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으로 산다는 것

2019.11.16 22:56

김길남 조회 수:13

여성으로 산다는 것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나는 남자다. 전통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남자 우월주의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남자라는 이유로 권위를 부리며 편안히 살지 않았나 싶다. 늘그막에 보니 남자로 태어난 것이 천만다행이다. 만약 여성으로 태어났다면 못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떻게 날마다 살림하고 밥하고 빨래하며 살 수 있을까?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푸대접이다. 남아선호사상이 대세인 때라 반겨하지 않았다. 교육을 받을 때도 아들 먼저이고 딸은 뒷전이었다. 아들 공부시킨다고 큰딸을 공장에 보내어 그 돈으로 교육을 시킨 예도 흔했다. 전통사회에서는 여자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변하여 딸도 아들과 구별하지 않는다. 딸이 더 좋다고 하기도 한다. 우리 세대가 그 마지막일 것이다.

 결혼하면 친정을 떠나 시집에서 살아야 한다. 따뜻하고 정이 깊은 친정을 떠나 낯설고 물선 시집에서 살려니 얼마나 황당할까. 다행히 시부모나 시누이들이 정으로 대해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보통이 아니었다. 왜 그렇게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를 못살게 굴었는지 모른다. 오죽하면 시금치의 ‘시’자도 싫다고 했을까. 신랑이라도 내편이면 모르지만 남편은 내편이 아니라 남의 편이 아니던가. 전통사회에서 남편은 장가가더니 아내에게 푹 빠졌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사랑을 베풀지 못했다. 오죽하면 시집가서는 벙어리 3, 귀머거리 3년 봉사 3년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을까. 이목구비를 닫고 참으며 침묵으로 살라는 뜻이다.

 아들딸 낳는 것은 여성의 큰 책무였다.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면 칠거지악에 걸려 소박맞을 수도 있다. 다행히 임신이 되면 입덧부터 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함부로 요구하지 못했다. 남편이 알아서 살짝 들어주면 좋지만 쉽지 않았다. 친정이라도 가까워야 소원을 풀 수 있었다. 열 달이 되어 출산하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고통을 참으며 생명을 걸고 아이를 낳는다. 천사 같은 얼굴에 방긋방긋 웃는 아기의 모습을 보고 위안을 받는다.

 아들딸 여럿을 키울 때는 얼마나 어려움이 많은가. 젖먹이고 대소변 가려주고 빨래를 해야 하니 가만히 앉아 쉴 틈이 없다. 줄줄이 학교에 들어가면 도시락 싸주는 것도 큰일이다. 나의 아내도 하루에 8개까지 도시락을 싼 일이 있다. 재산이 넉넉하면 좋지만 부족할 경우 학비 대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바쁜 가운데 남의 집 품팔이도 해서 보태야 했다. 우리 늙은 세대는 그렇게 해서 아이들을 키웠다.

 어떤 집에서 생선을 한 마리 샀다. 가운데 도막을 남자들 상에 놓고 꼬리와 대가리만 여자들 차지였다. 아들이 미안해서 ‘엄마! 왜 머리만 먹어?’ 하니 ‘나는 머리가 더 맛이 있다.’라고 대답했다. 정말로 엄마는 머리만 좋아하는 줄 알고 그 뒤로 엄마에게는 머리만 드렸다. 아들이 자라서 그 뜻을 뒤늦게야 깨닫고 후회했다는 이야기다.

 내가 아는 한 아주머니의 생생한 증언이다. 임신하여 산월이 가까워졌는데 시어머니의 꾸중에 아침도 굶고 남의 집 일을 하러 갔다. 배고픈 허리를 참고 모를 심었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오니 시집식구들은 저녁거리를 장만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 때야 보리방아를 찧어 밥을 해 먹었다. 그리고 그날 밤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젊었을 때의 이야기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이렇게 어려웠다.

 

 나이 80이 넘어 우리는 내외만 산다. 아내는 늘 바쁘다. 집에서 보면 놀 새가 없이 무엇인가 한다. 끼니때가 되면 밥을 짓고 반찬을 장만하여 내어 놓는다. 나는 가만히 앉아 먹기만 한다. 몸이 불편할 때도 마찬가지다. 곰곰 생각해 보니 참 고맙다. 내가 없으면 안 할 일도 해야 한다. 하기 싫어도 끼니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한다. 여성으로 태어나 저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인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나이든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인데 무엇 때문에 썼나 하겠지만 젊은 세대는 모르는 일이고 뒤의 세대는 더더욱 모르는 일이므로 오래 남기고 싶었다. 요즘 세대에는 이 이야기가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이다. 다만 고생하며 사신 어른들의 이야기도 알아두면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고난을 겪고 살아온 여성들에게 감사하다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2019.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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