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0 06:36
8월이 시작 될 무렵, 나는 다시 단기 선교팀에 합류하여 멕시코를 찾아갔다.
덥기로 말하면 메릴랜드도 빠지지 않을 테니까, 하는 마음으로 출발을 했는데,
캔쿤 공항을 나서자마자 잊고 있던 차원의 열기가 머리 정수리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는데도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습하고 더운 날씨였다.
멕시코 유카탄, 산토도밍고 마을에서 마을 전도를 마친 다음 날,
우리는 그곳의 교회에서 집회를 하기로 했다.
시간이 되자 먼저 아이들이 삼십 여명 몰려왔다.
아이들이 와서 자리를 잡으니 이미 작은 교회는 꽉 차게 되었다.
늦게 와 자리를 찾던 남자아이 둘이 마침 비어있던 내 옆 자리로 와서 덥석 앉았다.
아이들에게서는 새큰한 라임 냄새가 흠씬 풍겨왔다.
오늘의 집회를 위해 머리를 말끔하게 빗어 올리고 깃이 달린 셔츠를 멋 내어 입은 모양이었다.
녀석들은 호기심으로 얼굴이 팽팽해져 있었다.
가만히 앉아있으니 아이들의 셔츠에서 겉보리를 태운 것 같은 햇볕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나는 아이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앞만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앞이 흐려오면서 호세 가말리엘…..깔로스…..알베르또…. 내 머릿속에는
그들의 얼굴과 함께 잊고 있던 이름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십여 년 전,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선교지로 찾아간 곳은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의 산골 마을이었다.
산위에 위치한 그 마을은 사철 내내 시원하고 청명했으며, 아침이면 옅은 구름이 저만큼
아래에 동양화처럼 펼쳐지는 높은 지역이었다.
멕시코에서 가장 가난한 주라고 알려져 있는 그곳의 주민들은 대부분이 마야족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호세라는 8개월짜리 아기를 만났다.
병원에서 폐렴이라고도 하고 그냥 감기라고도 해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아기가 먹지를 않고 계속해서 시름시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호세를 방문해서 필요한 영양식을 전해주고 때마다 간절히 기도했다.
때로는 의사를 대동하고 찾아가기도 했지만 우리는 무엇보다도 선교사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호세를 위해 뜨겁게 기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었고,
가톨릭 신자인 아기의 부모들도 우리의 기도에 눈물로 동참하곤 했다.
호세는 다행히 병세가 나아갔고, 머잖아 제 손으로 우유병을 붙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알베르또는 50대 중반의 남자로 다리에 생긴 피부병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피고름이 흐르는 것을 제대로 소독도 하지 못한 채,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그 병이 피부암인 줄도 모르고 이 약, 저 약을 바르면서 집안의 제단 앞에서
낫기를 빌고 있는 형편이었다.
의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는 호세와 알베르또의 소식을 웹에 올리고, 또한 지인들에게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내서
기도를 요청했다.
선교지에서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선배들의 간증을 우리도 굳게 믿었다.
깔로스는 12살짜리 남자아이이다.
중이염을 심하게 앓고 있는 이 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깔로스의 어머니는
멕시코시티로 돈벌러가서 일 년에 한두 번 다녀간다고 했다.
웬만한 항생제로는 이제 듣지를 않아서 손을 못 쓰고 있다고 할머니는 한 숨을 쉬었다.
우리는 병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깔로스를 위해 컴퓨터와 만화영화를
챙기고 간식을 준비해가곤 했다.
더벅머리를 깎아주기도 하고, 귀에서 흘러나오는 고름을 연신 닦아주면서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면
깔로스는 알고있는 나머지 이야기를 우리에게 대신 말해주기도 했다.
우리가 에스파뇰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도 서로의 이야기를 잘 알아들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그러다가 우리는 선교 훈련을 받기 위해 선교지를 두 달 동안 떠나게 되었다.
그 기간의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아기 호세와 알베르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호세 어머니는 앞니가 빠지고 퉁퉁 부은 얼굴로 우리를 산 위에 있는 호세의 무덤으로 안내했다.
호세의 무덤 주위에는 하얀 들국화가 심겨 있었다.
들국화가 흔들리는 그곳에서 호세 부모와 우리는 하염없이 흐느껴 울었다.
아기 호세를 그렇게 보내고 호세의 부모는 그 마을을 떠났다.
호세가 생각나서 도저히 그 동네에서 살 수 없다는 소식을 전해주고….
알베르또는 평화롭게 마지막 길을 갔다고 부인 마리아가 말했다.
낙심해서 서있는 우리에게 강낭콩이 담긴 깡통을 안겨주면서 고맙다고 말하고 마리아가 울었다.
내가 마리아를 끌어안았을 때 사시사철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마리아에게서
그렇게 햇볕 냄새가 풍겨왔다.
깔로스의 귀에서는 고름이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사역에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 일로 하나님 앞에 소리쳐 기도했다.
“하나님, 제게 강철 심장을 주시든지 아니면 이곳을 떠나게 해주세요!”
그리고 우리는 그곳을 떠나왔다.
