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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바람 시인 · 박재삼

2009.06.08 08:35

arcadia 조회 수:1122 추천:49




천년의 바람 · 시인 박재삼




















   
    

천년의 바람 · 박재삼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 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천년의 바람’을 노래한 시인 박재삼이 …12년 전 오늘(6월 8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천포여중 사환

으로 일하다가 시조 시인 김상옥을 만나 시인의 꿈을 꾸게 됐다지요.

고교를 수석졸업하고 고려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가 그만 두고 월간
현대문학사, 대한일보 기자를 거쳐 삼성출판사 편집부장 등을 지냈습니다.



그는 가난과 고향에 얽힌 설움을 단아한 시어와 전통적 가락으로 표현해

문교부 문예상, 인촌상, 한국시협상 등 수많은 상과 은관문화훈장을
받았
지만 30대 중반부터 고혈압에 시달렸습니다.
고혈압 합병증은 다 겪어
뇌졸중과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도 했고
결국 신장염 때문에 복막투석을 받다 신장기능이 뚝 떨어져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 사랑은 · 박재삼








한빛 黃土(황토)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 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만 갈래.



여울 바닥에는 잠 안 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쳐 주리라.

가다간 볼에도 대어 눈물 적셔 주리라.








이번 달 명시조 추천은 대구의 박기섭(55) 시인에게 부탁했습니다.

박 시인은 시적 대상의 강인함 안에서 남성적 삶의 자세를 찾는 작업에

주력해 왔습니다. 박재삼(1933∼97)의 ‘내 사랑은’은 그런 작업 경향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절절한 사랑의 아픔을 묵묵히 참아내는 사내의 심사를 소름끼치도록 절묘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추천 시조는 자유시를 통틀어서도 사랑시 중 절창으로 꼽힌답니다.

세 수 연시조인 추천시조의 첫 번째 수는 시간 배경이 저물녘입니다.

종일 기다렸는데도 님이 오지 않아 속이 타는지 벌건 얼굴의 사내가
여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봅니다.



한밤중으로 시간이 흐른 둘째 수에서 사내는 몸으로 웁니다.

‘지지지 지지지’ 앓는 소리 내며 타는 들기름불이 된 거죠.

마침 달빛은 사립문 틈새로 빠져나와 마당에 떨어집니다.
사내에게는
이 달빛 파편들마저 시름으로 느껴진 겝니다.
박 시인은 ‘몸으로’
‘지지지’ 등 단어를 반복했는데도
애절한 감정이 오히려 깊어지는 데서 박재삼의 탁월한 우리말 운용 능력이 엿보인다고 합니다.



추천시가 아름다운 건 셋째 수 때문인 듯합니다.
사내는 불면의 지난밤을 잊으려는 모양입니다. 잠 못 잔 조약돌에 햇볕을 비춰주겠답니다.
하지만 그런 의지와 달리 여전히 눈물이 흐릅니다. 울컥 눈물이 차오르는데도
내색하지 않으려는 슬픈 결심.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서입니다.


신준봉 기자












   
    

흥부 부부상 · 박재삼








흥부 부부가 박덩이를 사이 하고

가르기 전에 건넨 웃음살을 헤아려 보라.

금이 문제리,

황금 벼이삭이 문제리,

웃음의 물살이 반짝이며 정갈하던

그것이 확실히 문제다.



없는 떡방아 소리도

있는 듯이 들어 내고

손발 닳은 처지끼리

같이 웃어 비추던 거울면들아.



웃다가 서로 불쌍해

서로 구슬을 나누었으니.

그러다 금시

절로 면에 온 구슬까지를 서로 부끄리며

먼 물살이 가다가 소스라쳐 반짝이듯

서로 소스라쳐

본 웃음 물살을 지었다고 헤아려 보라.

그것은 확실히 문제다.



- <춘향의 마음>(1962) -














   
    

추억에서 · 박재삼








진주(晋州)장터 생어물(魚物)전에는

바다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끝에 남은 고기 몇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남강(晋州南江) 맑다 해도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 <춘향의 마음>(1962) -













    

수정가 · '춘향이 마음' 초 · 박재삼 · 낭송 윤미애












수정가



집을 치면,

정화수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신선한 우물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평상의,

갈앉은 뜨락의, 물냄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레.

서방님은 바람 같단들 어느 때고 바람은 어려울 따름,

그 옆에 순순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춘향의 마음이 아니었을레.



하루에 몇 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 눈 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 때마다 일렁여 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나.

진실로, 우리가 받들 산신령은 그 어디 있을까마는,

산과 언덕들의 만리 같은 물살을 굽어보는,

춘향은 바람에 어울린 수정빛 임자가 아니었을까나.









박재삼 시인




▲ 박재삼 시인과 스승 김상옥


시인 박재삼은 삼천포 부두 지게꾼의 아들이었다. 그는 광복 후 중학교를

포기하고 삼천포여중 사환으로 일했다. 수업 종을 치고 나면 교실 유리창에

붙어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런 소년을 보고 교장 선생님이 말했다.

