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파이어 아트

2019.08.20 06:54

김성은 조회 수:3

한여름의 파이어 아트

신아문예대학 목요야간반 김성은

 

 

 

 

 8월의 첫날을 부산 해운대에서 맞았다. 벌써 2년째 우리 세 식구 피서지가 되고 있는 부산까지 남편은 편도 다섯 시간을 운전했다. 가족티를 맞춰 입었다. 투부와 구명 조끼를 바리바리 차에 싣고 먼 길을 나섰다.

 셋이서 초성게임, 끝말잇기를 한 바탕 한 다음 노래배틀을 시작했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각자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놓고 신바람나게 불렀다. 이동 노래방이 된 우리 차는 대차게 대전 통영 간 고속도로를 달렸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닷가로 나갔다. 간단하게 준비운동을 했지만 내 몸은 뻣뻣했고, 딸아이 유주도 겁이 나는지 자꾸만 뒷걸음질을 쳤다. 남편이 먼저 바다로 들어갔다. 온몸을 적시고 우리 모녀를 공격했다. 생각보다 물이 찼다. 시원했지만 높은 파도가 무서웠다. 유아들이 노는 파도 끝자락에 앉아서 천천히 물에 적응했다. 조금씩 안으로 진입했고, 튜브에 내 몸을 실었다. 작년과 다르게 유주는 내 등에 올라타지 않았다. 자꾸만 모래놀이를 졸랐고, 선뜻 바닷물에 뛰어들지 않았다. 물속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면 약간의 한기가 느껴졌다. 유주와 함께 공들여 모래성을 쌓았다. 이 녀석은 내가 애써 쌓은 모래성을 한 발로 뭉개며 너무 즐거워했다.

 세 시간 여를 바닷가에서 놀았다. 숙소에 들어와서 래시가드를 정리하고 샤워를 하니 온몸이 나른했다. 전북 익산에서 부산까지 혼자 운전하고 앞 못 보는 나와 유주를 밀착 인솔했던 남편은 얼마나 피곤했을까? 저녁 메뉴로 유주가 좋아하는 치킨을 주문했다. 배불리 먹고 나니 숙소에만 있기가 답답해졌다.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을 나섰다. 한여름 밤 해운대 바닷가 공기는 끈적끈적했고 통행로는 붐볐다모래사장 한 쪽에서는 라이브무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멋드러지게 노래를 부르는 언니와 오빠들을 유주는 넋놓고 구경했다. 박수를 치고 몇 발짝 걸었다. 후텁지근한 공기에 금세 땀방울이 맺혔다.

 그런데 ‘맙소사!모래사장에서 목청을 돋으며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는 한 사내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파이어 아트’라고 했다. 뜨거운 불을 가지고 아슬아슬하게 묘기를 부리는, 얼굴 바로 앞까지 불꽃을 대기도 했다가 그것을 마구 돌리기도 하며 보는 이들의 심장을 졸깃하게 만들었다. 유주와 남편도 감탄을 연발하며 그 남자의 몸짓에 시선을 모았다. 나는 대강의 설명만 듣는데도 빨리 그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이었다. 왜 굳이 이 더운 여름에 뜨거운 불을 가지고 폭포 같은 땀을 흘리며 저 고생을 하고 있을까? 다 쉬어 버린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가며 기름과 불냄새를 피우는 저 남자는 과연 어떤 연유에서 이 일을 하게 되었을까? 20분 가량 그 남자의 공연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앞으로 뛰어 나가서 현금통에 지폐를 넣기도 하며, 화기애애했다.

