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01 06:07
우상, 그리고 신격화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매주 한 편 정도의 글을 쓴다. 원고청탁을 받거나, 독자들의 칭찬이 자자하거나, 청년의 가슴으로 연애담을 퍼내는 것도 아니다. 큰상을 약정하고 글을 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처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으며 탈고하느라 끙끙댈 뿐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글을 쓰고 싶어서 마음이 요동친다. 이것저것 마냥 쓰고 싶다. 시사적인 것도, 정부에 대한 쓴 소리도, 예체능에 따른 평가도, 종교색 짙은 색깔론도, 사랑이나 사건사고에 따른 뒷얘기도, 그리고 동네 이야기도 써보고 싶다. 글 쓰는 탄력이 붙었거나 거만이 스며든 탓인가? 아니면, 봄기운이 불어넣은 일시적 착시현상인가?
지금쯤은 신변잡기식의 글에서 탈피하고 싶은데 마음 같지 않다. 거기서 글이 시작되었고, 많은 글을 생산했으며, 그 통로에서 되새김질하다가 세상으로 나온 탓이다. 내 글의 모태인데 어떻게 도마뱀 꼬리 자르듯 싹둑 자른단 말인가?
버닝 선(burning sun)을 얘기하고 싶다. ‘불타는 태양’이나 ‘작열하는 빛’으로 해석되는 참 의미 있는 말이다. 듣기만 해도 힘이 불끈불끈 솟아나고 열정이 느껴진다. 지구촌의 모든 생명체를 이글거리게 하지 않는가? 그 불타는 태양이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 좋은 말이, 꿈 많은 젊은이들 속을 파고들어 새 역사 현장에서 쓰인 게 아니라, 뒷골목의 음산한 사각지대에서 사용되었다니 가슴이 미어진다. 흥분된 가슴은 애간장을 녹이고, 파란 하늘은 노랗다 못해 검게 타버렸다는 표현을 빌려서 사용한다. 전부터 ‘버닝 선’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말 자체에 관심이나 있었던가? 뒷골목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불타는 태양’이라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좋은 말이, 왜 이렇게 뒷골목의 독버섯처럼 되었을까? 정통에서 벗어나 우상, 즉 어떤 형상을 만들어 ‘신’으로 숭배한 까닭이다. 나무나 흙이나 돌이나 철로 만든 형상, 또는 산이나 강이나 바다, 심지어는 사람조차 신으로 숭배하는 ‘신격화현상’이 두드려졌다. 그 속에서 한탕주의와 쾌락주의가 물밑에서 꿈틀거리다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기나긴 역사현장을 보면, 세계를 쥐락펴락하며 큰소리치던 국가들의 패망원인이 ‘우상숭배’였음을 알 수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라 중 그 어떤 민족이 ‘우상숭배’로 버티고 있는가? 설령 지금 그렇게 존재한다 할지라다 역사는 속일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을 인정하고 사람다운 대접을 받을 때 인류에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다. 사람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인권을 찾다보니까 이런 결과를 초래하는 게 아닌가 싶다.
버닝 선 게이트를 비롯해서 장자연, 김학의 사건들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마치, 성경에 등장하는 ‘노아홍수 사건’ 때나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상이 느껴진다. 마약과 성매매와 성폭력, 윗선의 개입과 비호, 몰래 카메라로 찍은 동영상의 유포, 또 ‘그게 어디 있느냐?’고 찾아나서는 꼬락서니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지며 질타하랴? 한마디로, 총체적 부정과 부패의 전형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다만, 한탕주의에서 오는 풍요와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쾌락, 그 파렴치한 짓들과 허황된 꿈,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제자리로 찾아들라고 외치고 싶다.
내 글을 한 편의 고상한 수필로 남기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불끈불끈 흥분하는 이유야 충분하다. 그렇다 해도 더 이어가는 게 속물스러워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글은 내 인격이자 분신이요, 한 지체인 만큼 절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9.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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