하나님은 그것이 강철 심장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셨는지, 아니면 우리가 감당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셨는지, 그래서 그렇게 돌아오게 하셨는지는 지금껏 의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속앓이를 통해 아픈 사람을 주 안에서 품고 기도하는 일에 진심을 다하게 되었다.
여전히 다 낫는 것도 아니며, 내게 오는 감기조차도 낫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선교지에서 아무런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요즘에 와서야 헤아려본다.
병이 낫는 것도, 낫지 않는 것도, 가난한 것도, 부유한 것도, 낮추시는 것도, 높이시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분이 당신의 자녀를 어떤 마음으로 품고 바라보고, 기다리고 계신지를 생각해본다.
기적은 내 안에서 먼저 일어났다.
그들에게 무엇을 주러 간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하나님은 내게 많은 것으로 먼저 주셨던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가난했다.
우리가 가져간 고추장 통에도 눈독을 들이다가 그것이 빈 통이 되는 날이면 냉큼 집어 든다.
나중에 가서 보니 고추장 통이 가족사진을 보관하는 귀한 구실을 하고 있었다.
차로 세 시간 이상 가야하는 시내에서 파는 햄버거 값은 노동자의 하루 일당과 맞먹고,
건장한 청년들이 옥수수 밭일을 나가지만 그것마저 끝나면 일거리가 없어서 빈둥거린다.
여자들은 앞치마를 벗지 못한 채 연기 속에서 음식을 만들고, 가족들의 옷을 짓고,
남자들은 돈도 별로 되지 않는 농사와 노동에 지쳐있다.
치아를 제대로 갖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다.
병원에 가도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의 집을 찾아가서 오히려 힘을 얻고 돌아오곤 했다.
엄마는 늘 집에 있고, 가장은 흙투성이가 되어서 돌아오고, 식사시간이면 온 가족이 모인다.
모여서 열심히 불 피워 음식을 만들고, 유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 음식을 먹고,
이웃에게도 나눠준다.
또띠아와 콩, 토마토가 주식이지만 아주 가끔은 풀 먹여 키운 돼지도 잡고,
알을 더 이상 낳지 못하는 늙은 닭을 잡기도 한다.
고기 냄새에 동네 개들이 모여와 진치고 앉은 모습도 정겹고, 울타리가 없는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 모습도 그렇다.
차요테는 덩굴에서 싹이 나도록 늘어지고, 코코넛 열매는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어른 주먹보다 큰 망고가 익어서 땅에 떨어진다.
아보카도 나무는 지붕보다 훨씬 크게 자란다.
피자나 소시지, 햄을 못 먹어도, 매사에 세상 돌아가는 지식이 부족해도,
나이프와 포크를 써보지 못해도, 양변기를 쓰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우울하거나 살맛나지 않는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나는 선교를 한다고 그곳에 갔지만 오히려 내가 그곳에서 배우고 깨닫는 일이 더 많았다.
그들처럼 마른 떡 한 조각으로도 배부르고 등 따습던 시절이 생각난다.
지금은 가진 게 더 많은데도 마음이 그때처럼 평화롭지 않다.
필요한 것은 점점 더 많아지고 그럴수록 몸과 마음이 분주할 뿐이다.
치열한 여름이었다.
우리 집 뒷마당에 피어있는 금송화, 도라지꽃을 가까이 가서 들여다 볼 수 없을 만큼
뜨겁고 습한 여름이었다.
어느 새,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지고 풀벌레가 밤이 맞도록 소리를 내고,
한낮의 햇볕은 조도가 낮아지고 있다.
하여, 성숙해지고 겸손해지는 계절이 앞에 오고 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 뜨거운 볕, 그 아래에서 젊게 숨 쉬는 숲, 나무, 꽃….그리고
그 아래에서 만났던 사람들. 모두가 아름다운 일들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들이 또 지나간다.
2015.11.04 06:52
2015.12.01 06:07
선배님, 다녀가셨군요!
홈페이지가 새롭게 되긴 했지만 낯설기도 하고 또 그동안 서로
왕래가 없어서인지 문전이 썰렁하기도 해서 그냥 올린거지요...
집 문열렸다고 알려드리려고요. ㅎㅎㅎ
출판 기념회 하셨단 소식 듣고 인사도 못드렸습니다.
막내 해산 간호로, 갑작스런 이스라엘 선교로 계속 바빴네요.
선배님의 목소리 들은 듯 반갑고 감사합니다!
2016.05.07 04:58
귀한 일을 하고 계시네요. 이십여년전에 멕시코 단기선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전 그때 마음을 다해 그들과 함께 하지 못했어요. 그냥 들러리처럼 따라 갔다왔어요.
진심을 다하는 선생님 모습에 그때의 제가 돌아봐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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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최작가님 만의 보람찬 고생담을 읽으니 옛생각이 물씬 나는 글입니다. 지난 여름 문학캠프에 온 이송희 시인을 통해서 선교 가신 이야기 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이렇게 글로 나오다니요. 저는 요즘 글도 안되고 옛날에 쓴 것 가지고 각색이나 해서 가끔 발표도 하고 그렇습니다. 건투를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