 특권이 아니다. 바야흐로 요즈음은 전 국민의 문인 시대를 맞은 듯 한 느낌이다. 누구나 전화기에 대고 글을 쓴다. 시도 때도 없이 쓴다. 그중에는 잘 쓰여진 좋은 글도 있을 것이다. 글쓰기는 노인들의 치매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최근 한국의 경상북도 칠곡에 사는 70~90대의의 할머니들 84명이 출간한 시집 ‘시가 뭐고’가 큰 화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뒤늦게 한글을 깨우친 그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담은 글이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준 듯하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할머니 작가들의 문학 활동이 눈부시다. 63세의 여성 신인 작가의 첫 작품이 일본의 최고 권위 문학상(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지난해 일본의 베스트쎌러 1위는 백만 부가 넘게 팔린 95세의 할머니의 작품 ‘90세, 뭐가 경사라고’가 차지했다고 한다. 또 105세 할머니의 작품 ‘103세가 돼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은 50만부 이상이 팔렸다는 것이다. 100세-전후-할머니들이 서점가에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나이가 많아서 글을 못 쓴다는 말은, 한낱 핑계에 지나지 않게 됐다.
이미 밝혔듯이 나의 글쓰기는 어디까지나 아마츄어 영역에 머물러 있다. 굳이 거기서 벗어날 생각도 없으며, 그저 내가 좋아서 글을 쓴다는 그 자체로 만족하고 있다. 어쩌면 이 같은 심리의 저변에는, 작가로서의 나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인지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훌륭한 작가의 잘 써진 글에 공감하고 대리 만족하면서 흥분을 맛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때는 마치 수수께끼 문제를 풀듯 이해하기 어렵게 쓰여 진 글을 접할 때도 없지 않디. 그럴 때는 미로를 헤매는 것처럼 머리가 어지럽다. 비록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에 그친다 하더라도, 나는 그가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할 수 있도록 알기 쉬운 말로 쓰고 싶다.
글쓰기란 나에게 있어 노후를 받쳐주는 귀중한 취미 생활의 일부로서, 마치 잃어버렸다가 뒤늦게 되찾게 된 소중한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올림픽 경기는 참여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한다. 나도 이 같은 아마츄어 올림픽 정신으로 글쓰기에 임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작가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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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만섭 선생님,
좋으신 말씀입니다.
글 쓰는 모든 분들이 치열한 정신으로 글 쓰기에 매달리는 것도 좋지만 노후를 받쳐주는 귀중한 선물로 생각하고
즐기는 모습 또한 감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즐기면서 좋은 글을 쓰는 것, 이 또한 노후의 즐거움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