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2 10:40
< 열흘, 그리고 하루>
“먹어봐. 가나에서 온 거야.”
미리암이 말린 조갯살 하나를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조갯살에서는 후추와 정향 냄새가 강하게 났다.
“네가 좋다고 하면 이 봉투째 다 줄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미리암에게 물었다.
“넌 유대인이라면서 이 조개를 먹어?”
미리암은 봉투에서 말린 조갯살 두개를 집어 들고는 보란 듯이 입에 탁 털어 넣었다.
“그 분도 이해하실 거야. 우리는 가나에서 옥수수 아니면 바나나만 먹고 살아야 했거든.”
미리암이 건네준 조갯살을 처음 입에 넣었을 때는 후추 향이 강했는데, 그것이 정향 냄새를 풍기며 목구멍을 넘어가는 동안에 신기하게도, 가본 적이 없는 아프리카의 햇볕 내음이 입안에 가득 차 올라왔다.
내가 괜찮네,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더니 미리암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조갯살이 담긴 종이봉투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나는 미리암을 커뮤니티 칼리지의 스페인어 교실에서 만났다.
아디오스, 내가 스페인어를 배우려고 한 이유는, 이 말이 주는 울림 때문이었다.
아디오스 아미고, 유투브에서 우연히 들은 짐 리브스의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친구여, 안녕. 하지만 아름답게 들리는 말을 배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무엇보다 여성명사, 남성명사를 구별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며느리가 될 지도 모를 아들의 여자 친구가 콜롬비아 출신이 아니었다면, 내 스페인어는 거기에서 끝났을 것이다.
미리암은 요즘 새로 만나는 남자가 스위스에서 이민 온 더블베이스 연주자라고 내게 거침없이 말했다. 그의 모국어가 스페인어인데, 미리암은 미국 국적을 가진 어머니를 따라와 초등학교 시절부터 미국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영어로 충분히 대화가 가능했지만, 그 남자가 어떤 감정에 빠져들 때, 특히 재즈에 대한 감성으로 차오를 때는 자신도 모르게 스페인어로 말하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갑갑함 때문에 스페인어를 배운다고 덧붙여 말하면서 “이것도 일종의 투자야”라며 미리암은 손가락으로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버지는 아프리카 가나 사람이고, 어머니가 유대인이라는 미리암의 피부는 다갈색이었다. 풍성한 검은 머리숱으로 인해 레바논 여자로 가끔 오인 받는다는 미리암은, 오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나이에도 군살 하나 없는 몸매를 갖고 있었다. 나는 타고난 곱슬머리여서 한 번도 긴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려 본 적이 없었다. 덕분에 짧은 머리를 고수해야 했고, 거기에다 주로 청바지를 입었던 나는, 미리암의 긴 머리와 드레시한 옷차림을 은근히 시샘하며 부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얼굴에서 돋보이는 것은 콧대였다. 반듯하게 자리 잡은 콧대 덕분에 온 얼굴에 균형이 잡혀 보였다. 나보다 한 뼘이나 키가 더 큰 미리암 옆에 서면 나는 그녀의 그늘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세 번은 결혼했고 두 번은 그냥 더불어 살았어. 덕분에 아이들 셋이 성이 다 달라.“
미리암이 아이들 성이 다 다르다는 말을 내게 말했을 때,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사실 제대로 알아듣지를 못했다.
“성이 다른 것처럼 사는 곳도 저희들 맘대로야. 한 애는 독일에, 또 하나는 터키에, 다른 애는 샌프란시스코에 살아.”
미리암은 터키 남자와 살았을 때가 제일 재미있었지만, 두 번 다시 그런 남자와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미국에서 태어났는데도 그 남자는 터키에 가서 두 번째, 세 번째 부인을 맞아들이고는 여전히 자신을 제 1부인으로 여긴다고 하면서 잊을 만 하면 찾아오곤 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캔자스 출신 남자와 한국에서 만났고. 그 금발의 남자와 삼십 년을 같이 살았다고 하면서, 성이 같은 아들 하나가 있는데, 그 아이는 뉴욕에서 산다고 말하니까, 미리암은 내가 박물관에 진열해야하는 골동품이라고 하더니, 다음 날 수업을 마치자마자 하트 모양의 은 목걸이를 내게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는 속삭이듯이 말했다.
“난 말이지... 네가 믿지 못하겠지만, 지금도 운명적인 어떤 만남을 기다리고 있어.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서 그런지, 이제부터는 정말 어디에서 만나도 그 사람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어제 새벽 꿈속에서 그 분의 음성이 들려온 거야.
미리암, 아무리 봐도 네가 보낸 리스트에 딱 맞는 사람은...타잔뿐이야, 그러시더라고...”
미리암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그건 말야... 혹시 콩고로 가라는 계시가 아닐까?”
어느새 더블베이스 연주자를 좀생이라고 걷어 차버린 미리암을 보면서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미리암, 그 리스트 좀 보여줄래? 도대체 뭐라고 했기에 타잔이 뽑힌 거야?”
“그야 물론 섹시미가 제일 조건이지. 야성미, 남성미, 그리고 반드시 로맨티스트여야만 해!”
내가 미리암에게 끌린 것은 그녀에게서 풍기는 은밀한 퇴폐와 그것에 따라오는 분방함과 경망함과 단순함, 그런 것이었다. 미리암이 밝게 치아를 드러내며 경계심을 풀고 웃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고는 했다.
추수 감사절을 2주일 정도 앞둔 어느 날, 모래 색 가죽 트렌치코트를 입은 미리암이 나와 약속했던 대로 새벽 4시에 우리 집 문 앞에 나타났다. 그녀가 택시에 싣고 온 이민 가방을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이곳 볼티모어에서 이스라엘 직항 편이 있는 뉴욕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는데, 가방이 네 개라니... 뉴욕에서 타면 비행기 삯을 6백 불 정도 절약할 수 있다는 미리암의 제안에 동의는 했지만 그 가방들을 보는 순간, 나는 당황했던 것이다. 뉴욕 행 버스를 타고 가서 지하철을 타고, 다시 공항 셔틀로 갈아 탈 생각을 하자니 막막했다. 미리암이 비행기 표를 사줄 테니까 이스라엘까지 자기의 짐을 들고 같이 가줄 수 있느냐고 물어왔을 때 방정맞게 오케이! 라고 말한 일이 후회막심이었다.
