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춘

2019.03.27 09:04

김효순 조회 수:6

 조춘(早春)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수요반 김효순

 

 

 

 

 

 3월, 매화가 피어나니 봄이다. 인간지사는 어지럽고 미세먼지에 갇힌 하늘은 부연해도 대지는 새싹의 움을 틔운다. 산수유, 진달래, 목련, 등 온갖 꽃들이 경쟁하듯 우르르 피고 또 핀다.

 이른 아침 창문을 열어 차가운 듯 달달한 봄바람을 안으로 들인 다음 아메리카노 커피 향과 함께 베란다에 놓인 작은 의자에 앉아본다. 저만치 보이는 효자다리 위에는 일터로 나가는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서 있다. 나도 그 속에 끼어서 3월의 학교로 달려 나간다. 학교 문을 나선 지 수 년이 지나 이제는 지워질 때도 되었건만 이맘때가 되면 다시 달리기 선수가 되어 운동화 끈을 야무지게 매어야만 될 것 같은 긴장감이 슬그머니 일어난다.

 교정에는 봄 햇살이 그득하고 수선화가 노랗게 웃어도 3월의 교실 안에서는 겨울꼬리가 남아서 뭉그적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그 을씨년스런 기운은 신입생들의 넘치는 활력에 쫓겨 달아나곤 했다. 그해, 나는 대여섯 해 동안 고등학교 근무를 마치고 중학교로 복귀했다. 단순히 교직 경력으로만 치면 교감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였다.

 스무 명 남짓되는 시골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담임을 맡았는데 내 눈에는 그 아이들이 햇병아리들처럼 보였다. 그 녀석들은 자기 엄마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내가 만만한 큰이모 쯤으로 보였을까?

 다가와서는 내 팔을 툭툭 치거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을 걸곤 했다. 속마음을 숨기지 않는 직설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녀석들을 보면서도 그때의 나는 늘 웃었다. 대개 6교시 수업이 끝나면 청소를 하고 담임교사가 종례를 한다. 아직 초등학생 티를 그대로 지니고 있던 녀석들은 자유분방해서 청소시간은 반 놀이시간이었다. 왁자하던 청소놀이가 끝나면 나는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녀석들의 흥분이 가라앉길 기다렸다.

 제 딴엔 그 시간이 지루하고 답답했던지 화순이가 나섰다.

 “선생님, 빨리 보내줘~요”

 “너희들이 조용히 해야 선생님이 말을 하지.

화순이가 이번에는 아이들을 향해 악을 쓰듯 외친다.

 “야! 조용히 좀 해,

실장도 아닌 그 애가 소리를 지르자 아이들은 입을 삐죽거렸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그러더니 한 녀석이 불쑥

 “선생님, 화순이 옆 반 철이하고 사귄대요.

사귀면 무엇을 하느냐고 내가 물었다.

 “뭐 별거 안해요. 생일날 선물을 주고 가끔 편지나 쓰고. 그런 거 해요.

통통한 볼에 분홍빛 물을 들이며 명자꽃 같은 입술을 움직이던 화순이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얼마 후에는 헤어졌다기에 그런 말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당시 막 유행하던 싸이월드인가 하는 인터넷 싸이트에서 채팅으로 ‘헤어지자’고 하면 된다고 아주 쿨하게 가르쳐 줬다.

 어느 새 식어버린 커피 잔을 내려놓고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세어본다. 그 녀석들도 어언 서른 살이 가까워졌겠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티 없이 밝게 자라던 소녀 화순이는 지금쯤 얼마나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했을까. 이 봄 그 녀석들은 '별거 아닌 사랑' 말고 정말 소중한 사랑을 찾았으려나? 어쩌면 엄마ㆍ아빠가 되어 진짜 사랑을 키워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파트 관리인들이 정원수 전지 작업을 하면서 쳐낸 매화나무가지가 꽃망울을 조롱조롱 매달고 있었다. 통통한 가지 하나를 가져다가 물에 담가 두었더니 거기서 꽃들이 활짝 피어 방 안에 매향이 그윽하다. 봄의 마력이다.

                                                          (2019.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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