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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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쓴 뿌리 / 수필

2021.07.10 09:53

민유자 조회 수:11

쓴 뿌리

 

 사람의 마음속은 얼마나 깊을까? 키만큼? 아니면 나이에 비례 하여 깊을까?

 

 아들이 장가를 간다. 여기저기 흩어진 사진들을 한데 모아 정리했다. 나도 수년을 들여다보지 않은 것을 내 아이들이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큰맘을 먹고 시작했는데 옛날 사진들에 빠져서 그것들을 들여다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나절을 다 보냈다.

 

 요즘은 사진을 인화하지 않고 컴퓨터에 저장해서 간단해졌다. 옛날 사진들을 모두어 아들과 딸에게 남겨줄 것을 추리고 친척 사진들도 적절히 넣어주고 웬만한 것들은 없애려고 하니 자연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사진을 정리하다가 한 사진에 내 눈이 머물렀다. 아들의 돌상 앞에서 돌옷을 입은 아들을 앞에 놓고 어머니와 내가 찍은 사진 이다. 친척들을 초대하고 음식을 만드느라 힘들었던지 화장기 없는 얼굴에는 즐거워야 할 아들의 돌날, 활짝 핀 웃음이 없다. 반면 어머님은 그때만 해도 상당히 젊었다. 호기 있는 느긋한 웃음을 머금은 어머니의 만족한 얼굴과 오히려 주눅 든 것 같은 표정의 내 얼굴을 번갈아보다가 마음속 저 에서 이상한 일렁임이 생겼다. 사진 속 어머님의 표정이 미워 보였다. 아아 세상에, 이런! 내가 여태 그 앙금을 안고 살았나?

 

 결혼 초부터 어머님은 나를 탁히 여기지 않으셨다. 어머님에 게는 귀하디 귀한, 세상에 둘도 없는 잘난 아들. 그 잘난 아들을 주어서 아깝지 않을 며느리가 있을 리 없다. 난 성심을 다해도 언제나 미흡했고, 죽도록 힘써 노력해도 언제나 모자라는 시집살이 였으니 내게 기쁨이 있을 자리가 없었다.

 

 눈물도 많이 고, 혼자 씨름도 많이 했다. 꿈속에서 집을 뛰쳐 나가기도,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기도 여러 번이다. 남편은 완전히 마마보이라서 나의 기댈 곳이 되지 못했다.

 

강 같은 세월이 모든 것을 안고 흘러간 지금, 나는 가정을 깨기 보다 참기를 잘했다고, 잘 참아냈다고 스스로 생각해 왔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죄도 많이 지었던 게다. 그 앙금이 여태 남아있다니!

 

 지금사 생각하면 어머님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나의 모자 람도 알 만큼 안다. 속상했던 감정들을 눈물의 기도로 잘 삭여왔기에 앙금은 없다고 자처해 왔다. 그 선택에 따른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도 생각 밖으로 충분히 크게 받았다고 감사하던 나다.

 

 그럼에도 이십여 년 전 그 사진을 보자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남을 느끼고 스스로도 새삼 깜짝 놀랐다. 나도 내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랐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치매의 어머님을 모시면서 몸서리치게 무서운 사실을 알았다. 치매가 심해지면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 교양, 학식, 인품, 자존심, 인격의 옷을 벗는다는 사실이다. 감추고 싶고 드러내기 싫었던 알몸의 품성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다. 양로원에서 잠시 은 바로는 같은 치매의 노인들 중에도 그 양상이 다르다. 물론 두뇌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파괴되는가에 달렸지만 인간 본연의 성격과 살아온 과거의 잔해가 범벅이 되어 뒤죽박죽 믿을 수 없는 현상이 잡초처럼 무성하게 현실로 나타난다.

 

 난 이 일을 두고 내 속마음을 정결케 하려고 늘 노력하고 기도해 오던 중이다. 치매가 걸리지 않으면 좋지만 장수 시대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내 속 깊은 곳, 무의식 속에 무엇이 박혀 있는지 내 기억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으니 문제다.

 

 내 품성이 뿌리째 뒤바뀌지 않으면 결국은 발가벗겨져 끔찍하게 드러나게 된다. 저 세상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서기 이전에, 이 세상에서부터 자식들 앞에 드러나고 이웃들에게 치욕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불가에서는 도를 터득했다 하고, 기독교에서는 회개하고 거듭나서 성화된다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리라. 연못의 진토에 쓴 뿌리를 박았어도 절치부심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경지에 이른다면 청정하고 아름다운 연꽃을 피워낼 수 있을까?

 

 https://youtu.be/dbA-6ysmJ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