미리암은, 이종사촌 언니가 유방암을 앓고 있어서 간호도 해줄 겸, 또한 자신은 간 김에 현대 히브리어를 공부해보겠다는 말이었다. 요즘 유방암이야 병도 아니지, 완치율이 높잖아, 나는 위로랍시고 그렇게 말하고는 열흘간의 여정으로 동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내가 화장실에 가 있는 동안에 예루살렘 행 셔틀이 떠나버린 모양이었다. 다음 셔틀이 출발하려면 열 명이 채워질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고 미리암이 나를 향해 투덜거렸다. 하지만 나는 이스라엘에 첫발을 디딘 감격에 미리암의 불평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볼티모어, 우리 집에서 올려다 본 하늘과 별 다를 바 없는 이스라엘 하늘이었음에도 나는 검은 색 반코트를 벗어들은 채 그 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지나가는 정통 유대인들의 검은 복장을 염치없도록 빤히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미리암의 언니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가 한껏 넘어간 시간이었다. 그곳이 예루살렘 남쪽 변두리라는 미리암의 설명을 들으며 셔틀 버스에서 내리자, 라임스톤으로 지어진 작고 네모난 상자 같은 집들이 연이어 서있는 골목길이 눈에 들어왔다. 길은 언덕으로 올라가며 왼쪽으로 휘어져 있었다. 구부러진 길 안쪽에 작은 공터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이가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예닐곱 살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군복 소매를 접어올리고 긴 소총을 어깨에 메고 있는 남자와 공을 차고 있었다. 둘 사이에서는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골목길은 여기 저기 패어있었고, 길 양옆에는 잡초가 수북했다.
미리암이 바로 앞에 있는 집의 녹색 철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좁은 콘크리트 앞마당에는 정원용 탁자가 놓여있었고, 그 위에는 대나무 발을 올려놓은 차양이 늦은 오후 햇살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마당의 반은 대나무 발로 가려져 있는 것이었다. 탁자 앞 의자 위에 길게 누워 있던 회색 고양이가 우리를 보고는 질겁하고 대문 아래 틈바구니를 통해 밖으로 달아났다.
“타마르!”
미리암이 가방을 끌고 들어가며 소리 높여 이름을 부르자, 잠시 후에 휠체어를 탄 여인이 문 앞에 나타났다. 짧은 머리에 목까지 올라오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가슴이 무릎에 닿을 듯이 구부러져 있음에도 허리를 곧추 세우려고 애를 쓰며 하이, 라고 말했다. 야위고 비틀린 얼굴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눈 주위에 몰려있는 검은 색조가 한눈에 들어왔다. 회색 구름 같이 음울했다.
“하이!”
나는 오른 손을 가볍게 흔들며 되도록 다정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어느 새 돌아온 고양이가 동그랗게 등을 구부리면서 타마르 앞을 지나 의자에 놓인 꽃무늬 방석위로 냉큼 뛰어 올라갔다.
타마르는 나를 보며 대뜸 물었다.
“당신, 일거리를 찾아 여길 온 거예요? 당신도 남편이 없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도르래로 저 아래에서 끌어올리는 것 같이 그르렁 소리를 냈다.
나는 급작스런 그녀의 질문에 답을 못하고 미리암을 쳐다보았다.
“타마르, 내가 말했잖아, 친구랑 같이 간다고”
미리암이 다소 짜증이 섞인 말투로 내뱉었다.
미리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타마르가 거칠게 말했다.
“이방인 여자는 안 된다고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잊어버렸니?”
미리암이 머리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영은 날 도와주러 왔어. 딱 열흘이야. 돈 벌러 온 게 아니라고!”
미리암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남편도 있고 아들도 있어. 아들은 뉴욕에서 살아. 알아? 그 뉴욕에서 산다고! 네가 입에 달고 사는 뉴욕! 이제 됐어?”
미리암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타마르가 나를 향해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그래요? 뉴욕...그거 알아요? 난 브룩클린에서 오년 동안 살았던 적이 있어요.”
미리암이 타마르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가방을 끌고 들어갔다.
엉거주춤 서있던 나는 미리암의 기세에 실려 황급히 집안으로 들어섰다.
거실 바닥은 대리석이었다. 밖에서 보기보다는 제법 넓은 공간이었다.
미리암은 코트를 벗어 거실에 놓인 황토색 소파의 한쪽에 던져 놓고는 털썩 주저앉아서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질끈 묶었다.
타마르가 휠체어를 굴려 나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녀에게서 향유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멈칫했다. 낯선 향이었다.
이국에 와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듯이, 나를 떠밀어내는 공기 입자들이 차갑고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아들이 직장 때문에 뉴욕으로 떠나고 나자, 집에는 달랑 남편과 나만 남게 되었다. 남편은 내 의견을 반대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가운데에서도 조용히 경청하며 내가 참석한 모임이 끝나기를 기다려 주고, 고속도로와 장거리 운전을 싫어하는 내가 어디든 원하기만 하면 거리와 상관없이 운전을 해서 데려다주었다.
반대로 나는 남편이 속해있는 세계에 대해 무심하고 차가웠다. 남편의 어머니, 그러니까 시어머니가 병들었을 때와 장례식 때 외에는 남편의 고향인 캔자스에 가 본 적이 없다.
“당신 고향에 가면 난 원숭이가 되잖아...동물원의 몽키.”
이게 내가 내미는 구실이었다. 한국인이 아니라 아예 동양인을 자기네 마을에서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나를 보려고 일부러 시어머니 집 앞에서 기다리거나 근처를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작고 동그스름한 얼굴에 웃으면 눈이 감기는 내 모습을 보고, 넌 일본인이지? 아님 중국인? 그러면서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 후로는 남편도 나를 굳이 고향집에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고향을 찾아간 것은 삼촌이 세상을 떠났던 12년 전이었다. 남편은 형제자매에게도 전화로만 안부를 전하더니 어느 날부터는 그나마도 하지 않는 눈치였다.
평화 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온 그에게 나는 영어 회화 공부를 하러 다녔다. 900 교재를 가지고 대 여섯 명이 그룹으로 모였는데, 어느 한 날은 그가 진흙 바닥에 신발을 비벼대면서 “머드”라고 말을 했다. 우리는 영문을 몰라서 가만히 서있었고, 다시 그가 손에 진흙을 묻히면서 머드, 머드라고 반복해서 말하자 그것이 진흙을 말한다는 걸 알았다.
그때 그 일로 남편의 별명이 “미스터 머드”가 되었지만, 사실 나는 영어 회화보다는 짙은 하늘 색 티셔츠가 잘 어울리는 금발의 키 큰 남자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가 밟고 다녔을 캔자스의 해바라기 평원과 끝이 안 보인다는 옥수수 밭, 초점을 짐작하기 힘든 그의 푸른 눈이 바라보았을 지평선에 내 상상이 같이 머무르곤 했던 것이다.
고아원에 머물고 있던 그에게 한국 음식이 잘 맞느냐고 내가 묻자, 그는 스크램블 에그에 바삭 구운 베이컨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또 하나, 이 여름날, 매일 목욕을 하지 못하는 일이 힘들다고 말했다. 매일 목욕을 한다니...사치로만 여겨졌던 그 일이 일상생활에서 유지되지 않을 때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는지는 내가 나중에 미국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남편이 된 그는 내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플라스틱으로 된 빨래 바구니 두개를 사왔다. 그의 바구니는 하늘 색이었고, 내 것은 분홍색이었다.
