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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 여행 후기

2018.07.14 08:14

라만섭 조회 수:3414

코스타리카 기행 후기

 

얼마 전에 중미의 소국 코스타리카에 다녀왔다. 아내가 한인 타운의 아주관광을 통해 예약해 놓은 56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신선한 뒷맛을 남겨주는 여행이었다. 환갑 기념 차 한국에서 온 여고동창 5명과 70대 부부 그리고 우리 부부 모두 9명으로 구성된 일행의 가이드를 맡은 사람은 현지 생활 30여년의 교포이었다.

 

새벽 2시가 다 돼서 L.A.X.를 이륙한 비행기가 니카라구아를 거쳐 7시간 반의 비행 끝에 코스타리키의 수도인 산호세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9시를 조금 지나서였다. 밤새 비행기에서 시달리며 잠을 설친 뒤라, 첫날의 일정 소화가 다소 걱정스러웠으나 다행히 별 탈 없이 넘겼다. 코스타리카는 니카라구아와 파나마에 끼어있는 미쉬간 호수만한 크기의 인구 5백만도 채 안 되는 소국이다. 이 나라의 특징은 중남미를 통틀어 민주주의 역사가 가장 긴 평화로운 나라인 점이다. 인구의 76%가 카톨릭 신자인 코스타리카는 태평양과 카리비아해에 접한 열대지방에 위치해 있으므로 사시사철 파파이아, 맹고, 파인애플, 바나나와 같은 열대성 식품이 풍부하다.

주 수입원은 관광과 수출산업인데, 콤퓨터 부품, 열대성 과일, 커피등이 주된 수출품목을 이룬다. 아직도 스페인 식민시대의 잔재가 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 보기 힘든 자유민주주의 전통과 교육제도를 자랑한다.

 

코스타리카는 화산의 나라이기도 하다. 전국에 2백여 개에 달하는 화산이 널려 있다. 도처에서 온천물이 나온다. 또한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이 두드러진 지상낙원이라는 자부심을 지키려고 애쓰는 나라이기도 하다. 수많은 동식물이 정부의 보호를 받는다. 한 예로 3만여종의 곤충류, 2만여 종의 거미가 보호되고 있다. 전 세계 나비의 거의 10%이상이 이 나라에 있다고 한다. 동식물원에는 형형색색의 나비, , 개미, 개구리, , 원숭이, 재규어등과 함께 여러 가지 희한한 난(Orchid) 종류가 잘 보존되고 있다. 이 나라에는 1만 스퀘어 마일 당 615에 이르는 갖가지 동물이 서식한다고 한다. (미국은 같은 면적에 104개에 불과하다). 악어 사파리에서는 많은 악어를 볼 수 있었다. 길이가 16피트나 되는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별명을 가진 악어가 있는데, 하도 신출귀몰하여 찾기 어렵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화산폭발로 생겨난 호수의 보트 사파리 유람은 인상 깊었다. 각종 새들과 악어의 생태게를 직접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었다. 용암으로 데워진 온천욕은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어떤 호텔은 호텔 내에 온천시설이 구비돼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온천장에 호텔을 지었다고 해야겠다. 한국이나 미국의 온천에 비하면, 그 규모가 매우 크고 온천수가 풍족한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폭포가 돼서 쏟아져 내리는 온천수 밑에 앉아서 즐기는 온천욕은 기리 추억꺼리로 남을 만 하다. 열대 밀림 속 깊고 험준한 계곡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연결해주는 6개의 흔들다리( Hanging Bridge)를 건널 때의 짜릿함은 주위의 수려한 경관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1시간 반 동안 2마일에 뻗친 밀림 트랙킹(Tracking)코스는 코스타리카 여행의 백미로 꼽을 만 하다.

 

코스타리카에서의 건물 주소(Street Address)는 길 이름으로 돼있지 않고, 큰 목표물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기준으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여행 안내소의 주소는 축구경기장 입구에서 북쪽으로 50미터 서쪽으로 1백미터식으로 돼있다.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느긋하고 맥도날드나 KFC 같은 업소에서는 배달 써비스까지 해주는 여유로움을 보인다. 현재 코스타리카에는 약 4만 명의 미국인이 살고 있다고 하며, 정치사회적인 안정, 풍부한 야외활동, 건조하지 않은 기후조건, 잘 보존된 자연환경과 거기에 서식하는 다양한 야생동식물 등이 이들에게 매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안가에 소재한 부동산의 80%는 외국인의 소유라고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중남미인들의 특징인 율동감각이 발달되어 춤의 명수로 알려져 있으며 축구에 대한 열기도 매우 강한 편이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이 나라에도 어두운 면이 있다. 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곳의 도로나 시설은 비교적 잘 정비돼 있으나, 좀 벗어난 지역의 사정은 많이 달랐다. 특히 산호세 같은 큰 도시의 상가는 경제적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빈부의 격차가 심한 것을 느꼈다. 거리에는 불구자나 걸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수도 산호세의 빈민굴에 사는 여자들 사이에서는, 미국행을 원하는 중국인 남자들에게서 돈을 받고 서류상의 위장 결혼을 해주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워낙 가난한 여인들인지라, 미화 175불선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엄마가 쉽게 돈을 버는 것을 본 딸들도 공급시장에 가세하여 영업이 번창(?)하다는 것이다. 기아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한다. 이들은 조속한 이혼을 바라지만, 만나본적도 없는 생면부지의 중국남자(남편)를 찾기가 어려워 이혼도 못하고 산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분증(여자)의 수요는 급증하고 따라서 그 가격 또한 많이 올라갔다고 한다. 종종 도난당한 신분증과의 위장결혼이 횡행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류상의 기혼자가 되는 여성의 경우도 더러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코스타리카 사회의 긍정적인 측면이 부정적인 면을 압도한다는 인상을 짙게 받았다. 코스타리카는 영국의 신경제재단에서 선정하는 HPI(Happy Planet Index)에서 세 번이나 1위를 차지한바 있는 행복 국가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7천불에 불과하나 문맹률은 4%로 극히 낮은 편이다. 국토의 25%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자연생태계의 보존이 거의 완벽한 수준이다. 인구의 94%가 스페인계 백인으로 구성돼 있으며 북중미를 대표하는 축구강국이기도 하다. 어디를 가나 축구장시설이 구비돼 있으며, 2018년 월드컵대회에도 멕시코와 더불어 북중미의 대표 팀으로 출전하게 돼있다.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 나라는 1949년에 군대를 철폐하고 대신 교육과 국민보건에 치중하는 복지국가 이다.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과는 달리 매우 안정된 사회분위기를 풍기는 평화로운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짧은 여정을 아쉬워하면서, 수십억 년에 걸쳐 진화해온 지구의 귀중한 생태계를 보호하고자 노력하는 코스타리카 사람들에게 갈채의 박수를 보낸다. 같은 행성에 사는 세계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지구상에 이처럼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 되고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함께 고마움을 느끼게 해주는 여행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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