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너를 품고

2020.05.01 12:55

노기제 조회 수: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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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4                                  내 안에 너를 품고

                                                                                                        노기제

 

   즈즈즈즈즉,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는 마치 전기톱으로 얇은 무언가를 도려내는 상황이다. 전신마취가 아닌, 눈에만 마취를 한다더니 통증은 전혀 없고 의사의 손놀림, 목소리, 주변의 잡소리들이 확실하게 내게 전달된다.

   각막이식 수술이 필요하단 진단을 받은 지 2년이다. 그동안 여러 번 마음을 바꾸며 망설이다가 끝내는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붙잡고 남편의 여전한 반대를 뒤로 수술을 강행한다, 두렵다. 수술 실패하면 재수술이 필요하고, 또 실패면 다시 한다. 끝내는 실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다른 한 쪽이 건강한 상태이니 만약 실명 한다 해도 대단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내가 돌려받으려고 그랬었나? 내 이름으로 통관회사를 시작하자 첫 번째로 수표를 쓴 것이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모금에 나섰던 라이온즈 클럽이다. 당시 이백 불. 내 형편으로선 큰 액수였다.

   이민 46년차. 운전 면허증 처음 받던 그 옛날에 선뜻 장기기증에 서명 했던 기억도 결국은 내가 나를 위해 마음을 주었던 모양이다. 사랑을 베푸는 행위는 결코 잃는 것이 아닌 얻는 것이라는 진리를 오늘에야 확실하게 몸으로 느낀다.

   그토록 겁나고 뒤집기를 몇 번 행한 후에 수술대에 누워 있으니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하늘에 맡기는 기도를 그칠 수가 없다. 의사를 믿는 것이 아닌, 그 의사에게 하느님이 직접 역사하셔서 수술 성공하고 시력 회복하고 수술을 반대하던 남편에게 하느님 믿고 사는 증거를 보여주고 싶다.

   낮 12시로 정해진 약속시간 15분 전에 도착하라는 엽서를 받았다. 단단하게 마음먹고 수술실 접수를 마치고 기다린다. 대기실에 있던 환자들이 호명을 받고 자리를 뜬다. 3시가 훌쩍 지나고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접수 창에 물어보니 내 이름을 한 참 찾는다. 잠시 기다리란다. 오늘 수술 환자가 열둘이라 닥터가 바쁘니까 차례가 되면 호명하겠단다.

   아침식사도 거르고 점심은 생략하고 수술 끝나면 편하게 먹으려 했는데 오랜 기다림으로 빈속에 진이 빠진다. 누락 된 건 아니다. 오후 5시에 드디어 내 이름을 부른다. 침대를 차지하고 이것저것 준비를 끝내고 바퀴달린 침대의 소란스런 수다를 들으며 수술실로 옮겨진다.

   마지막 환자다. 퇴근하는 간호원 들, 간호 보조사들, 청소부까지 마무리를 서두르는 시간에 시작되는 수술이다. 닥터의 상태는 어떨까. 피곤해서 실수를 할 수도 있겠다. 불안하다. 다시 기도한다. 어차피 수술을 허락하셨으니 알아서 하시라는 간단한 기도를 반복하면서, 생각만으로 수술 장면들을 영상으로 만든다.

   순간순간의 수술 단계를 간결하게 혼잣말처럼 되 뇌이면서 내게 보고한다. 닥터의 스윗한 목소리로 나는 안정감을 유지한다. 걱정이 없다. 온전히 하늘에 맡긴다. 어수선한 보조원들의 잡담소리가 거슬린다. 경건하지 못한 수술실 환경이 왠지 하느님께 죄송하다.

   각막을 걷어 내고, 백내장을 걷어 내고, 렌즈를 끼운다는 중계방송을 듣는다. 그리곤 내게 배당된 어떤 이의 각막을 달라는 의사의 요청이다. 간단명료하게 들린다. 맞는 사이즈가 없다는 보조원의 소리다. 어느 방 어느 서랍, 어디 어디를 가보라는 소리를 끝으로 침묵이 흐른다. 긴 시간이다. 숨소리를 죽이는 닥터가 보인다. 눈꺼풀을 고정시키고 장기를 기다리는 내 오른쪽 눈의 부릅뜬 모습을 상상 해 본다.

   설마 이대로 두실 건 아니시겠지. 아버지 알아서 하세요. 항상 아슬아슬 간신히 끝 무렵에야 주시던 응답을 기억해내며 잠잠히 기다린다. 병원 측의 실수, 닥터의 실수,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불이익이 내게 떨어진다 해도 난 내가 믿는 하느님을 상대로 청원을 한다.

   한 마디로 겁날 것 없다. 내가 믿는 하느님은 능력이 없으신 분이 아니니까. 어떤 상황에서든지 내게 가장 유익한 것으로 주실 것임을 믿는 까닭이다. 쉼 없이 종알종알 하늘로 올리는 옹알이가 계속된다. 10분일까? 더 될까?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난다.

   “I found it” 헐레벌떡 땀 흘리며 뛰어오는 누군가의 흥분한 소리가 들린다. 감사 합니다 아버지. 그러실 줄 알았어요. 저쪽 끝 방 맨 아래 서랍에서 찾았단다.

   누굴까. 나를 만나기 위해 잠잠히 숨어 있던 각막의 주인은. 장기를 기증한 후 적임자를 못 만나고 일주일을 넘기면 고스란히 폐기 처분 된다는데. 이렇게 만났으니 필경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다.

   실명 위기에서 난 너를 품게 되고, 무용지물로 버려질 위기에서 넌 나를 택했으니 서로가 고마운 인연이다. 59세의 백인 여자. 푸른 눈의 친구를 가슴으로 받고 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망가진 시력이 회복되기를 조심스레 살아간다.

   안도의 숨을 내 쉬며 기적이야 이건! 집도를 마무리하는 닥터의 혼잣말을 듣는다.

  미주문학 가을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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