그는 하늘 색 통에 들어있는 빨래만 세탁기에 돌렸고, 또 그것만 다리미질을 했다.
내 빨래 바구니, 내 옷, 내 양말, 내 칫솔, 내 엄마, 내 형제, 내 나라... 남편은 악착 같이 마이, 라는 단어를 붙여서 말했다. 우리 엄마, 우리 동생, 우리나라...연필은 그냥 연필, 접시도 그냥 접시, 숟갈도 그냥 숟갈일 뿐인데 당신은 왜 그렇게 내 것과 네 것을 구별해? 묻는 내 말에 남편은 오히려 반문을 했다. 우리 엄마? 우리 동생? 우리나라? 나는 그 말이 더 이해가 안가네.
어렴풋이 앞으로 남편과 나 사이에 생길 소소한 충돌을 감지하던 날이었다.
타마르는 온몸이 마비되어 있었다. 전화기를 붙들고 있거나 누를 수 있는 왼 손 손가락 세 개와 목 위만이 온전한 듯했다. 목도 간신히 가누었다. 그녀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물과 요구르트였는데, 그나마도 삼키기가 힘들어서 꾸르륵 소리를 내며 한참만에야 식도를 내려갔다.
타마르는 초콜릿 요구르트를 달라고 하다가, 바닐라로 달라고도 하고, 또 순서가 바뀌어서 바닐라를 계속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인상을 쓰며 나를 짯짯이 노려보며 말했다.
“넌 내 말을 알아듣는 거니? 영어는 할 줄 알아?”
그녀의 몸에서 온전한 곳은 오로지 입뿐인 것 같았다.
타마르는 힘들게 요구르트를 삼키는 순간에도 쉬지 않고 전화기의 단축 번호를 눌렀다. 전화기 속에서 때로는 여자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남자 음성이 들리기도 했다. 주로 남자 목소리가 들렸는데, 다 타마르의 아버지 쪽 친척들이라고 짐을 풀고 있던 미리암이 내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렇게 가족들이 밤이나 낮이나 계속 시달려. 간병인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래.”
미리암이 대충 짐을 풀고 나자 나는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를 시작하려고 했다. 설거지를 하려던 나는 싱크대 위에 다섯 개씩 따로 쌓아놓은 두 가지 색깔의 수세미를 보았다. 한쪽은 황금색이고 다른 쪽은 녹색이었다.
“미리암, 이건 뭐야? 수세미가 이렇게 많아? 어떤 걸 써야 돼?”
미리암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황금색은 고기용, 녹색은 야채용이야”
고기용 접시와 다른 접시를 섞어서 씻어도 안 되고, 소고기와 우유, 치즈가 서로 닿아도 안 되고, 미리암은 말을 이어갔다.
“이런 규칙은 밤새도록 말해도 다 못할 거야. 차라리 그냥 둬. 내일 일하는 여자가 오면 알아서 치울 거야.”
미리암은 하품을 하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안식일에는 물건에 열을 가하여 어떤 형태로든 변화시키는 것을 금한다.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건 바로 이거야. 한마디로 요리하지 말라는 거잖아. 헤이, 영. 그거 알아? 이 집에서 안식일에 전기 스위치를 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야.”
미리암이 말끝에 후훗 소리를 내며 웃었다.
“유 노우? 안식일에는 전화도 하면 안 돼. 아름다운 침묵을 위하여! 울 엄마가 랍비야. 토라 찬트를 하는 여자 랍비, 나 같은 세속 유대인이 그런 법을 지키며 살아야한다는 게 어떤 건지, 영, 넌 상상이 가?”
미리암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타마르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헤이, 타마르, 러시아에서 왔다는 쏘피아, 그 여자는 어떻게 지내? 너랑 댄스 클럽에 같이 갔을 때 만났던 금발머리, 너랑 잘 어울려 놀았잖아. 백 달러짜리 지폐만 쓴다던 그 여자. 난 그 여자가 스파이 같더라. 너 아프고 나서 다녀갔어?”
타마르는 아니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미리암에게 소리를 질렀다.
“난 아무도 만나기 싫어! 싫다고오!”
“오케이, 오케이”
미리암이 타마르에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미리암은 벌떡 일어나 샤워를 하겠다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바깥 어두움이 넓은 창문을 통해 대리석이 깔린 거실 안으로 쳐들어오고 있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국에 와 있다는 사실이 더 할 수 없이 실감 났다.
그 때 타마르가 마루 한쪽으로 휠체어를 옮겨갔다. 그곳에서 멈춘 그녀는 벽에 걸린 황금색 액자 속의 기도문을 중얼중얼 소리 내어 읽었다. 그리고는 현관 쪽을 향해 휠체어를 돌려세웠다. 순식간에 타마르가 집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야말로 순간에 일어난 일에 당황한 나는 그녀를 급히 쫓아 나갔다. 타마르가 골목을 꺾으며 사라지는 뒷모습이 가로등에 비쳤다. 나는 집으로 뛰어 들어가 미리암을 불렀다. 타월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려던 미리암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한밤중이나 되어야 바깥을 나가는 거지. 환할 때는 사람들이 자기 모습 볼까봐 못나가고. 어쩌겠어. 답답하긴 하고....”
미리암은 서두르지 않고 문을 나섰다.
두 시간 후에야 타마르는 미리암과 함께 돌아왔다. 미리암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미리암은 질끈 동여매었던 머리를 풀며 타마르에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 할 거야? 그럼 난 돌아갈 거니까 알아서 해!”
타마르는 고개를 한껏 떨어뜨리고 말없이 휠체어를 움직여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미리암이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좀 도와줘, 침대로 옮겨 달래.”
우리는 타마르의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와 서랍장 한 개, 램프가 놓여 있는 좁고 긴 방이었다. 서랍장 위에 놓인 사진 액자를 들여다보고 있던 나는 타마르에게 물었다.
“당신이에요?”
타마르의 우렁이 같이 퀭한 눈에 웃음이 떠올랐다.
“예스, 삼년 전 사진이에요.”
다른 여자들보다 훨씬 키가 큰 타마르는 어깨를 드러낸 빨간 색 드레스를 입고 사람들 속에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숱이 풍성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서있는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은 당당하고 거침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보였다.
미리암이 자기가 타마르의 상체를 들 테니까 나보러 다리 쪽을 들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마비 된 몸이 한없이 흐느적거려서 도저히 휠체어에서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타마르가 침대 옆에 있는 그물이 달린 기계를 가리키며 뭐라고 설명했지만, 우리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사용방법을 알 수 없었다.
밤이 지나 이미 시간은 새벽으로 가고 있었다. 타마르는 고통을 호소하고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여기도 911 같은 구급대가 있지 않아?”
내가 말하자 미리암은 맞아, 하면서 타마르의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곧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한 청년이 방에 들어왔다.
그가 익숙한 솜씨로 그물 속에 타마르를 담아 올려서 침대에 내려놓고는 떠났다.
