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항아리

2008.01.30 04:54

arcadia 조회 수:682 추천:36

9fa14f7e13b49cbdd3d3c2e2a3f3efdd.jpg
   저, 항아리

유 봉 희


목 깊은 백색 큰 항아리
꽃도 물도 담아 보지 못한
서재 한구석에 무거운 몸, 들여다보지 않았어도
품고 있는 것은 묵은 어둠뿐일 터
이제 어둠도 굳어서 나무등걸처럼 되어 있으려나
저 항아리, 때때로 목숨을 던져서라도
속어둠을 확 깨 버리고 싶은 적이 있을까
속울음 터트리고 싶은 적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물이 넘치면 흘러서 샛길을 내듯
항아리 속 어둠도 길을 트는가

밤마다 어둠을 타고 흘러나와
책장을 슬슬 넘겨보다가 그것도 덤덤해지면
창가에서 울어대는 밤새의 날개에 업혀
물비린내 자욱한 강가를 몇 번이고 돌아보고
마을 어귀의 묘지, 오래된 어둠도 만나보는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불빛 사그라지는 어떤 창가, 고뇌에 찬 이마에
살포시 손을 내렸다가 오는 것인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속 캄캄 어둠 품고 있는 저 무거운 몸이
청청 푸른 이마로 깊은 사유의 시간을
뿌리 내리고 있는지



백자대호(白磁大壺)국보262호

오펜바흐 - 하늘의 두 영혼 op.25 (Deux ames au ciel, Op.25)
Han Na Chang - Jaques Offenbach, (1819∼1880)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고래 꼬리 유봉희 2011.08.17 974
공지 그날의 일몰… 7월 13일 7시 40분 유봉희 2015.01.12 297
» 저, 항아리 [1] arcadia 2008.01.30 682
공지 고맙습니다 [1] 유봉희 2007.09.28 1325
공지 나이테의 소리가 들리나요 - 시평 박영호 arcadia 2007.09.06 720
공지 마운트 다야불로에서 만난 여우 arcadia 2007.09.06 584
공지 820광년, 폴래리스 arcadia 2007.08.09 408
공지 어머니의 오솔길 - 어떤 개인 날 [1] arcadia 2007.08.08 737
공지 광대소금쟁이 - 주경림 시인 arcadia 2007.09.06 745
공지 관계 [1] arcadia 2007.09.06 683
공지 애쉬비 스트리트 / 송기한교수 (대전대) 해설 arcadia 2007.08.08 910
167 마운트 다야불로에서 만난 여우 유봉희 2015.07.16 201
166 돌 속에 내리는 눈 一 / 시인 윤정구 유봉희 2015.01.10 421
165 ‘광대소금쟁이’ 유봉희 2012.06.13 369
164 현장은 왕복여행권을 가졌다 … (신작시집) 유봉희 2012.06.13 458
163 증인(證印) · TalkingOak 유봉희 2010.12.22 269
162 숲으로 가면 유봉희 2010.10.06 268
161 바람새 위로 달 떠오르다 유봉희 2010.08.01 922
160 허공과 허공이 손을 잡다 유봉희 2010.07.29 895
159 유품 (전복) 一 유봉희 2010.04.26 759
158 벚꽃 속으로… 유봉희 2010.04.27 349
157 남극의 지신 (地神) 밟기 一 유봉희 2010.04.15 636
156 바닷가에는… (새 발자국) file 유봉희 2010.03.20 1090
155 사과씨 一 [1] 유봉희 2010.01.27 559
154 다시 시작할까요 一 유봉희 2010.01.22 477
153 솔 빗 一 유봉희 2010.04.13 605
152 풀치다 … (신작시집) [1] 유봉희 2012.06.13 720
151 그대여, 함께 유봉희 2009.12.10 413
150 겨울 잠 유봉희 2009.12.07 464
149 820광년, 폴래리스 유봉희 2009.12.07 383

회원:
3
새 글:
0
등록일:
2015.03.17

오늘:
8
어제:
120
전체:
874,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