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품다 / 박승미

2014.01.30 03:51

유봉희 조회 수:411 추천:32

자산어보
  바다를 품다

박 승 미


자산어보를 읽다가
오징어의 먹물로 썼다는 글씨가 의심스러워져

싱싱한 갑오징어 먹물을 붓에 찍어
화선지에 댓잎을 그려 보았다
먹물이 화선지를 만나자 황송하게도
금빛으로 찬란하더니
물기가 마르면서 황금빛은 걷히고 갈색이 완연한데
말 그대로 자연색이라
댓잎이 갈대숲 사이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듯
그만 바람에 색이 날아갈까
두르르 화선지를 말아 놓았다

님기다림에눈물이마를날없던한여인이있으니
인편에받은님의편지가온통하얀여백만있더라
그리움이복바쳐서편지위에얼굴묻고섧게울다
보니눈물로젖은편지가구구절절사랑이라하니

화선지를 펴 보았다
바람인 듯 그리움인 듯
흑산도 그 먼 섬이
내 안에서 출렁이는 자선어보,
바다를 품은 책을 그만 덮는다.


*1987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땅 위에 닿지 않는 기쁨><너는 모과다>
<완전한 포옹><마음 심><그림과 놀다>
2005년 한국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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