타마르는 그동안 소변을 참았던 모양이었다. 미리암이 자기가 타마르의 엉덩이를 들어 올릴 테니까 그 밑에 변기를 얼른 넣어달라고 말했다.
미리암이 타마르의 속옷을 끌어내리려 하는 참이었다. 나는 침대 옆에서 변기를 들고 허리를 굽히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타마르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미리암! 노, 노, 노. 난 이 이방인 여자가 내 아랫도리 보는 거 싫어, 너 혼자 해, 혼자 하라고!”
타마르의 비명은 발작 수준이었지만 미리암은 내게 빨리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엉덩이를 받치고 있는 미리암은 힘이 들어서 잔뜩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타마르는 쿠룩쿠룩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난처한 일이었다.
변기를 제대로 넣으려면 할 수없이 그녀의 아랫도리를 볼 수밖에 없었다.
뼈와 가죽만 남은 그녀의 온 몸 중에서 가장 비참해 보이는 곳이었다.
내 눈길이 닿은 곳에서, 다 말라버린 그녀의 여성이 생명을 잃고 오그라져 있었다. 그 언젠가는 사랑을 받고 사랑을 나누며 생명을 받아들이고 펄펄 끓었을 그곳이 이미 형체마저도 잃고 죽어있었다. 나는 애써 눈길을 돌리며 변기를 집어넣었다.
“미리암, 수면제 두 알을 내 입에 넣어줘. 그리고 아침에 날 꼭 깨워줘야 해. 내가 눈을 안 뜨면 막 흔들어서 깨워줘. 알았지?”
미리암이 타마르의 어깨 밑에 베개를 여러 개 넣어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염려 말고 자. 아침이 되면 자동으로 눈이 떠질 거야.”
타마르가 눈을 부릅뜨며 다시 말했다.
“아니야, 꼭 깨워야 해! 그럴 거라고 말해줘.”
“알았어, 타마르. 그런데 왜 그러는 거야? 누구나 밤이면 잠들고 아침이 되면 눈을 뜨는 건데.”
“아니야, 나는....나는 아침에 눈을 못 뜨면 죽는 거야.”
“오 마이 갓. 그럼 죽는 게 무서워서 그래? 아까 너는 저녁 기도도 열심히 하던데, 그러면서 뭐가 두려워?”
“미리암, 그렇게 말하지마. 넌 죽음이 가까이 있지 않아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넌 모를 거야...난 말이지, 그 분을 못 만날까봐 두려워. 아니, 그것보다 쟈슈아, 그 아이가 나를 못 알아볼 까봐, 아니야, 사실은 못 만날까봐, 그게 더 무서워.”
타마르는 또 다시 소리 내어 울었다.
미리암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수면제 두 알을 타마르의 입에 넣어 주었다. 타마르는 그래도 불안한지 억지로 눈을 뜨고 한 시간 이상을 버티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이스라엘에서 맞은 첫날은 밤을 새우는 일로 지나갔다.
수면제를 먹은 타마르가 한 시간 쯤 지난 뒤에 깨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눈은 계속되는 불면으로 충혈 되어 있었다.
머잖아 아침이 되고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타마르는 여전히 전화기를 붙들고 있고, 요구르트를 꾸르륵거리며 삼키고, 어두운 눈으로 나를 살피고, 휠체어를 옮겨 고양이가 터 잡고 앉아있는 정원을 멍하니 바라보고, 그러다가는 몇 초 간격으로 팔을 이리 옮겨 달라 목을 이제는 왼쪽으로, 이제는 오른쪽으로, 하면서 쉬지 않고 내게 요구했다.
미리암이 히브리어 학교에 등록하러 나간 사이에 나는 타마르를 혼자 돌보아야만 했다.
간병을 맡은 남자 간호사는 병원 일이 바빠져서 당분간 못 오게 되었고, 집안일을 돌보는 필리핀 여자마저 갑자기 못 오게 되었다는 미리암의 말이었다.
미리암이 나간 뒤에, 일하는 여자가 못 온다고 타마르에게 말하자, 왜 그 필리핀 여자가 못 오느냐고 타마르는 눈을 치뜨면서 물었다.
“필리핀에서 그 여자 엄마가 와서 공항에 가야한다고 그러더래요.”
내 말을 들은 타마르가 갑자기 흥분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거짓말이야! 다 거짓말이야!”
나는 순간 타마르가 휠체어에서 굴러 떨어지는 줄 알았다. 타마르를 온몸으로 막아서야만 했다.
“이봐요, 그 여자가 내 크레디트 카드를 갖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 그거 알아? 내 차도 가져갔다고! 푸드를 사야하니까 할 수 없이 카드를 주었는데, 때마다 자기네 식료품도 내 카드로 사. 이제는 엄마가 온다는 거짓 핑계 대고 다른 곳에 가서 쇼핑 하려는 거야! 내 카드로!”
타마르가 움직일 수는 없어도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는 것을 나는 알았다.
“영, 부탁이 있어요. 날 좀 뉴욕으로 데려가 줘요. 그리고 거기에서 날 삼 개월만 돌봐줘요.
나, 돈 있어. 돈 줄게, 제발 나 좀 데려가 줘. 당신은 날 속이지 않을 거라고 믿어. 내 주변의 인간들은 모두 내 것을 빼앗아 가.
내 꼴이 이러니까 아무라도 날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다 알고 있어. 저 인간들이 날 어떻게 속이고 내 것을 빼앗아 가는지 다 안다고!”
타마르는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간신히 그녀의 시선을 걷어내며 말했다.
“미리암하고 얘기 해봐요. 미리암은 당신을 위해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내 말을 듣자 타마르가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미리암? 그 애가 날 위해서 왔다고? 천만에! 여기 오는 비행기 삯, 셔틀 비까지 나한테 가져간 애야.
걔는 내가 죽을 때만 기다리는 거라고.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갖게 되겠지. 걔는 그래서 온 거야. 인베이드, 쳐들어 왔다고!”
나는 내 땅에 가서 죽을 거야, 충수염 수술을 마친 내가 회복실로 옮겨왔을 때, 남편에게 내뱉은 말이었다.
남편이 팔짱을 끼고 서서 창문을 내다보며 안개가 많이 끼었네, 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엄마가 그렇게 가지 말라고 붙들었는데도 남편의 금발머리 뒤통수만 바라보며 공항을 빠져 나온 일이 생각났다.
지금 엄마는 치매에 걸려있다. 나쁜 년, 날 미국으로 보내며 울던 엄마는 지난 해, 16시간을 비행해서 찾아간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나는 남편에게 엄마가 뇌혈관성 치매에 걸렸단 말을 전했지만 내 감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바닥에 깔린 감정이 엄마에 대한 죄의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얼굴을 바꿔서 남편에 대한 분노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플라타너스가 주욱 늘어선 길을 갈래머리를 한 내가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누워있는 엄마의 얼굴 위에 겹쳐서 떠올랐다.
