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한 달 살아보기(2)

2019.03.28 16:32

최은우 조회 수:9

제주에서 한 달 살아보기 (2)

-자연은 삶에 지친 사람들의 휴식처다-

 신아문예대학 금요수필반 최은우

 

 

 

 

  대한민국 최남단, 우리나라 유일의 특별자치도이며 가장 큰 섬인 제주도는 불과 물이 빚어낸 아름다운 화산섬이다. 천혜의 자연관광이 수려한 세계적인 휴양섬에서 아름다운 산하를 눈으로 즐기고, 산뜻한 공기를 마시며 여유롭게 걸어보기로 했다.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자 제주에서 한 달간의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오전 9시에 숙소를 나와 용눈이오름으로 갔다. 제주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용눈이오름은 ‘오름’이란 생소한 말을 친근하게 다가오게 했다. 용은 아직 승천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변함없이 누워 있었지만, 3년 전에 보고 느꼈던 환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바람의 방향과 햇빛에 따라 오묘하게 채색하며 군락을 이루고 있던 수크렁과 동산에서 뛰노는 양떼들의 모습으로 하늘거리던 억새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초원을 누볐던 말들의 분비물만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이전에 보았던 그 환상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서 제일 먼저 찾아왔는데 정말 아쉬웠다. 그래도 마치 용이 편안하게 누워 우리를 환영하듯 반기는 모습의 봉우리를 바라보며 기쁜 마음으로 오름에 올랐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정상에 올라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장관이었다. 저 멀리 우뚝 솟은 한라산과 굽이굽이 넘실대는 오름, 운치를 뽐내는 풍차, 억새가 춤추는 넓은 초원 등 이국적인 풍경이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용눈이오름에서 가까운 아끈다랑쉬오름으로 갔다. 아끈다랑쉬오름은 오름의 여왕이라 불리는 다랑쉬오름과 마주 보고 있다. 3년 전 다랑쉬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보았던 아끈다랑쉬오름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아 언젠가는 꼭 한 번 오르고 싶었던 오름이었다. 그때 아끈다랑쉬오름의 정상에 눈을 이고 있는 듯 하얗게 핀 억새가 나의 마음을 유혹했지만, 출입금지라 올라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혹시나 하고 찾아간 것이다. 다행이 이번에는 올라갈 수 있었다.

 

  아끈이란 제주어 ‘작은’이란 뜻에 나타나듯이 아담한 동산이지만, 오름에 올라서니 넓고 얕은 굼부리와 둘레길에는 억새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바람 부는대로 흔들리며 우아하게 춤을 추는 하얀 억새와 울긋불긋 사람들이 어울려 천국의 동산에 온 듯 황홀했다. 아름다운 억새 골짜기를 걸어가는 나그네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사진 찍기에 한창이었다. 휴식년을 보내고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한 아끈다랑쉬오름이 용눈이오름에서의 조금 서운했던 마음을 싹 씻어주었다. 피로에 지친 용눈이오름도 몇 년 휴식을 취하게 해준다면 다시 아름다운 이전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구좌읍에 있는 비자림으로 가는 길가에는 삼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어 멋진 풍광을 선사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비자림에는 500~800년생 회갈색 거목의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늘 푸른 잎을 반짝이면서 자생하고 있었다. 잎이 바늘과 같은 모양으로 비()자를 닮아 비자(榧子)란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제주도와 남부지방 일부에서만 자라는 귀한 나무로 암수 나무가 따로 있다. 열매 속에는 땅콩처럼 생긴 단단한 씨앗이 들어 있는데 기름을 짜거나 구충제로 쓰였고, 나무는 재질이 좋아 고급가구나 최고급 바둑판을 만드는데 사용되고 있다.

 

  비자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거치며 바위나 돌틈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뿌리를 내렸다. 덩굴식물이나 다른 나무들과 경쟁하면서 모진 세월을 이겨내고 자생하여 멋진 모습으로 군락을 이루었다. 생명력이란 얼마나 강인하고 존귀한 것인지 우리는 자연을 보며 배우기도 한다. 빽빽이 들어선 선명한 녹색의 비자나무 사이로 난 산책로에는 화산 분화로 생긴 붉은 화산송이가 깔려있었다. 부드러운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니 머리가 맑아지고 저절로 건강해지는 것 같아 발걸음이 가벼웠다.

 

  수령이 800살이 넘은 비자나무는 굵기가 거의 네 아름에 이르고 키는 14m에 이르러 이 숲에서 가장 웅장한 나무로 ‘새천년 나무’로 지정되었다. 어떤 나무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버텨왔는지 몸통의 근육이 다 빠져나가듯 구멍이 뻥 뚫려있었다. 두 나무가 만나 서로 몸을 감고돌아 하나가 되는 연리지의 사랑 앞에서 나는 언제 저렇게 하나가 되듯 열렬한 사랑을 했었던가, 경건해지기도 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해안도로를 따라 바다를 즐기며 천천히 달리다가 달빛이 머무는 마을 월정(月停)리해변을 만났다. 초승달 모양을 닮았다고 하는 월정리 해변은 2.3Km로 길게 뻗어있다. 입자가 고운 백사장, 에메랄드빛 바다와 저만치 풍차가 돌아가는 풍력단지를 배경으로 월정리해변에는 전망 좋은 카페들이 성업 중이었다. 해안에서는 젊은이들이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며 서핑보드 타기가 한창이었고, 우리는 풍경이 좋은 해변에 앉아서 구경하며 휴식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재충전이 되었다.

 

                                                (2018.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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