 유투브 검색을 광고했고 후진들도 양성하는 중이라고 했다. ‘후진이라니…’ 그런데 정말 있었다. 이번에는 20대 젊은 청년이 쇠사슬을 가지고 나와서 자기 몸을 묶어 달라고 청했다. 관객 중 덩치가 좋은 형님 두 명을 선별해서 체력을 테스트하겠다며 팔굽혀펴기를 주문했다. 익살스럽게 쇠사슬을 풀어낸 청년도 파이어 아트를 선보였다. 믿거나 말거나 본인은 한국 항공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소개도 했다.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이 너무 행복해서 이 일을 그만 둘 수 없다고도 했다. 젊은이답게 공연이 끝나면 돈을 달라고 호쾌하게 돌직구를 날렸다. 역시 불냄새가 났고, 사람들의 외마디 비명이 터졌다. 유주에게 보여주기가 불편해서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이미 남편과 유주, 많은 꼬마들이 홀린 듯 그 청년을 바라 보고 있었다. 뜨거운 불로 거의 자해에 가까운 쇼를 하는 그들에게 나는 연민을 느꼈다. 앞 못 보는 내 사정을 알면 오히려 그들이 나를 더 측은히 여길지 모를 일이지만 이 여름에 굳이 극한 비지땀을 택한 그들의 동기를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튿날에는 한 결 유연해진 몸으로 파도를 탈 수 있었다. 땅에 발이 닿지 않으면 내 몸이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 가늠할 수 없어 순간적으로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마는 형편이었다. 거의 유아 수준의 물놀이였지만 짠물을 먹으며 모래를 만지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나는 부산의 여름을 체감했다. 1년 사이 내 등에 태우기엔 부쩍 커버린 유주 손을 잡고 조금씩 바다로 들어갔다. 중심을 잡고 서 있기도 힘들 만큼 거센 파도에 더럭 겁을 먹고 냉큼 도망쳐 나왔다. 바다 안쪽에서 남편이 우리를 재촉했지만 우리 모녀는 허리도 채 안 되는 깊이에서만 소꿉놀이 하듯 물놀이를 즐겼다.

 개학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다급한 마음으로 세 식구는 변산 워터파크에 도전했다. 여자 탈의실을 통과하여 입장하는 과정은 친절한 도우미 이모들이 안내해 주었다. 바닷가와는 또다른 재미가 넘치는 워터파크에서 유주는 날개를 달았다. 워터 슬라이드를 열 번 넘게 탔어도 모자라다고 했다. 실외 파도 풀에도 서슴없이 들어가 잠수를 선보이는가 하면 배영을 한다며 “엄마 나 만져봐.” 했다. 풀장 사이를 오갈 때면 유주가 내 손을 꼭 잡고 계단을 일러 주었다.

 “엄마, 조금 불편해도 나랑 같이 노니까 좋지?

가슴이 찡했다. 어린 유주를 챙길 남편의 수고를 짐작해서 그간 워터파크 나들이에 굳이 따라나서지 않았었다. 아홉 살이 된 유주가 오히려 나를 챙기고 걱정했다. 불편한 엄마라서 미안한 내 마음에 감사의 꽃이 피었다. 우리 모녀를 워터 슬라이드에 태우면서 남편이 비로소 흡족하게 웃었다.

 워터파크를 갈 때마다 함께 하지 못해서 불편했던 마음의 체증이 개운하게 내려갔다고 했다.

 

 처서가 되었다. 한밤에는 이불을 덮어야 할만큼 기온이 떨어졌다. 황금 들판을 여물게 하는 뙤약볕 아래 가을이 몸을 푼다. 구슬땀으로 얼룩진 한여름의 초상들이 천만의 빛깔로 저물어 간다.

 

                                                                                               (2019.8.20.)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67 진안의 테니스 돔구장 하광호 2019.08.22 26
866 제자들의 선물, 황진단 김길남 2019.08.21 17
865 보리를 돌보며 신팔복 2019.08.20 6
864 법도 아닌 법, 김승환법 은종삼 2019.08.20 3
» 한여름의 파이어 아트 김성은 2019.08.20 3
862 등꽃 [1] 백승훈 2019.08.20 17
861 내 고향 무주로 가는 길 김세명 2019.08.19 5
860 소망가운데 사는 이유 한성덕 2019.08.17 2
859 아주 평범한 피서 김현준 2019.08.16 3
858 공직의 요람, 관사 김삼남 2019.08.15 13
857 무궁화 최연수 2019.08.15 19
856 전북은 한국수필의 메카 김학 2019.08.14 53
855 금강산(3) 김학 2019.08.14 4
854 수필이 좋아서 수필을 쓴다 하광호 2019.08.14 3
853 부탁한다, 딸들아 곽창선 2019.08.13 5
852 빅토리아 연꽃 백승훈 2019.08.13 6
851 나라마다 다른 중산층 두루미 2019.08.13 4
850 문경근 제2수필집 발문 김학 2019.08.12 10
849 83세 소녀 한성덕 2019.08.11 7
848 가슴 철렁한 단어 '헬조선' 이종희 2019.08.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