풀 먹인 교복 칼라만큼이나 도도하고 꼿꼿하게 걸어가는 내 앞에 엄마가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서둘러 방직 공장 일터로 돌아가야 할 엄마가 나를 향해 빨리 좀 걸으라고 손짓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 뒤를 쫓아만 갔다.
엄마는 관절염 때문에 항아리처럼 휘인 다리로 나보다 빨리 걸었다.
퉁퉁한데다 예쁘지는 않지만 정 많고 쾌활한 엄마는 몸을 좌우로 흔들어 춤을 추며 나를 웃기려고 애를 썼다.
일찍이 혼자 된 엄마가 나를 대학에 보낼 형편이 되질 않자 자장면을 사주며 나를 설득하던 날이었다.
둘이나 있는 남동생을 생각해서라도 네가 양보하라는 엄마의 말이었다.
왜 내가? 라고 하면서 달려드는 날 보고 엄마 눈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나는 끝내 못 본체 했다.
미국으로 떠나오기 전날, 나는 엄마한테 말했다.
“난, 미국 가서 다시는 안 돌아올 거야.”
그 때 엄마에게 모질게 한 그 말이 다시 내게 돌아와 가슴에 와 꽂히는 것을 나는 느꼈다.
미리암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학교 등록절차가 생각보다 복잡해서 내일도 가봐야 한다는 말이었다.
필리핀 여자는 내일도, 아마 앞으로도 계속 오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되묻자 미리암은 양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놀랄 일도 아니야, 타마르가 너무 못되게 굴어서 사람들이 오래 견디질 못해. 의심도 많고 고집도 세고. 자기 혼자밖에 몰라.
타마르 옆에는 아무도 없어. 오죽하면 내가 왔겠어.
돈 워리. 내가 그 필리핀 여자한테 연락해서 잘 달래보든지 다른 사람을 구해보도록 해볼게.”
나는 타마르가 자기를 미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는 말을 꺼내려다 말았다.
다음 날, 미리암이 내게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필리핀 여자는 아무리 달래도 다시 안 온다 하네. 오히려 날더러 와서 차랑 카드를 가져가라고 큰소리야.”
미리암이 슬쩍 내 눈치를 살폈지만,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오케이, 하고 말했다.
타마르는 아침 기도문을 읽고 나서 탈무드 전집이 꽂혀있는 거실을 불안하게 이리저리 돌아 다녔다.
그녀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면서 누구에겐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의 반은 애걸이고 반은 명령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요구르트를 먹다가 사레까지 들렸다.
나는 타마르의 입에서 흘러나온 요구르트를 닦아주고 타마르가 요구하는 대로 초콜릿과 바닐라 요구르트를 교대로 조금씩 떠서 입안에 넣어주었다.
“남편을 만나러 가고 싶은데 아무도 안 데려다 주네.”
타마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요? 남편이 어디 먼 곳에 있나요?”
“그 사람은....교도소에 있어요.”
타마르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다 내 잘못이야. 나 때문에 그 사람이 그렇게 되었어요.”
나는 불현 듯 호기심이 일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랬어요?”
타마르는 잠시 주저하다가 흥분한 듯한, 그러면서 어딘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남편 친구하고 데이트를 했어요. 남편 몰래... 결국, 들켰지요. 남편이 그 친구를 찾아 간 거예요.
그리고 무작정 두드려 팼대요. 사과를 받아내고 헤어졌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친구가 자기 집에 돌아가서 죽은 거지요.
뇌진탕이었대요.”
나는 방에서 보았던 타마르의 사진을 떠올렸다.
숱 많은 검은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당당하게 웃고 있는 그녀.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다는 그녀의 자신만만하던 삶이 사진 속에 그대로 있었다.
약간 긴 얼굴에 우뚝 솟은 콧대가 미리암과 많이 닮은 모습이었다.
“나는 남편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끝내 못했어요.
그 때, 남편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반항심이 생겨서 오히려 그 사람한테 심한 말을 하고 돌아서버렸어요.
그건 내 진심이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젠 너무 늦은 것 같아요....”
타마르는 체념도 아니고 후회도 아닌 것 같은, 아니면 둘 다인 것도 같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휠체어를 돌렸다.
타마르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왠지 마음이 조급해졌다.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딱히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그런데...타마르, 뉴욕에는 왜 그렇게 가고 싶어 해요?”
내 입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뒤에 타마르는 휠체어를 천천히 내게 돌리며 말했다.
“그때 난 서른 세 살이었어요. 그 나이가 되었어도 나는 세상에 대해 아는 게 없었어요.
브룩클린에서 살았지요.
컴퓨터 공부를 하는 동안, 첫 남자를 만나 그 곳에서 같이 살았어요.
하지만 그 후로 한 번도 다시 가보질 못하고 이렇게 되었네요.”
타마르는 숨을 몰아쉬었다.
“브룩클린, 거기에서 두 번 임신을 했어요. 하지만 두 번 다 유산했어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두 번째는 사산이었어요. 거의 다 날이 찼었는데...결국 또 잃어버렸지요.”
타마르의 목에서 쇳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물을 떠 먹여 주고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아무리 먹지 못한다 해도 물과 요구르트로 어떻게 연명을 할 수 있을까.
그 안에는 요구르트 한 상자와 계란 한줄, 감자, 양배추 그리고 석류 두개가 있었다.
나는 타마르에게 물었다.
“야채 스프라든가, 그런 거를 만들어 줄까요?”
타마르는 우렁이 같은 우묵한 눈으로 나를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코셔가 아니면 난 안 먹어요! 그건 내 음식이 아니야. 그 필리핀 여자꺼라고.”
나는 필리핀 여자가 사다 놓은 감자를 꺼내서 껍질을 벗기고, 계란을 삶았다.
주방 안에 접시를 들고 어정쩡하게 선 채로 나는 삶은 감자와 계란을 우적우적 입에 집어넣었다.
감자와 계란이 코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하는 동안 곧 목이 메어왔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나서 나머지 감자를 먹었다.
아무런 맛을 느끼지 못했지만 왜 그런지 다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필리핀 여자는 왜 감자를 사다 놓았을까, 양배추는 또 왜...그녀도 이곳에 서서 이렇게 우적우적 감자를 먹었을까.
탈무드 전집이 촘촘히 들어있는 책장이 놓인 거실 바닥에서 찬 기운이 등판에 서늘하게 옮겨왔다.
아침저녁, 타마르가 올려다보며 읊조리는 히브리어 기도문이 들어있는 황금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 랍비들의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 속에서 흰 가운을 입은 랍비 바바 살리가 오른 손을 이마에 얹은 채 복잡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길을 붙잡고 마지막 감자를 꾸욱 삼키면서 물 한 잔을 다 마셨다.
내가 서있는 이곳에서 똑바로 걸어가면 어디가 나오나...
안개가 자주 끼고, 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리고, 봄, 가을은 언제 지나갔는지, 바로 여름으로 들어갔다가 가을인가 하면 뼈를 삭이는 긴 겨울이 시작되는 우리 동네, 그 볼티모어는 어디쯤에 있는 걸까.
