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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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모둠냄비 / 수필

2021.07.10 09:39

민유자 조회 수:10

모둠냄비

 

 옛말에 ‘손주를 귀여워하느니 방아깨비를 귀여워하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고 예쁜 것들을 어찌 귀여워하지 않을 수 있나?

 

 아들네는 아들만 셋이다. 둘일 때까지는 멀리 다른 주에 따로 살았는데 예상 밖의 셋째가 나면서 아들네도 원하고 나도 원해서 살림을 합쳤다. 함께 살 집을 장만하는 데서부터 쉽지 않았다. 삼대가 함께 공존하는 데에는 각오했던 많은 예상을 깨고도 생각 밖으로 아주 작고 작은 일로부터 마찰음이 생겼다.

 

 혈통과 가문이 다른 세 성씨에다, 혈통이 같은 오롱이조롱이들 까지 입맛과 기호와 성품이 사뭇 다르다. 제일 기본적인, 날마다 거를 수 없는 밥상을 차려내는 일부터 장난이 아니다. 외식을 해도 의견 조율이 간단치 않다.

 

 옛날처럼 나이순, 항렬순으로 권위를 따라 정한다면 간단하다. 그러나 요즘은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를 존중해야 하고 평등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앞뒤 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쪽이 양보해야 하니 오히려 순서가 뒤집히는 것이 예사여서 씁쓸할 때가 많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군가 하나는 성내고 삐치고, 누구 중 한둘은 싸우고 울고, 누군가 하나는 병이 나서 아프다. 제일 극심한 것은 세대 차이다. 조부모와 손자는 60년 차이가 나니 어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거기다가 출생지의 문화적인 차이까지 겹친다.

 

 따끈한 모둠냄비처럼 식을 새 없이 지지고 볶는 사이 막내가 벌써 네 살이 되었다. 아기의 키가 그 나이 평균의 5% 정도라고 해서 우유를 한 방울이라도 더 먹이려 애쓰는데 그걸 소화를 못 시키고 걸핏하면 도로 다 토하여 안타깝게 하던 녀석이다. 걸음마 첫발을 떼었다고 올림픽 마라톤 선수의 금메달을 응원하듯 손뼉을 치고 좋아했는데, 이제는 물개처럼 수영을 하고, 유니폼을 입고 축구하는 것을 보며 마음 가득 기쁨이 차오른다.

 

 새벽 6시가 되면 둘째는 어김없이 거실에 홀로 나와서 불을 켜고 책을 읽고 있다. 독서량이 많아 학교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팔방미인에 다재다능하며 활력이 넘치고 늘 식구들을 웃게 만든다. 착실히 재활용품을 수거 정리하는 수고를 마다 않으며, 그걸 팔아서 돈을 적립하는 녀석이다.

 

 저녁식사 후, 오늘은 자기가 경매를 한다며 잘 포장한 액자에 담긴 그림을 꺼냈다. 햇볕 밝은 바다에 크고 작은 물고기를 두 마리 그려놓았다. 아들이 25센트로 경매를 시작했고, 내가 5불을 불렀더니 냉큼 할아버지가 20불을 부치는 바람에 경매는 금방 끝났다. 벽에 걸어놓으니 볼수록 그 의견이 신통하고 대견하다.

 

 큰손자는 가을에 열네 살이 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사춘기에 접어들어 까탈스럽게 굴어 제 어미를 힘들게 해서 저렇게 유약하게 키워서 어찌할까 염려했었다. 올 들어 콩나물처럼 날 새면 키가 커 눈 비비고 다시 봐야 할 지경이다. 여름방학에 실 비치Seal Beach에서 구명요원 훈련을 받으면서 갑자기 아이에서 청년이 되었다. 엄살도 없어지고, 담력도 커지고, 신체적인 단련으로 제법 늠름하기까지 하다. 그토록 싸우더니 동생들을 대하는 품도 많이 넓어졌다.

 

 며칠 전, 아들이 큰 녀석을 데리고 멕시코에 집 지어주는 미션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미국에서 스포일된 아이가, 특히 입맛이 까다롭다. 더위와 열악한 환경을 잘 이길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마지막 날부터 부자가 설사를 시작하여 집에 와서도 일주일을 앓았다. 아들은 지쳐서 이틀은 다른 일을 미루고 쉬었는데 큰 녀석은 여전히 싱싱하고 내년에도 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아들은 큰 애가 그 더운 뙤약볕 먼지 구덩이에서 집 짓는 일을 불평 없이 신통하게 잘 해냈다고 대견해했다.

 

 나는 큰손자에게 멕시코 여행기를 쓰면 페이지당 10불의 거금을 쳐주겠다고 제의했다. 가기 전날부터 온 다음 날까지의 보고 느낀 얘기를 되도록 세세히 늘여서 많이 쓰라고 했다. 두세 페이지라도 쓰면 좋으련만 하고 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시작을 안 한다. 두어 번 종용했지만 억지로는 못할 일이라 두고 볼 수밖에.

 

 일요일, 교회에서 돌아오면서 그걸 쓰겠다고 컴퓨터에 앉더니 장장 네 시간을 꼼짝 않고 계속 자판을 더듬는다. 다음 날도 아침 일찍 일어나 바다에 가서 서핑을 두 시간 하고 오더니 다시 컴퓨 터에 앉아 온종일 요지부동 자판을 두들긴다. 다 끝내고 물어보니 22페이지란다. 헉! 거금을....

 

 미국과 멕시코의 문화적 차이점과 가기 전과 다녀오고 나서의 자신의 달라진 생각과 느낀 점을 말미에 더 첨부하라고 일러주어 완성시켰다. 저녁식사 후에 흔쾌히 거금 230불을 상금으로 주고 온 식구가 박수를 쳐주었다. 한 달 점심을 굶은들 어떠리. 상금이 하나도 안 아까웠다.

 

냄비야 뜨거워라! 부대끼고 어우러져 냄새도 맛도 좋은 일품요리를 만들어라!

 

https://youtu.be/CK5E6uXX00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