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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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댄스 패밀리

2019.09.16 12:03

최영숙 조회 수:123

댄스 패밀리

한국에 계신 엄마가 뇌출혈 후에 치매에 걸렸다. 이제는 아버지를 제외한 주위의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남동생의 말을 듣고, 우리 자매 세 명이 엄마를 보러 한국에 가기로 했다. 엄마가 올케마저도 아버지의 여자인줄로 알고 화를 낼 때가 있다는 말에 긴장을 하고 나선 길이었다.

우리들이 아파트에 도착해서 엄마를 부르며 방으로 들어서니, 엄마가 놀란 얼굴로 우리를 번갈아 돌아보고는 손을 붙들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우리가 당신의 딸들인 줄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하지만 식탁 앞에 나와 앉은 엄마는 곧 아득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누구일까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다가 마주 앉은 나를 보고 엄마가 환하게 웃으면서 반복하는 말, 당신이 날 닮은 걸 보니.......동생이우?

참으로 맘 아픈 말인데도 딸 셋은 엄마 앞에서 깔깔 웃었다. 아버지가 참다못해, 동생이라니, 이봐, 큰딸이야, 큰딸! 미국에서 비행기 타고 자네 보러 왔잖아! 하고 소리를 지르자 엄마가 말했다.

그럼 내가 당신을 낳았어요? 이렇게 머리가 하얀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엄마는 난처한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더니 느닷없이 와도 그으만, 가도 그으만, 방랑의 길은 머언데....” 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기택이 부른 충청도 아줌마였다.

아니, 무슨 일이래, 엄마가 저 노래 가사는 어떻게 외우신대니?”

울밑에선 봉선화야, 늘 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엄마로 알고 있었는데, 엄마의 입에서 충청도 아줌마라니....

아무튼 우리는 엄마가 부르는 노래에 맞추어서 장난삼아 으쌰, 으쌰 몸을 흔들었다. 처음에는 가사를 제대로 몰라서 분위기를 살리지 못했는데, 노래 박자에 맞추다보니 저절로 관광버스 춤이 나왔다. 엄마는 흥이 나서 마포종점을 부르고, 이어서 선창의 유명한 가사, 울려고 내가 왔던 가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슬로우, 슬로우 퀵퀵 하면서 내가 스텝 밟는 시늉을 하자 엄마는 한발 나가고, 한발 나가고, 두발 모으고, 하면서 춤 잘 추던 외삼촌한테 도돔바, 지르박 춤을 배우던 시절에 하던 단어를 기억해냈다. 엄마 얼굴에 홍조가 떠오르고, 관절 수술로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는 엄마는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트로트의 맛깔스럽게 꺾이는 대목에서 실력이 딸리는 나는 급히 찬송가책을 열었다. 흐름이 끊어지면 안 될 일이었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우선 눈에 뜨인 대로 곡을 골라서 시작한 의도치 않은 부흥회는, 불길 같은 주 성령,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치달아 오르고, 부처님도 믿고 하나님도 믿는다는 엄마 앞에서 예수 믿는 딸들은 불로, 불로 충만하게 하소서! 하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양손을 흔들어 돌리다가 치켜들고, 앞으로 뒤로 박자에 맞춰가며 열심히 발바닥을 움직였다. 까짓것, 엄마가 행복하다면 오늘 밤, 망가져도 괜찮아! 마룻바닥에서 올라오는 난방 열기 때문에 바지와 팔소매 까지 걷어붙인 내 모습을 보고 엄마는 연신 소리 내어 웃었다.

우리가 새로 발견한 사실은 이 찬양들이 디스코, 고고, 트위스트가 뒤섞인 막춤하고도 잘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60을 훨씬 넘긴 첫째, 둘째 딸은 노래하고 춤추고, 이제 60을 바라보는 셋째는 엄마 옆에 앉아서 식탁을 두드리며 같이 박자를 맞춰주고. 엔카 가수  "미소라 히바리"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거실 소파에 앉아 건성으로 텔레비전을 보면서 가끔씩 한마디를 던졌다.