이 집에서 해는 어디에서 뜨고 어느 쪽으로 가라앉는 것일까.
나는 빈 접시를 설거지통에 넣으며 초록색 수세미를 집어 들었다.
미리암이 학교를 쉬는 날, 간병인이 새로 왔다.
러시아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왔다는 유대인 여자는 다행히 젊고 튼튼해보였다.
이스라엘을 떠나기 전에 예루살렘 올드 시티를 가보고 싶다는 내 말에 미리암은 택시를 불러주었다.
머잖아 대문 앞에서 경적 소리가 들렸고, 배낭을 짊어지고 나간 나를 보고, 키가 크고 턱수염을 기른 아랍인 택시 기사가 쌍꺼풀진 눈으로 웃음을 지었다.
“영, 염려 마, 이 남자는 내 친구야.”
주춤하고 서있는 내 앞으로 미리암이 나서며 말했다.
미리암이 그에게 오른 손을 내밀자 아랍인 택시 기사가 두툼한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고 손등 위에 입을 맞추었다.
“맞아요, 우린 제법 오랜 친구랍니다.”
그는 성전 산 입구, 덩 게이트 쪽에 나를 내려놓으며 몇 시까지 데리러오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다섯 시까지 와달라고 말하고 나는 통곡의 벽을 향해 걸어갔다.
하늘은 파랗고 공기는 건조했다.
통곡의 벽에 가까이 서서 기도문을 읽고 있는 유대인 여자들 틈에 간신히 끼어들어간 나는, 그 벽에 손을 대어보고는 돌아 나와 광장 맞은 편 계단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2천년을 돌아온 유대인들이 성벽 틈새에 꽂아놓은 소원, 어쩌면 지금 그것들이 성벽을 쌓은 돌들보다도 더 꿋꿋하게 성벽을 받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인도인, 중국인, 러시아인, 나이지리아인...그나마 국적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 성벽 쪽으로 다가가고, 그곳에서 돌아 나온 사람들이 나를 또 지나쳐 어디론가 부지런히 사라지고, 웅얼웅얼, 알아듣지 못하는 이국의 언어가 자장가처럼 들리는 순간에도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쓴 정통 유대인들은 여전히 벽에 붙어 서서 기도문을 읽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온 몸이 풀솜 같이 처지고 눈꺼풀이 자꾸 내려왔다.
지도 한 장을 들고 성전 산을 둘러보고, 아랍인 시장 쪽으로 나가 비아 돌로로사, 수난의 길을 지나고, 골고다 성묘교회를 돌아 나와, 아르메니아인 구역에서 손으로 문양을 그린 접시를 넋을 놓고 구경하다가, 시온 문으로 나가 마가의 다락방을 거쳐 돌아와 보니 어느덧 오후 5시가 되었다.
아랍인 택시 기사는 정확히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되면 자기를 꼭 불러달라고 하면서 자기는 필라델피아에서 레스토랑을 했었노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로 왜 돌아왔느냐고 물었더니 활짝 웃으면서 자기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내 고향으로 돌아온 거지요.”
“그럼 베들레헴에 살아요?”
“아니요, 고향이기는 해도 먹고 살려면 분리 장벽 안에서 살 수는 없어요.
새벽 네 시부터 줄을 서도 장벽을 빠져 나오기가 힘들거든요.
난 예루살렘 서쪽에 있는 아파트에 살아요. 이 성전 산이 다 내려다보이는 곳이랍니다.”
“아무리 고향이래도 폭탄이 날아오는 위험한 이 땅에서 사는 게 더 나은가요?” 내가 묻는 말에 그는 대답했다.
“예전에 내 할아버지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요르단으로 쫓겨났어요.
집이고 재산이고 다 놓아두고 추방되었던 거지요.
그 분은 요르단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실향민으로 살다가 돌아가셨지만 이제는 달라요.
여기는 내 나라예요. 그건 아무도 나를 쫓아낼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가 나를 돌아보고 베들레헴에 가면 돼지고기도 살 수 있다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아랍 사람들도 돼지고기를 먹나요, 하고 내가 물었더니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안 먹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파티에 돼지고기를 주로 쓴다고 말했다.
택시 기사에게 명함 한 장을 받아들고 차에서 내려 타마르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급작스런 저체온 증상으로 타마르가 응급실에 실려 갔던 것이다.
이틀 후에 타마르는 돌아왔다.
목욕까지 해서 깔끔해진 타마르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타마르에게서는 색다른 향유 냄새까지 풍겼다.
집안 전체가 향으로 가득 차올랐다. 강하면서도 깊게 가라앉는 향이었다.
“타마르 남편한테서 영상편지가 왔어.”
미리암이 긴 머리를 틀어 올려 묶으며 말했다.
“하긴 뭐, 누구든 죽음 앞에서 용서 못해 줄 일이 어디 있겠어.”
타마르는 한껏 기분이 좋아보였다. 타마르는 상대방의 눈길을 전혀 피하지 않는 직선적인 눈빛으로 나에게 하이, 라고 인사를 했다.
“그래, 어땠어요? 지난번에 갔던 올드 시티는?”
나는 타마르의 질문이 너무 의외여서 대답을 못하고 우물 쭈물거렸다. 질문 내용보다는 다정하게 묻는 그녀의 말투 때문이었다.
“우리한테는 그곳이 모든 것을 의미하지만 유대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거길 찾아온다는 사실이 난 좀 의아해.
더군다나 기독교인들의 열광은 도무지 이해 못하겠어.”
타마르는 애초부터 내 대답은 기대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를 향해 마지막 말을 던지고는 휠체어를 굴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미리암이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비죽거렸다.
남편에게서 나를 만나기 전에 고향에서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사실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나를 만나기 전의 일이었고, 그것도 미국 땅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는 것이 나를 너그럽게 했기 때문이었다.
시카고에 살고 있다는 그 여자가 먼저 남편을 찾아냈고, 그녀에게서 남편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을 때만 해도 나는 남의 일처럼 여겼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그녀를 만나기 위해 가방을 꾸리고 나설 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시카고에 다녀와야 해. 당신과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한때는 내가 결혼하기로 맘먹었던 사람이야.
제대로 정리를 못하고 헤어졌던 게 내내 맘에 걸렸어.
난, 그 후유증으로 한국으로 갔던 거야. 지금, 요양원에 있다는 군. 보내 줄 거지?”
뼛속 깊이까지 남편을 알고 있지 못한다는 회한이 내 자존심을 긁었기 때문에 나는 남편을 막지 않았다.
남편은 그것을 나의 허락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어린애처럼 웃음을 잔뜩 머금은 얼굴로 몇 번이나 손을 흔들어 주고는 공항 안으로 사라졌다.
남편이 함박웃음을 띄우고 예전에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를 만나기 위해 공항 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나는 무인도에 남겨진 기분이었다.
