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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축구 이야기

2018.08.26 11:40

라만섭 조회 수:390

월드컵 축구 이야기

 

예상대로 프랑스의 우승으로 끝난 제 21회 러시아 월드컵 대회도 막을 내렸다. 준우승국인 유럽의 소국 크로아티아의 활약이 돋보이는 대회 이었다. 614일서 715일 까지 만사를 제쳐놓고 중계방송을 보노라고 바빴으며, 망막 수술을 앞두고 불편을 느끼면서도 텔레비 중계에 빠져 지낸 한 달 이었다. 4년마다 열리는 세계 축구 제전인 월드컵에 내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82년 스페인 대회부터 인 것 같으나, 본격적으로 즐기기는 1994년의 미국 대회부터 이다.

 

축구의 보편화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사립학교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축구협회(FA)가 결성되면서 사립학교끼리의 리그전 형태로 발전 해 갔다고 한다. EPL(English Premier League)은 영국축구의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상징이 되고 있다. 유럽과 남미지역으로 번지면서 축구는 점차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 돋음 하게 된 것이다. 국제 축구연맹인 FIFA1904년 파리에서 창설 되고 제1회 월드컵대회가 1930년에 우루과이에서 개최됨으로써 축구는 명실 공히 유일한 단일 스포츠 종목으로서 전 세계적인 각광을 받게 됐다. 지금부터 4년 후인 2022년 겨울에는 중동의 작은 부자나라인 카타르(Qatar), 다음번 2026년에는 북미3(캐나다, 멕시코, 미국)이 월드컵 공동개최국으로 예정돼 있다.

 

FIFA4년마다 아프리카, 아세아, 북중미, 남미, 대양주및 유럽등 6개의 지역예선을 거치며 32개의 참가국을 선정하게 된다. 하지만 역대 월드컵에서 보듯이 결승전은 으레 유럽과 남미의 대결로 마무리 되어 왔다. 여태까지 21개 대회를 거치면서 우승국은 브라질(5), 독일(4), 이탈리아(4), 아르젠티나(2), 우르과이(2), 프랑스(2), 잉글랜드(1), 스페인(1) 순이다. 독일의 클로제(Klose)선수는 월드컵 대회에 4번 출전하여 모두 16개의 골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 월드컵 대회는 또한 돈 잔치로도 유명하다. 엄청난 액수의 입장권 판매에다가 각종 이권이 개입되어 가히 복마전을 방불케 한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한편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FIFA회장은 축구에 관한 한, 전 세계를 주무르는 막강한 힘을 보유한다. 우승팀에게 돌아가는 배당금만 하더라도 2018년 기준으로 약 4천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들었다.

 

이탈리아와 미국은 각각의 지역예선에서 탈락하여 이번 201821회 러시아대회에 참여하지 못했다. FIFA 산하의 CONCACAF( Confederation of North, Central America and Caribbean Association)지역은 북중미 국가와 카리비안 연안국들로 구성 돼있다. 미국에서는 미식축구, 농구, 야구에 비해 축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많이 떨어져 있으나, 1994년 미국 월드컵을 기점으로 `사정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의 모든 국가가 사용하는 십진법(十進法)이나 대통령 직접선거제 같은 보편적 현상에 보조를 맞추기를 거부하는 미국 특유의 양키 문화는, 스포츠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미시축구는 영국의 럭비(Rugby), 야구는 크리켓(Cricket)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쉽게 간파 할 수 있다. 하지만 당국의 꾸준한 축구 진흥정책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는 것 같이 보인다. 2002년에는 미국이 월드컵 8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한국에는 분단 전 까지만 해도 전통적으로 경평 축구전, 연고전 같은 축구 대회가 열려온 역사가 남아있다. 남함은 해방 직후 FIFA에 가입하고 1948년에는 런던 올림픽 축구종목에도 출전 하였다. 월드컵에는 1954년에 처음으로 출전하여 항가리에 9:1, 터키에 7:0으로 대패하는 굴욕을 겪기도 하였다. 대체로 보아 1970 년대까지의 재래식 한국축구는 후진성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 이었으나,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한국 축구에 큰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단 한번 만이라도 16강 진입을 바라는 전 국민의 숙원을 속 시원히 풀어주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히딩크 감독의 지도아래 16강을 거쳐 8강을 넘어 4강 고지에 까지 올라갔으니 말이다. 비록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한껏 살린 결과였다고 치더라도, 월드컵 대회 4위라는 성적은 한국 축구 사에 큰 획을 긋는 역사적 업적으로 남을 일이다.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서는 16강에 겨우 올라가긴 하였으나 8강 진입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아시아지역 대표로 9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하는 행운을 누리는 남한은, 명실 공히 동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 강국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번번히 유럽이나 남미 축구의벽을 넘지 못하는 취약성을 보이고 있다. 이번의 21회 러시아 월드컵도 16강의 높은 벽을 실감한 대회이었다. 머지않은 장래에 현실로 나타날 중국 축구의 굴기를 생각해 볼 때, 현재 일본과 더불어 동 아시아지역 축구를 대표하고 있는 한국 축구의 앞날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1970년대 말까지의 북한 축구는 남한에 뒤지지 않았다. 1966년 영국 월드컵애서는 강호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하고 1976년 몽트리올 올리픽에서도 8강에 오른바 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부터, 경제 상황의 악화와 함께 서서히 남한에 뒤지는 경향을 띄기 시작했다. 통일이 돼 남북 단일팀을 이룬다면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 오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축구는 몇 명의 선수들이 모여서 뛰는 것이냐고 아내는 묻는다. 프리킥, 코너킥, 골킥등 모든 킥을 페날티킥과 혼용하는 아내는, 이것도 페날티킥 저것도 페날티킥 하면서, 축구는 페날티킥의 게임이라고 평한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친구들과 함께 즐기던 공 차기 처럼, 공 따라 몰려다니는 게임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평범하면서도 귀중한 교훈을 축구에서 얻는다.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임무에 충실 한다는 지극히 간단한 원칙이다. 공을 따라 다닌다고 기회가 오는 것이 아니다. 축구는 열한명의 선수가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유기적인 운동이다.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어느 스포츠보다도 팀 동료와의 긴밀한 협동 정신이 요구되는 운동이다.

 

 

 

20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