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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거푸집

2008.02.15 21:59

유봉희 조회 수:1386 추천: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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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거푸집
유 봉 희

내 차는 189마력 · horse power을 가졌다.

가끔 나는 고속도로에서 말발굽 소리를 듣곤 한다.
내 손은 건성 핸들을 잡고 있을 뿐, 백 팔십 아홉 마리의 흰말들이 갈기를 세우고 허연 입김을 뿜어내며 발굽이 길에 달 틈도 없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한때 초원을 달리던 야생마들, 뼈와 살을 땅에 묻고 지층에 고요히 스며들어 원유로 출렁이며 언젠가는 다시 달려볼 기회을 찾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자동차는 그들의 거푸집이다.

어젯밤에 내가 몇 만년 전에 보내진 별빛을, 지금은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그 별을 절절하게 바라 보았듯이 돌아온 그들의 거푸집에
앉아 달리는 것 또한 같은 줄기에 있지 않겠는지

오늘 오후, 밀렸던 일상을 처리하러 길을 나섰다가
비 개인 쪽빛 하늘과 들판에 잠깐 눈 준 사이 차는 샛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영리한 내 말들이 내 심중을 알아채듯,
나 또한 그들의 의도를 모를 리 없다.

넓은 유채꽃 들판에 백 팔십 아홉 마리의 말을 풀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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