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오늘:
21
어제:
29
전체:
46,378

이달의 작가

당신을 증명하세요.

2022.12.30 18:55

최영숙 조회 수:35

캔사스 남부, Wichita 시의 연방 법정에 있는 사람들은 지구의 반 바퀴 너머에 있는
마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증언을 듣고 있었다.

발렌스 무린당가보는 증언을 하면서 연신 눈물을 닦았다.

“싹 쓸어버리라고 했지요. 죽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은 정글 칼에 맞아서 죽었어요.
물구덩이 가까운 곳에서요.... 코바가야, 저 사람이 그렇게 명령했고,
그는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이 죽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증언하는 무린당가보는,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간신히 의자에 기대어 앉은 팔십 대 남자를 노려보았다. 

이 증언에 의해 법정은 두 달 후에 다시 열릴 예정이었으며,
1994년 르완다 학살 사건이 가져다 준 한 산골 마을의 비극을 17년 후에 미국에서 재심리 하게 되었다.

처음에 코바가야는 학살사건으로 기소된 것이 아니라 거짓으로 시민권을 획득한 일로 기소되었다.
조사하는 중에 그가 학살 사건에 가담한 것이 탄로 났고, 그 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코바가야에 대한 증언을 듣기 위해, 5개국에서 찾아 낸 50여명의 증인을 불러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인터넷 뉴스에서 우연히 발견한 나는 이미 잊었던 오래 된 사건을 회상 할 수밖에 없었다.

“쿠르츠 카림이 누구입니까? 혹시 이름 들어보셨어요?”

이민 전문 변호사가 우리에게 물었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누구지?
“선생님의 영주권 번호에 이 사람 이름이 올라가 있네요.”

변호사는 심각한 얼굴이었다.

“이 문제 때문에 인터뷰를 하고도 진척이 안 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 상태에서 영주권을 받기는 어렵게 되었네요.
선생님 댁은 이미 육 개월 전에 추방된 거로 기록되어있어요.
지금은 아예 파일이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자녀분들의 유학 비자를 빨리 신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상태로는 대학 진학은 물론이고 잘못하면 온 식구가 아무 때라도 추방될 수 있습니다.”

변호사는 어쩌면 미국 연방 수사국에서 우리를 추적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르완다 학살 사건의 주범이 팔십여 명이 되는데 그 중에서 이십여 명이 미국으로 도피해 왔답니다.
쿠르츠 카림은 그중의 한 사람이래요.”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요?”

내가 더듬거리며 묻자 이순신 장군의 후손이라는 변호사는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지금 그 경위를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민국에서는 한 번 내린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선 대처를 하셔야 해요. 언제든지 이민국 직원이 찾아와서 공항까지 직접 데려갈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되면 십 년 동안은 미국에 입국할 수 없거든요.
그렇지만 자진해서 출국하시면 삼 년 뒤에는 다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변호사는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뒤에 다시 한 번 이 일을 이민국에 조회해 보겠노라고 말했다.

결국, 변호사가 알아낸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그것은 내 남편이 쿠르츠 카림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내는 일이었다.

“괜히 걱정했네.... 그거야 간단하지 뭐.”

우선 대한민국의 여권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증명이 안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여권은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생각 끝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쿠르츠 카림이라는 이름은 한국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메릴랜드 한인협회에 찾아가
편지를 받아서 이민국에 제출했다.
그것도 역시 거절당했다.
외국인에게는 한국 이름도 쿠르츠 카림이라는 이름처럼 낯설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공신력 있는 사람의 추천서를 받아오면 어떻겠냐고 변호사가 긴급제안을 했다.
남편의 스승이 마침 시장으로 선출되었다 해서 급히 편지를 내었더니
곧 추천서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공증까지 받은 편지였지만 그 편지로도 남편이 쿠르츠 카림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내기에는 역시 역부족이었다.

나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저만큼 앞에 히말라야 산맥이 서 있는 느낌이었다.
산을 넘어가야 할 이유가 변명이 되기 시작했다.
변명은 합리화로 이어졌고 그것은 곧 도피라는 방법을 끌어냈지만,
우리는 아이들 때문에라도 얼음산을 넘어가야만 했다.
그것은 이미 내 나라에 돌아갈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드디어 여권에 있는 사진이 남편의 것임을 증명해 내기 위한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어렸을 때 사진을 시작으로 해서 지금의 얼굴까지, 그 변천사를 앨범으로 만들면 어떨까요?”

변호사도 그 방법에는 기꺼이 동의했다.
하지만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불안한 사실을 한 가지 발견했다.
사진들이 성장 변천사를 증명할 만큼 충분한 양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드문드문 이가 빠지듯이 시간을 건너뛴 데다 그나마 오래 된 사진은 흐릿해서
내 눈으로 보기에도 남편의 얼굴이 잘 구별되지 않았다.
불안했던 예감은 적중했다. 앨범은 그대로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누군가가 당신이 당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면,
일반적으로 어떻게 대처할까. 참으로 궁금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알려준 정보는 우리의 방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땅에서 나를 증명하는 서류가 종잇조각이 된다면 내가 나를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다음 요구는 미국 시민권자 세 사람이 남편의 신원을 보증한다는 편지를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그 숙제는 마치 우리를 미국 밖으로 내보내기 위한 집요한 저들의 노력처럼 느껴졌다.
시민권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저네들이 제시한 날짜에 맞추어 편지를 보내고 나자
마침내 우리의 항소가 받아들여졌고, 재심사가 시작되었다.

 

투쟁은 일 년이 넘게 걸렸다.

와중에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두 아이는 숨 막히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우리가 추방이 된 사실에 대한 소문이었다.
아무리 해명을 해도 우리가 무슨 중한 범죄라도 저질렀을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이해는 했지만 막상 앞에서는 기도하겠다고 하면서 뒤에서는 수군거리는
교회 식구들이야 말로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었다.

