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치고 시냇물 소리 조금 커졌다
통나무다리에서 내려다보니
광대소금쟁이들*, 나는 듯 뛰는 듯
물 스키를 타고 있다
척추도 없는 저 가벼운 몸
광대란 이름, 좀 무겁구나
산 속 시냇물
하필이면, 물의 낙하점 부위에 떠 있다
어떤 놈은 물살에 잠깐씩 떠내려갔다가 돌아오고
어떤 놈은 물 속 늘어진 풀잎에
몸을 잠깐 기댔다가 되돌아 온다
제가 만드는 동그란 작은 물결, 표석으로 딛고.
그렇지
광대란 제 몸무게를 잊고 뛰는 존재들이지
고인 물에 집 짓지 않고
흐르는 물살에 마음을 묶는 존재들이지.
* <광대소금쟁이>
노린재목[半翅目] 소금쟁이과의 곤충. 물의 낙하점 주변에 분포한다.
광대소금쟁이는 산지의 계류(溪流)처럼 물결치는 흐름에서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이다. 헤엄침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다.
또 크기가 작은 종이라서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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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방생 / 주경림(시인)
유봉희 시인의 시 「광대소금쟁이」는 소금쟁이에 붙여진
‘광대’라는 이름이 처음에는 좀 무겁다고 하다가, 다시 제 몸무게를
잊고 뛰고 흐르는 물살에만 사는 그들의 생리와 잘 맞는다며
자신의 말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반전하는 묘미를 거두고 있다.
소금쟁이의 노는 모습을 애정 어린 눈길로 세심히 지켜보면서
이름이 갖는 의미를 부정, 혹은 긍정을 해가면서 자신의 의도한바대로
독자를 끌어가며 시를 전개시켜나가는 시인의 기교가 돋보인다.
시인의 그런 방식이 설득력을 지닐 수 있는 이유는 소금쟁이의 묘사 에서
‘제 몸무게를 잊고 뛰는 존재들’ 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의 함축성과 상징성 때문이다.
‘제 몸무게를 잊고 뛰는 존재들’ 이란 어떤 외적인 구속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의 공통적인 삶의 약동성으로
우리네 삶의 모습일 수 있다는 심정적 접근이 가능해진다.
소금쟁이가 물살이 세고 소용돌이도 있을 법한 물의 낙하점 부위에
떠 있어서 시인은 ‘하필이면’ 이라고 걱정스러움을 나타낸다.
그러나 낙하점 주변에서 살아나가는 것이 바로 소금쟁이의 생태이며 운명인 것이다.
물살에 휩싸이는 듯 ‘잠깐씩 떠내려갔다가 돌아오고’ 를 되풀이하는 가볍고 나약한 존재이지만
‘제가 만드는 동그란 작은 물결’ 을 표석으로 딛는다는 표현에서 생명의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시의 중반부까지 소금쟁이의 가벼움에 초점이 맞추어져 그들이 낙하점 부위에서도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잘 살아남는 모습이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렇지’ 하면서 시작되는 시의 후반부에서는
시인 스스로 확언하며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다.
‘제 몸무게를 잊고 뛰는 존재들’ ‘흐르는 물살에 마음을 묶는 존재들’
인 생리가 ‘광대소금쟁이’ 의 ‘광대’ 라는 이름에 걸맞는다는 것이다.
소금쟁이든 광대든 흐르는 물살 따라 떠내려가는 것이 아닌 흐르는
물살에 마음을 묶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표현이 실감나게 마음에 와 닿는다.
물처럼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전개되어가는 시의 흐름에
숨겨진 시인의 계략(?)에 말려드는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시의 구상과 전개에 있어서 치밀하고 정교함이라는 장점이 더 깊어지며
크게 발전해야 할 시인의 진로에 혹여 방해가 되지 않기를 우려해본다.
/ 2006/08/28 / [문창] 2005년 4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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