너희들이 그런 줄은 진작 알았지만, 이제 보니 아주 신 끼들이 있구나....말은 그렇게 해도 아버지 얼굴에는 흐뭇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효도 부흥회는 엄마가 하도 웃어서 사레가 들리는 바람에 아쉽게 끝내야만 했다.

엄마는 여섯이나 되는 딸들이 한 방에 모여서 고고 춤을 추며 뛰고 놀기라도 하면 거침없이 끼어들어와 에어로빅 클래스에서 배운 솜씨를 뽐내곤 했다.

큰 사위인 내 남편은 이런 처가 분위기를 심히 불편해 했지만, 장모까지 끼어든 춤판을 피할 수 없었던 터라 어떻든 신세기 체조를 하면서라도 치러내곤 했다.

참 이상한 집안이야...뻣뻣한 체조라도 해서 엄마에게 점수를 얻은 남편이 푸짐한 장모밥상을 대하면서 하던 말이었다.

내가 큰 사위를 얻고 나서 맞은 첫 번 크리스마스 가족 파티에서였다.

형제하고 조카들까지 모여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바이블 게임을 하고 난 다음에 사회를 맡았던 조카애가 댄스 타임이라고 말하면서 조명을 어둡게 하고 음악을 틀었다. 당연히 내가 먼저 뛰어나갔고, 뒤따라 동생들하고 내 두 딸이 나왔다. 고고, 디스코 세대인 우리 자매들이 테크노 음악에 맞추려고 애를 쓰다 보니 결국 막춤 판이 되어버렸다. 나중에 막춤 판에 끼어든 조카들까지 신나게 돌아가고 있는데, 큰 사위가 저만치에서 멀뚱히 서있는 게 내 눈에 보였다. 서먹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한 나는 손짓으로 사위를 불렀다. 몇 번을 불러댔더니 사위가 어정쩡한 걸음새로 걸어 나왔다. 그러더니 에라 모르겠다, 라는 듯이 아주 강렬한 개다리 춤을 추었다.

, 와이프아웃 음악이 있어야 하는데... 저 쪽에서 웃고만 서있던 제부가 사위가 추는 춤을 보고 아쉬운 듯이 말했다. 핑클 춤을 추던 여자 조카애가 놀라서 비켜섰고, 사위의 공격적인 춤사위에 눈이 둥그레진 작은 딸이 내 팔을 잡아끌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사위는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을 거라는 듯이 혼신을 다하여 긴 다리를 열심히 흔들었다. 제물이라도 된 듯이 아주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 때 언뜻 보였던 내 남편의 얼굴, 난감해서 사위를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내가 저지른 일이 무엇인지를 그제야 깨달았다.

나중에 큰 딸이 전해 준말이, 참 이상한 집안이야... 사위가 그랬다는 것이다. 아니, 너라도 네 신랑을 말리지, 넌 결혼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게 왜 촐싹거리고 먼저 뛰어 나와? 내 말에 큰애는 치이, 난 하와이 신혼여행 가서 다 탄로 났어, 하고는 깔깔 웃었다. 상금으로 레스토랑 프리 쿠폰을 얻기까지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건 그렇고, 네 신랑은 세대가 어느 세대인데 개다리 춤을 추냐고 말하자 딸애는 최 여사님 수준에 맞춰주느라고 그랬지, 라고 말하면서 입을 비죽였다.

이제 우리 자매들은 엄마를 한국에 두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내년 봄이 되면 한국의 엄마, 아버지를 위한 효도 부흥회를 다시 가도록 해보자고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언젠가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시길, 그때도 엄마가 우리 앞에서 뜬금없이, 와도 그만, 가도 그만, 노래를 부를 수 있으시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비록 엄마가 다시 아주머니가 되고, 아가씨가 되고, 소녀가 되고, 아이가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변함없는 울 엄마 진희 씨임을 감사드리며! 진희 씨,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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