"시작 종을 치믄 퍼뜩 교실 뒤로 들어가 공부하고, 수업 끝나기 전에 퍼뜩

나와 끝 종을 치그라." 교장 선생님은 여중생들 뒤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는

박재삼에 감복해 그를 삼천포중 야간반에 입학시켰다.

박재삼은 거기서 국어선생님 김상옥을 만났다.

이 큰 시인이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다는 걸 알고 용기 백배했다.

선생님 시조집을 빌려 공책에 베껴가며 문학에 빠졌다.

김상옥은 그의 시를 고쳐주며 시인으로 길렀다.

"말을 아끼고 리듬이 우러나야 한다"는 가르침은
박재삼 평생 시작(詩作)의 지표가 됐다.

그를 "가장 아름답게 한(恨)을 성취한 시인"(서정주)으로 키운 것은

삶의 큰 굽이를 한 차례씩 틀어준 두 스승이었다.

맹자는 군자가 인재를 가르치는 다섯 방법 중 으뜸이 '시우지화(時雨之化)'라고 했다.
때맞춰 비가 내려야 초목이 쑥쑥 자라듯, 제때 제자가 갈 길을 잡아줘야 한다는 얘기다.
스승과 제자의 만남엔 그렇게 운명적인 데가 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선 "선생은 많으나 스승은 없다"고들 말한다.



▲ 박재삼 (朴在森, 1933. 4. 10-1997. 6. 8)


1933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태어나 삼천포에서 자랐다.
삼천포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삼천포여자중학교 사환으로 들어가 일하였는데,
이곳에서 교사이던 시조시인 김상옥을 만나 시를 쓰기로 결심하였다.
그 뒤 삼천포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해 수료하였다.

1953년《문예》에 시조〈강가에서〉를 추천 받았고, 1955년《현대문학》에 시〈섭리〉, 〈정적〉등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1955∼1964년 월간 현대문학사 기자를 거쳐 1965∼1968년 대한일보 기자, 1969∼1972년 삼성출판사 편집부장 등을 지냈다.
그의 시는 가난과 설움에서 우러나온 정서를 아름답게 다듬은 언어 속에 담고,
전통적 가락에 향토적 서정과 서민생활의 고단함을 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죽을 때까지 고혈압·뇌졸중·위궤양 등 병마에 시달리며 만년을 보냈다.
현대문학신인상, 문교부 문예상, 인촌상, 한국시협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평화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조연현문학상, 제6회 올해의 애서가상(1996) 등을 수상하였고,
은관문화훈장(1997) 등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춘향이 마음》,
《천년의 바람》, 《뜨거운 달》, 수필집 《아름다운 삶의 무늬》 등이 있다.










● 박재삼(朴在森, 1933 - 1997. 6)




  • 1933년 동경 출생, 삼천포고교를 거쳐 고려대 수학
    통해 시와 시조로 등단(서정주의 추천) 25여년 간 바둑 관전평을 집필, 박 국수(國手)로
    잘 알려져 있음
  • 개인적인 추억과 생활 주변의 체험을 비애어린 서정적 감각으로
    엮음
    - 그의 시에는 '운다'(동사)와 '눈물'(명사)이란 시어가 많이 등장함


  • 시집 : 첫시집 [춘향의 마음], [햇빛 속에서], [천년의 바람],
    [비 듣는
    가을 나무], [해와 달의 궤적], [다시 그리움으로] 등 15권의 시집,

    <자연> : 전 10연으로 된 연작시
  • 유적 : 박재삼시비(경남 사천 서금동 노산공원) : <천년의 바람> 시비





● ‘문학한다는 것’ - 박재삼



문학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정확한 답을 대지 못한다.

그러면서 문학을 하고 있으니 모순일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아마도 답에 정확성이랄까 명징성이 없는 것이 문학 자체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정확한 답을 못 댄다고 하더라고 그것을 도통 모른다고만

할 수 없다는 데에 문학이 가진 오묘한 진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말을 아끼고 사랑한다 하여, 누구나 시인이 된다면,

그것은 쉬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훌륭한 시인,

그것이 된다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안다.

어느 정도의 자기류라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그것이 완벽한

자기의 말법이고 또 그것이 많은 독자를 획득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자기의 말법 안에 사람들을 가두어 놓는 일이 쉽지 않은 것임을 어쩌랴.

더구나 시는 짧은 형식이기 때문에 그것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먼 거리가 있는 사람까지 안심하고 지내기 마련이다.
그 만큼 시를 이루어 놓는 일은 몇 곱절 더 어려운 것이다.
이것이 시를
하기는 쉬우나, 그것을 잘 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말이 나온 까닭인 것이다.
그것은 시에만 한한 얘기는 아닐 터이고,
모든 일이 그것을 ‘잘 하기’가 누워서 떡먹기겠는가.
대(竹)에 칼질을 하는 사람은 댓살을 비단결처럼 잘게 썰고,
도자기를 굽는 도공에게서는 열도를 재는 데 있어 미세를 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것은 훈련에 익은 솜씨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도 정작 잘 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에나 비유할 수 있을지.
요는
자기가 하는 일에 자기의 혼백을 불어넣는 그 일이 중요하다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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