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주는 사람

2009.08.21 13:50

정찬열 조회 수:1256 추천:113

  
“양용은, 꿈을 좇는 야생마.” 타이거 우즈를 누르고 PGA 챔피언십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메이저 챔피언에 오른 양용은 선수에 관한 어느 국내신문의 타이틀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스스로를 다그치고, 벽을 뛰어넘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키워 끝내 그것을 넘어선 선수. 볼 보이에서 메이저 챔피언까지 오른 그를 가리켜 신문은 ‘‘도전의 화신’이라 불렀다.
  이런 뉴스를 보면서 우리는 함께 기뻐하고, 나도 무언가 해낼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양용은은 어느 사이에 희망을 꿈꾸는 사람이 아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희망의 증거가 된 것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은 한 줄기 빛이고, 길이다. 희망의 증거가 된 사람은 누구에겐가 빛이 되는 사람, 길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길을 찾아 헤매던, 내 암울했던 스무 살이 떠오른다. 지게를 지고 농사를 짓던 그 시절. 밤이면 깜깜한 하늘에 길을 내어 종횡으로 누비는 반딧불이를 바라보곤 했었다. 개똥벌레를 쳐다보며 나는 길을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다. 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밀리고, 훅 불면 사라질 것만 같던 개똥벌레는 나에게 길을 가르쳐준 선생이었다.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봄이면 푸르게 일어서는 보리. 밑둥이 잘리어도 봄이면 어김없이 새순을 돋워 꽃을 피워내는 진달래. 이런 것들도 나의 스승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힘이고, 사람이 희망이다”고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결국은 사람이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많은 분들이 나에게 길이 되고 희망이 되어주었다. 그들은 상하고 아픈 마음을 보듬고 위로해 주기까지 했다.
  나에게 희망을 준 사람들, 내 아픔과 설움을 토닥거려주던 분들을 나는 기억한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도종환 시인이다.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 때 / 담쟁이는 말없이 벽을 오른다 /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인이 쓴‘담쟁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이 시를 언제 처음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이 시를 꺼내 읽으며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견디어 낸 적이 있다. 한 편의 시가 어둔 밤하늘에 반딧불이 되어주었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낙오자 없이 함께, 끌어주고 밀어주며 같이 벽을 넘어가자는, ‘공생의 정신'은 오래 가슴에 남아있다.
  양용은 선수. 골프장 볼보이와 술집 웨이터를 거쳐 각고의 노력 끝에 정상의 자리에 오른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준 사람이다.
  도종환 시인. 나는 그를 희망을 주는 시인이라 부른다.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세상을 꿈꾸고,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시인의 모습이 글 속에 살아 움직인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으며 희망을 얻었으리라 믿는다.
  도종환 시인이 LA에 왔다. 8월 22,23일 양일간 문인들을 위한 강의가 팜스프링스에서 열리고, 25일 저녁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엠팍 극장에서 강연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그가 전할 메시지가 무엇일까 기대된다.
      
    <2009년 08월 21일자 미주한국일보칼럼>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0
전체:
30,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