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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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크루즈 패밀리

2013.04.07 22:57

최영숙 조회 수:433 추천:121

                                                                
                                    
이 만화영화는 선사시대에 존재했다는 네안데르탈인 크루즈 가족(The Croods)의 이야기이다.

동굴이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믿고 있는 크루즈 가족은 낮에는 먹을 것을 사냥하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 서둘러 동굴로 들어가 입구를 돌로 틀어막는다.
그곳은 춥고 어둡다.
가족은 한데 엉켜서 잠이 들고 밖에서는 사나운 짐승들이 어떻게든 먹잇감이 있는 동굴 안으로 침입하려고 발버둥이다.

호기심 많은 딸 “이프”는 아버지 “그루그”의 명령을 어기고 밤에 바깥 세계로 나간다.
태양이 사라진 밤에 나타난 빛을 따라간 “이프”는 그곳에서 호모 사피엔스, “가이”를 만나고 난생처음으로 그가 발명한 불을 보게 된다.

“가이”는 크루즈 가족과는 달리 머리를 써서 아이디어를 내어놓는다. 그는 또한 “투모로우”라고 자신이 이름 지은 새 땅이 있다는 것과 지금 디디고 선 이 세상의 끝이 온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이 사실을 크루즈 패밀리에게 설명했지만 “그루그”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프”의 아버지는 고집 세고 가부장적이며 오로지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지식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이다. 새로운 것은 위험하고 좋지 않다는 인식에 붙들려 있는 아버지는 딸이 갖고 있는 동굴 밖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극도로 제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지진이 일어나고 동굴이 무너지고 타르 구덩이에 빠지고, 사나운 짐승의 위협에 직면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그루그”는 “가이”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족을 구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포기 한 “그루그” 덕분에 모두 “투모로우” 땅에서 해후한 그들은 서로 협력한 끝에 마침내 바다가 펼쳐진 새 땅을 발견하게 되고, 크루즈 가족은 동굴 생활을 마감하고 친구가 된 동물들과 더불어 그곳, 파라다이스에서 행복하게 산다.  

쉬지 않고 깔깔 거리는 아이들 틈바구니에 앉아서 이 영화를 보던 나는,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나쁘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나운 짐승과 그 짐승들에게 먹혀 버린 이웃에 대한 이야기를 밤마다 들려주는 아버지 “그루그”.
아버지의 경험으로는 생존을 위한 최선책이 바로 “새로운” 위험을 피해 사는 것이었다. 또한 가장인 아버지에게는 춥고 어두워도 가족이 모두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동굴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장소인 것이다.

“가이”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동굴만을 고집하던 아버지는 지진으로 동굴이 무너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곳을 벗어나게 되면서 혼란에 휘말리기 시작한다.  
혼란 중에도 “그루그”에게는 하나의 기준이 있었다. 가족의 안전 수칙이다. 그것은 내 생명을 버린다할지라도 가족을 지켜내겠다는 사랑의 본능으로 이어지고,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은 가족을 안전하게 지켜낸다.

예전에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처음으로 기타를 들여오고 드럼을 치기 시작했을 때, 나도 “그루그”처럼 혼란을 겪은 적이 있다.

드럼 소리가 천정에까지 올라가고 건물 안이 웅웅 울리기 시작하면 교회 지붕을 칠한 거금을 헌금한 사실이 아까워지고, 그동안 섬겼던 새벽 제단과 살림을 젖혀놓고 쫓아 다녔던 심방, 그리고 마음을 다해 모셨던 목사님까지 순간에 섭섭함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교회가 세상적이 되었다는 탄식이 절로 나오면서 슬그머니 뒷전으로 물러앉다가, 급기야는 다른 일을 빌미로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나중에는 아예 교단마저 옮겨버렸다.

지금은 교회 안에서 찬양을 위해 다양한 악기로 연주하고 댄스를 곁들이는 일마저도 자연스럽게 여겨지지만, 당시의 내게는 드럼이나 큰 북을 교회 안에서 사용하는 일이 상당한 충격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악기를 연주하는 대상에 대한 오해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찬양의 대상이었던 하나님보다는 내 기분과 내 지식과 내 범주가 기준이 되었고, 그 안에서 내 자신이 금을 그어놓고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 새로운 것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닐 경우도 있다. 아이들이 될 수 있는 한 텔레비전을 멀리 하도록 가르치는 일이 현모 역할의 큰 비중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인내심이 약한 나는 잔소리 하는 일에 자주 지쳤고, 그 때문에 텔레비전을 없애버릴 방도를 놓고 고민한 적도 있었다. 아쉽게도 실천은 못했는데, 아이들이 조금 자라서 마음을 놓게 되니까 이번에는 닌텐도 게임기가 나와서 텔레비전에 빼앗기는 시간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게임기와 보내게 되었다. 아이들이 커가는 속도보다 더 빨리 수퍼 닌텐도가 나오고 이어서 플레이스테이션이 나타났다.

닌텐도 시대에 자란 아들은 지금도 수퍼마리오 효과음을 자신의 전화 벨 소리로 넣고 들으면서 그 시절이 그립다고 말하는데, 나는 천만의 말씀, 그 소리를 들으면 동전을 먹으면서 거북이와 피라냐 꽃을 요리조리 잘도 피해 점프하던 콧수염 마리오씨가 생생하게 떠오르고, 고것이 마치 작은 악마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마리오는 이제 고전으로 밀려나고, 인터넷 게임의 홍수 속에서 지금은 네 다섯 살짜리 아이들도 휴대폰이나 디에스, 위 게임을 갖고 노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오늘의 시대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세상이 혼란스럽기는 선사 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새로운 것들이 세상에 흘러넘쳐서 오늘 갖고 있는 무엇인가가 내일이면 바로 구식이 되어버린다. 구식을 지키다보면 포용성이 없다는 말을 듣기 일쑤이고, 새로운 것을 따라가다 보면 세속적이 되기 십상이다. 기준이 모호해지고 판단과 분별이 흐려진다. 이런 속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 내가 바라보는 사랑의 대상이 누구인가, 그 대상이 무엇을 원하는가, 그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이 기준이 된다면 무엇을 받아들여야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답을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 대상에 눈이 고정되어있는 한, 사랑하는 딸 “이프”를 바라보던 아버지 “그루그”처럼 새롭되 유익한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혜안을 얻게 될 것이다.

푸른 바다가 펼쳐진 새 땅에 도착해서 환호하던 크루즈 가족. 먹고 자는 본능만으로 살던 그들이 사람답게 서로를 돌아보며 배려하기 시작했을 때에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도 시작되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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