“무인도에 남겨진, 그런데 아주 더러운 기분이었어...”
남편에게 나중에 이야기했을 때 남편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그 때 왜 말 안했어? 쿨 하게 네가 보내준 거잖아.”
나는 하마터면 한국말로 욕을 할 뻔했다.
남편이 시카고에서 돌아와 내가 묻지 않아도 했던 말은, 그 여자가 남자를 세 번이나 바꾸면서 살아왔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는 것, 자식도 없고 재산도 없고, 남은 거라고는 파킨슨병이라고, 종이컵도 제대로 들지 못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남편은, 그 여자가 나를 떠난 이유를 말 안 해도 너는 알지? 하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니 실제로 달라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이 제 자리로 돌아왔다.
남편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시카고의 여자도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는 오랫동안 같이 자란 우정이 깊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슴을 유리 조각으로 베인 듯이 쓰라리고 아팠다.
그것은 드러난 그의 과거보다는 그와 나 사이에 언뜻 보이는 작은 균열 때문이었다. 메워 지지 않는 틈새가 나를 쓸쓸하게 만들었다.
“코스모스를 심어야겠어요.”
봄이 되면 내가 남편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했지만 한 번도 코스모스를 심은 적은 없었다.
코스모스가 주는 그리움은 학교에서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시작되었다.
그 길에서 만나는 철길 옆에는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어디론지 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차창으로 낯선 도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지나가고, 작은 도시를 서지 않고 통과해야하는 기차는 연신 소리를 질러댔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서는 코스모스가 말없이 흔들렸다.
새파란 가을 하늘 아래에서 흔들리는 코스모스는, 기적 소리를 남기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달려가 버린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연민과 그리고 그들이 도착할 미지의 장소로 나를 이끌어 가곤 했다.
“코스모스? 그것보단 해바라기가 더 좋잖아?”
어느 해, 남편의 고집대로 코스모스 대신에 심은 키 작은 해바라기는 씨가 들어서자마 자 새들이 달려들어 파먹는 바람에 시커멓게 변하더니 아예 죽어버렸다.
다른 해에는 각 종류별 야생화 씨를 뿌렸는데 싹이 나기도 전에 새들이 모두 먹어버려서 싹도 보지 못했다.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고 싶네...”
중얼대는 내 말을 들은 남편은 나를 차에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려갔다.
세시간 이상을 달려가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들어서자 길 가운데 무더기로 심겨있는 코스모스가 나타났다.
코스모스 밭은 한참을 달려가도 끝나지를 않았다.
그런 대단한 양의 코스모스를 보고도 시무룩해 있는 나를 남편은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철길 옆의 코스모스를 밀쳐내고 항상 나타나는 것은 남편의 고향, 캔자스의 끝없이 펼쳐지는 해바라기 밭의 장렬함이었다.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해바라기의 넓적한 얼굴, 그 얼굴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에 심겨진 모습은 장관이었지만 내게는 부러움도 연민도 상상의 세계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그저 커다란 해바라기 밭일뿐이었다.
미리암이 학교로 가고 나자, 나는 냉장고를 깨끗이 닦은 다음 요구르트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미리암이 타마르를 위해 사다 놓은 대추야자 시럽을 잘 보이게 앞으로 당겨 놓았다.
그리고는 미리암이 말한 대로 “샤론의 장미”라는 이름의 향유를 디퓨저에 두어 방울 떨어뜨려 넣고, 기왕 나선 김에 대리석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그때, 타마르가 휠체어를 밀면서 거실로 나왔다. 그녀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 져 있었다.
“도대체 내 크레디트 카드는 누가 갖고 있는 거야?
필리핀 여자한테서는 받아왔다면서, 왜 내게 돌려주지 않는 거야?
당신이 알고 있어요?”
나는 타마르의 질책하는 말투에 기분이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미리암이 갖고 있겠지요. 그래야 학교 끝난 다음에 장을 봐 오잖아요.”
나, 아니 이 이방인 여자는,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당신과는 다시 볼일도 없으려니와 당신 나라에 관한 모든 것까지 이렇게 바닥을 닦듯이 싸악 지워버리고 싶노라고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을 꾸욱 참았다.
하지만 맘과는 달리 나는 어느 새 냉장고 문을 열고 요구르트를 꺼내서 그 속에 대추야자 시럽을 따라 넣고는 타마르 앞에 마주 앉아 있었다.
여전히 굴커덩거리며 제대로 삼키지 못하는 그녀 입에 요구르트를 조금씩 떠 넣어주었다.
간신히 한 모금을 삼키고 난 그녀가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다음에 또 오게 되면 나를 꼭 만나러 와줘요. 그 때는 내가 길갈에 데리고 가줄게요,
당신들이 아는 길갈이 아니라 우리가 그 곳이라고 믿고 있는 장소가 따로 있어요.
그리고 돌아갈 때, 날 브룩클린에 데려다줘요. 그렇게 해주겠어요?”
어떻게 이 여자는 이 지경이 되어도 내일을 꿈꾸며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내일이 되면 눈을 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내일 아침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걸까...
경이로운 일이었다.
타마르에게 비록 내일이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사실 그녀에게 오늘 주어진 그날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공유한 날인 것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을 지상에서 공유하는 것이다. 그 때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현재 진행형이다.
“브룩클린에 누가 있나요?”
내 질문에 타마르는 꿀꺽 침을 삼켰다.
잠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더니 결심한 듯이 말했다.
“나는 브룩클린에 영원히 못 갈지도 몰라요.
그래서 부탁이 있어요. 꼭 들어줘야 해요. 그렇게 해줄 거지요? 플리즈!”
타마르는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서 그녀는 삼년 전에 찍었다는 빨간 드레스를 입은 그 사진 액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사진을 내가 말하는 누구에게 전해 줄 수 있을까요?
영, 당신이 사는 볼티모어에서 브룩클린 까지는 얼마나 걸려요?”
“왕복하려면 하루가 필요해요.”
“그 하루를, 날 위해 써달라고 부탁해도 될까요?”
나를 향해 얼굴을 들어 올리느라고 애쓰는 타마르의 얼굴에서 사진 속 그녀의 예전 모습이 얼핏 드러났다.
그 얼굴을 보고 있는 동안, 예상치도 않은 연민이 솟아 올라와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오케이, 어떻든 얘기해 보세요”
“브룩클린에 샬롬 필드 공원묘지가 있어요.
그곳에 가면 그 애가 있어요. 커다란 사이프러스 나무 옆에...쟈슈아... 그래요, 난 지금도 그 아이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어요.
눈도 못 떠본 아이의 얼굴에 슬픔이 가득했어요. 난 쟈슈아를 거기에 묻고 브룩클린을 떠나왔어요.
그 얼굴을 지울 수가 없어서, 두려워서 도망쳤지요.
그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어요.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 타마르, 당신이 원하는 건...”
“맞아요. 베이비 쟈슈아한테 이 사진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해서요.
그러면 그 아이가 나를 만났을 때 곧 알아볼 거예요.
