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병을 만나다

2019.04.15 16:50

노기제 조회 수:5

20171123                                                       복병을 만나다

 

 

   “? 그 얘기 쓴 것 같은데...”


   미주문학 여름 호 원고 마감을 앞두고 오랫동안 가슴에 감춰 두었던 친구의 비밀을 슬며시 꺼냈다. 친구가 억울하게 당한 일을 최소한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었다. 계속 같은 종류의 제목으로 피해보는 여성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내 작업실이 있는 아파트에서 팔순을 넘긴 할머니 한 분의 사연이 기구하다. 구순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병 수발로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다. 5 년 전,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재혼을 택했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계신 분이다. 온갖 감언이설로 재혼을 성사 시킨 후, 약속했던 것 하나도 이행하지 않고, 재산 좀 있는 따님들의 행패로 멸시와 구박까지 당하는 속수무책인 인생의 주인공. 내 친구가 당한 것과 흡사하다.


   남의 얘기에 화가 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그 주제를 잡아 글을 써서 원고를 보내고 얼만가 시일이 지났다. ? 이 얘기 썼던 기억이 난다. 편집국장에게 물어 볼까? 뭘 물어 본다는 말인가? 본인도 기억 못하는 일을, 남에게 뭘 기대하는가? 이런저런 이유로 봄 호가 아직 배달 안 된 상태로 여름 호 원고 마감이 끝났다


   인쇄 작업이 한국에서 진행 중이다. 원고를 되 돌릴 수도, 취소 할 수도 없는 시점이다. 낭패다. 어떻게 이런 일을 만들었나. 나 너무 늙었나? 10 , 20 년 전에 썼던 글이라면 억지로라도 이해가 가능 할 수도 있다. 이 건 바로 몇 달 전 얘기다.


   남의 얘기로 듣기만 했던 표절이다. 남의 것을 표절 한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을 표절했다. 작가에게 가장 무서운 표절이라는 복병을 만났다는 현실에 당황하고 있다. 내 글인데 뭐 대수냐. 쉽게 넘길 수도 있다.


   지난여름 별 깊은 뜻 없이 나태주 시인께 여쭸던 주제가 바로 이 문제였다. 그렇게 많은 작품을 쓰면서 반복 되는 작품이 없으신지. 사실은 자기 표절이 제일 무섭다 하시며 자각 못하는 상태에서 나타나곤 한다고 솔직하게 답해 주셨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게 대가이신 나태주 시인도 고민하는 주제. 어쩌면 모든 작가들의 고민거리가 아닐까 싶다. 겨우 이백 여 편 써 논 수필도 다 기억 못하면서 앞으로 어떤 글을 쓸 수 있나. 갑자기 동면으로 들어가는 곰의 모양새가 된다. 잔뜩 움츠려드는, 거대한 줄 알았던 내 왜소한 몰골. 숨을 곳을 찾는다. 혹여 알아 챈 독자들의 질타가 들린다. 더 크게, 함성으로 두들겨 맞고 싶다.


   정신 차려라. 글을 쓴다고 말하지 마라. 공부 좀 해라. 쓰고 읽고, 고치고 또 읽고,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바뀌는 불상사가 일어나더라도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시간을 써라. 정성을 들여라. 다시 시작하자. 이제 갓 문단에 나온 햇병아리로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글을 써라


   부끄러운 마음에 쉽게 포기 하지도 마라. 지난 20 여년 써온 글들은 습작으로 간주해라. 그 것들을 바탕으로 진정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글을 써 봐라 기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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