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달빛을 취해 만든 '한지' 종이 위에 인생을 펼치다.
만년 7급 공무원 필용(박중훈)은 3년 전 아내 효경(예지원)이 자기 때문에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아들을 큰 집에 맡겨놓고 거동이 불편한 아내의 수발을 들며 비루한 인생을 살고 있다.
퇴직 전에 5급 사무관이라도 돼보려던 그는 새로 부임한 상사가 한지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걸 알고
마지막 기회란 생각에 시청 한지과로 전과한다.
한편 2년 동안 전국을 돌며 한지에 관한 다큐를 찍고 있는 다큐 감독이..
감독 · 임권택 / 출연 · 강수연 (지원 역), 박중훈 (필용 역), 예지원 (효경 역), 안병경 (덕순 역), 장항선 (도암스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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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는 한지(韓紙)에 대한, 한지에 의한 영화다.
한지라는 소재에 매몰될 수 있는 영화인데도 간단치 않은 화두와 울림을 던진다.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작업을 통해 만년 7급 공무원을 탈피하려는 필용(박중훈),
한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영화감독 지원(강수연), 뇌경색 후유증에 시달리는
필용의 아내 효경(예지원)을 통해 우리의 삶을 이야기 하고, 전통을 논한다.
요컨대 '달빛 길어 올리기'는 한지에 대한 소중한 기록물이자 소소한 재미도 함께 주는 영화다.
초반 카메라는 한지를 소개하는 데 집중한다.
한지의 역사와 조선왕조실록에 얽힌 사연이 TV 화면과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이후 아내 병수발을 하는 필용의 비루한 처지, 필용과 지원의 미묘한 감정 교류,
고향을 잃은 효경의 향수가 겹치며 영화는 감정의 파도를 탄다.
임 감독은 등장인물들에 자신의 자아를 투영하고 메시지를 전한다.
출세욕으로 한지 사업을 맡은 필용이 한지에 빠져드는 모습은 생업을 위해 영화판에 뛰어들었다가
영화작가로 거듭난 임 감독의 인생역정을 대변한다.
대상을 완벽하게 탐구한 뒤 카메라에 담으려는 지원의 직업정신은 감독의 삶의 자세로 비친다.
남편의 바람 때문에 병을 얻고 집안에 틀어박혀 불편한 몸을 운신하는 효경은 한지(또는 감독 자신)로 상징되는 전통을 은유한다.
가장 소중한 것이면서도 냉대 받는 전통에 대한 감독의 연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바로 영화를 관통한다.
아름다운 장면이 특히 마지막 장면이 오래도록 동공에 남는다. 심산유곡에서
장인들이 종이를 '길어 올리는' 장면은 정성을 다해 한 컷 한 컷을 얻고자 했던
대가의 의지와 오버랩 되며 큰 울림을 준다.
… 사업성이 없어서 술로 나날을 지내는 한지 장인과, 전주 근교 사찰의 옛 것에
관심이 많은 주지스님, 시청공무원 박중훈이 형편되는 대로 투자를 하여 덕유산
자락 폭포 옆에 솥단지를 걸고 닥나무껍질을 삶아 맑은 물에 걸러내며,
최고의 한지를 재현해 내려는 달빛 속의 기도 같은 장면이다.
들어나 보셨는지? 絹五百 紙千年, 종이는 천년, 비단은 오백년을 간다라는 말을...
달빛 길어올리기는 시청 한지과로 발령난 공무원(박중훈)과 그의 뇌졸중으로
어눌한 아내(예지원), 다큐 감독(강수연)이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조선왕조실록'
中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의 보관본을 전통한지로 복원하는 작업에 관여하면서
얽히고 갈등하며 다투고, 이해하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 제작전 2년동안 전주지역 답사과 탐방을 통해 철저한 고증을 거쳤고,
전통한지 작업을 재현하기 위해 한겨울 차가운 물속 촬영을 감행했다고 한다.
천년 세월을 숨쉬는 달빛을 닮은 우리나라 종이 한지를 재현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 시적이고 서정적이고 문학적인 영화이다. 뛰어난 달빛 세상 영상미를
가슴에 가득, '한지와 화선지'의 차이 등 지식도 한아름 담아갈 수 있는 영화이다.
서예가, 역사학자, 옛 제지업자 등이 모두 실제 전문가로 보였다.
그들은 차분하고 겸손, 자연스러워 영화를 돋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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