그렇겠지요? 영, 당신은 내 부탁을 들어줄 사람이라는 걸 첨부터 알고 있었어요.”
타마르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고통과 탄식이,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이 그녀의 온 몸에서 묻어 나왔다.
그녀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아디오스, 친구여. 우리는 서로 알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이 땅에서 다시는 못 만날 것이다.
나는 액자를 집어 들었다. 사이프러스 나무 옆에 묻혀있는 아기 쟈슈아.
아기 쟈슈아는 타마르의 가슴 속에서 자라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가슴 속에 살아있다면 그는 더 이상 죽은 자가 아닌 것이다.
타마르가 만난 남자는 미국 청년이었다. 유대인인 그녀에게는 이방인이었다.
남자는 유대인의 독특한 관습에 매료를 느낀 것일 뿐, 유대인의 규율을 지키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자는 약속과는 달리 안식일을 지키는 기본적인 율법조차도 지키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주말이면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더욱 많은 사람이었다.
첫 번째 아이를 잃었을 때는 충격으로 슬프고 괴로웠지만, 극복할 수 있었다.
곧 두 번째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마저 잃고 나자 타마르는 그것이 이방인을 따라간 죄에 대한 대가였다고 생각했다.
타마르의 두려움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두려움을 피해 다른 사람의 품을 찾아다닌 것도, 마치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으면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린아이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텔아비브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푸른색과 초록색이 겹겹이 늘어진 러플드레스를 입은 미리암이 내게 메모지를 넘겨주며 말했다.
거기에는 쟈슈아 이름 아래 공원묘지의 포스트 번호가 적혀 있었다.
“난 언제 돌아갈지 몰라, 어쩜 아주 안돌아 갈지도 모르겠네.
볼티모어는 무겁고 습하고 지루해.
브룩클린에 가면 쟈슈아한테 내 안부도 전해줘.
이제는 이 이모가 더 이상 찾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해주면 댕큐.
그곳에 가면 사이프러스 나무 세 그루가 있는 곳을 찾아봐. 그게 더 찾기 쉬울 거야.”
나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미리암의 길고 가는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 그녀의 손가락 끝에는 매니큐어 색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손톱이 있었다.
검은 색에서부터 주홍, 보라색, 초록색, 분홍, 펄이 들어간 황금색, 반짝이가 들어간 은색....거기에 비해 나는 타고난 천연색, 그 단조로운 손끝을 오므려서 가볍게 주먹을 쥐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미리암, 네가 말한 대로 할게.
그리고 언제고 콩고에 가게 되면 날 불러. 내가 가방 도우미로 또 가줄게, 알았지?“
우리는 오, 예, 타잔을 찾아서! 라고 함께 소리치면서 깔깔 웃었다.
공항 문 앞에서 미리암은 나를 가볍게 안으며 바이, 가드 블레스 유, 라고 말하고, 하늘 색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가락을 찬찬히 흔들었다.
그녀는 레바논 여자처럼 검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등 뒤로 넘기며 차안으로 들어갔고 곧, 멀어져갔다.
밤을 가르고 솟아오른 비행기는 날개 끝에 작은 등을 내내 켜고 날아갔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불빛을 바라보면 별 하나가 내려와 앉은 것 같기도 하고 별 하나가 비행기를 쉼 없이 따라오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타마르, 미리암, 남편, 엄마, 시어머니, 시카고 여자, ...아랍인, 중국인, 나이지리아인, 인도인...그 무수한 사람들이 하늘 아래로 멀어져 가고 나는 하늘 위로 자꾸 올라가고 있었다.
어찌된 일일까...땅에서 멀어질수록 나와 관계된 사람들도 그만큼 멀어져 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내게서 멀어져 갈수록, 서서히 내 맘속에 익숙지 않은, 어떤 낯선 느낌이 일어났다.
쓸쓸하면서 가슴이 시리고, 그런가 하면, 숲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할 때처럼 어디에선가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자 그동안 내가 느낀 대로, 내가 본 대로, 내가 들은 대로, 빨간 주머니, 파란 주머니, 하얀 주머니에 맘대로 집어넣었던 구슬들이 그곳에서 도르르 굴러 나왔고, 그것들은 이리저리 흩어지면서 시야를 벗어나 멀리 멀리 사라져 갔다.
나는 골똘히 그것을 마음속의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이것은 무슨 느낌일까... 그러자 나는 문득, 별것도 아니고, 별일도 아니고, 별 사람도 아닌 데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유로움. 그리고 그 순간, 내 몸이 솜털 같이 부드러운 그 무엇인가에 실리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별것도 아니고, 별일도 아니었으며, 별 사람도 아닌, 그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나에게만, 나를 향해서만,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가졌던 그 연민이 봄바람처럼 나를 감싸 돌았고, 그것은 하늘 아래로 내 생각의 줄기를 따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비행기 날개에 붙어있는 불빛을 바라보며 소리죽여 울었다.
이른 새벽에 볼티모어 공항에 도착했다.
현실. 발은 디뎠지만 그래도 출구로 나가지 않았으니, 열흘간의 탈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게이트를 나와 출구가 있는 곳으로 걸어 나가다가 긴 의자에 혼자 앉아있는 남편을 보았다.
그가 전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구부정한 등허리와 옆얼굴을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멈칫하고 그 자리에 섰다.
남편은 푸른 색 셔츠를 입고 하염없이 다른 출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데이지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그것도 파란색, 노란색, 오렌지색등, 총천연색으로 염색된 것들이었다.
나는 되도록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
조심을 해도 끌고 가는 가방 바퀴에서 드르륵 소리가 났다.
걸어가는 동안 꽃다발을 들고 앉아있는 남자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시간이 훑고 지나간 그의 등허리와 머리카락에 내 눈길이 머물렀다.
나는 얼굴에 아무런 감정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비행기 안에서 나를 휘감았던 봄바람 같은 연민이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남편은 꿋꿋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바로 곁에 가서 서자 그제야 그는 얼굴을 돌렸다.
남편은 나를 보자마자 동시에 벌떡 일어나 함박웃음을 지으며 꽃다발을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어정쩡하게 받아들었다.
“코스모스가 없더라고, 동네 스토어를 다 뒤져봤지. 그래도 이게 코스모스랑 제일 닮았어.”
남편이 내게 데이지 꽃을 넘겨주며 한 말이었다.
“나는 하얀색 데이지를 좋아해, 이런 요란한 색깔 말고. 유치하잖아...”
퉁명스런 내말에 남편은 가방을 받아 끌며,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꽃이 시들까봐 유리병에 담아왔는데, 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한 손으로 잡고 한 손으로 운전하고 왔어.”
나는 꽃다발에 코를 묻었다.
아무런 향이 없었다.
코스모스를 닮았는지 아닌지도 모를 총천연색, 하지만 나는 그 야단스런 꽃다발을 두 손으로 끌어안았다.
<2021년 미주문학 가을호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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