절대 번복이 없다던 이민국에서 마침내 해명서를 보내왔다.
거기에는 영주권의 마지막 숫자가 서로 바뀌는 바람에 일어난 오류였다는 변명이 실려 있었다.

르완다, 아프리카 심장부에 있는 나라, 천 개의 언덕을 가진 땅, 쪽빛 호수가 많다는 나라,
그런 나라가 학살이라는 단어와 연관되어있다는 사실은 유감이었다.
그러나 그뿐, 그 나라에서 부족 간의 전쟁으로 백 일 동안 한 시간에 평균 사백십칠 명이
살해되었다는 기록을 대했을 때도 나는 강 건너 불 보듯이 그냥 혀를 차댔을 뿐이었다.

그런 일은 당연히 유엔에서 담당해야 한다고 믿고 있던 나는, 백만 명의 사람이 희생되었다는
사실보다 그 학살에 연루된 한 사람이 위장을 하고 미국에 들어와 우리 가족의 둥지를 빼앗으려
했다는 사실에 더욱 집중하고 분노하는 것이었다.

키부 호수 곁에서 살고 있던 백만 명의 생명은 진실로 미안하게도 내 가족의 둥지와 비교할 때
무게가 한참이나 기울었다.
비록 아프리카에서 굶는 아이들을 위하여 선교기관에 얼마큼의 돈을 다달이 보내고 있다 해도
제삼자의 시각은 그렇게 잔인하고 냉정한 것이다.

쿠르츠 카림이라는 인물이, 어쩌면 후투족 남자들이 잡아 온 투치족 아이들을 보고
싹 쓸어버려! 라고 명령했다는 코바가야의 가명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명령에 따라 아이들은 후투족 남자들이 휘두르는 정글 칼에 맞아 죽었고,
그 외에도 여러 학살에 연루되었던 그는 캔사스 남부에 들어와 치과 의사가
된 아들과 버젓이 살고 있었다.

아무튼 카림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합법을 가장하여 내 남편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버젓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끝 번호가 달라서 혼동이 있었다는 표현대로라면, 학살에 가담했던 남자는
미국 땅에 아주 가볍게 둥지를 틀었다는 말이었다.

그는 필시 적당히 살이 오른 얼굴에 겸손하고 인자한 미소를 지었을 테고,
이 세상 온갖 슬픔이 다 자기 것인 양 일렁이는 연민을 담고 사물을 바라보는 눈을 가졌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그가 시민군 앞에서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인헤라하무웨, 함께 가자! 라고 외쳤을 때
그의 얼굴은 통찰력과 애국, 애족의 충심으로 번들번들 빛이 났으며
그들 사이에서 쿠르츠 카림은 용사로 전사로, 의리 있는 사나이로 불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정당성의 획득과 카리스마 없이 자신의 손을 대지 않고 백만 명의 사람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모든 일을 끝내고 혼자 남아있을 때를 상상해 본다.

아무도 자신을 관찰하지 않는 시간이 되어서야 연민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핏발 선 눈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타고난 연기력으로 무사히 대중 앞에서의 시간을 통과하고 난 다음,
그의 눈에 남은 것이라고는 비겁하고 두려움에 찬 패배뿐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다음 날에 계속해야 하는 연기를 위하여 맛있는 저녁을 요구하고,
샤워하고, 향수를 뿌리고 잠자리에 들어야만 하는데, 아무리 깨끗한 물로 손을
씻어댄다 할지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핏자국이 그의 영혼 깊은 곳에까지 남아있고,
그 자국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의심과 긴장, 경쟁과 공포가
그의 목을 죄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영원히 맛있는 식탁과 편안한 잠자리는 포기해야만 할 것이며,
그런 그에게 있어 장수는 더 이상 축복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철저히 무시하기로 했다.

비록 그가 우리 가족을 밀어내고 둥지를 틀었다 할지라도,
자기 백성을 애국이라는 미명아래 죽이고 버젓이 살고 있다하더라도,
그는 이미 이 세상에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오래 살면 살수록 그에게는 어둠과 고통만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그를 향한 연민이 솟아올랐다.
회개하지 않는 한, 용서 받지 않는한, 그의 어둠은 어떤 사람이라도 거둬내지 못할 것이다.

쿠르츠 카림은 이제 존재를 나타낼 수 없는 그림자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재의 그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5 내 인생의 리허설 최영숙 2023.02.06 49
54 스스로 속이지 말라 최영숙 2023.01.24 35
53 자식도 마음 아파요. [2] 최영숙 2023.01.08 43
» 당신을 증명하세요. 최영숙 2022.12.30 35
51 열흘, 그리고 하루 (단편 소설) 최영숙 2022.01.02 149
50 댄스 패밀리 최영숙 2019.09.16 123
49 마른 떡 한 조각 [3] 최영숙 2015.10.30 260
48 크리스마스와 추억 최영숙 2014.11.28 210
47 고양이 발톱 file 최영숙 2014.11.04 236
46 크리스토 레이 마을 최영숙 2014.10.06 240
45 안전 불감증 최영숙 2014.04.30 286
44 이름 유감 최영숙 2014.04.30 257
43 분노 최영숙 2014.03.11 377
42 뿌리 최영숙 2014.02.04 504
41 푸른 색 접시 최영숙 2014.01.21 702
40 요십이 아저씨 최영숙 2013.05.30 516
39 오징어 찌개 최영숙 2013.04.17 635
38 크루즈 패밀리 최영숙 2013.04.07 440
37 바랭이 풀 최영숙 2013.02.23 834
36 착한 아이 서약서 최영숙 2013.02.07 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