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눈 눈

2020.01.13 00:00

김학 조회 수:3

‧눈[雪‧]

三溪 金 鶴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소한이 지났는데도 날씨가 포근하여 봄날 같다. 그러니 눈을 구경할 수 없어 아쉽다. 천년고도 전주에선 아직까지 눈을 구경하지 못했다. 눈이 내려야 할 겨울에 소한 날부터 내리 사흘 동안 비가 내렸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을 보내려니 짜증스럽기 짝이 없다.

며칠 전 친구가 카톡으로 향적봉의 아름다운 설경(雪景)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 사진을 보니 감동이 밀려왔다. 겨울은 저런 모습이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눈을 그리워할 지인들에게 그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들도 좋아하여 또 누군가에게 보내주었을 것이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고향인 박사고을 임실군 삼계(三溪)에서 살았다. 그때는 해마다 겨울이면 눈이 자주 내렸다. 또 눈이 내렸다하면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많이 내렸다. 눈이 내리면 아이들과 강아지들이 좋아했다.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며, 내리막길에서 눈썰매를 타는 등 눈과 함께 놀았다. 요즘처럼 놀이기구가 없어도 즐겁게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눈밭에서 놀다가 엉덩방아를 찧어도 아픈 줄 몰랐다. 방한장구가 시원치 않아 손발이 시리고 귀가 얼어도 추운 줄 모르고 즐겁게 뛰놀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2020 경자년 1월 하순이 되었는데도 눈을 구경할 수가 없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여도 우리 고장 전주에 눈이 내리겠다는 예보는 없다. 하늘에서 휘날리며 내리는 눈을 본 게 언제였던가?

나는 20대 때인 1966년부터 강원도 인제에서 2년 남짓 군대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인제에는 겨울에 눈이 자주 내렸다. 혹한과 폭설이 잦아서 야외 훈련을 못하는 날이면 내무반에서 빈둥빈둥 놀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날이 잦다보니 겨울이 오히려 좋았다.

1968년 1월, 북한 124군부대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남하하는 바람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우리 부대인 2사단 17연대는 938고지를 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야간 훈련 차 그 고지에 올라갔었다. 산기슭에서는 가랑비가 내렸는데 고지에 올라가니 폭설로 바뀌었다. 길과 고랑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니 워커 속으로 들어간 눈이 녹아서 군화 속은 흥건히 물에 젖었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무좀으로 발전했고, 그 무좀은 지금까지도 나와 공생하고 있다. 강원도 인제에서 생활할 때 나는 눈과 가장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눈이 그립다. 눈발이 보고 싶다. 눈길을 걷고 싶고, 눈이 내리는 산길을 걸으며 깊은 사색과 추억에 잠겨보고 싶다. 함박눈이 내리던 날 밤, 군산 월명공원에 올라갔던 추억이 떠오른다. 오르막내리막길이 많아 눈이 내리는 날 월명공원에 오르면 미끄러지기 쉽다. 그럴 때 연인과 함께라면 사이가 더 가까워지고 사랑이 더 깊어질 수 있어서 좋다.

몇 해 전 캐나다에 갔을 때 설상차(雪上車)를 타고 럭키 마운틴애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 묵직한 설상차를 운전하는 여기사가 한국어로 “출발합시다.” 하며 눈길을 달리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 때가 6월이었는데도 어찌나 춥고 눈이 많이 내리던지 오들오들 떨었던 그 기억이 새롭다.

전주에 눈이 내리지 않으면 올해도 전주에서 강원도로 가는 눈꽃열차를 타고 가서 눈을 구경하고 와야 할 것 같다. 몇 해 전 초등학교 동창 세 사람이 그 눈꽃열치를 타고 강원도까지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눈꽃열차를 타고 기차 속에서 미리 준비한 술과 안주를 즐기면서 열차여행을 하니 우정이 깊어져 좋았다. 전주에 눈이 내리지 않는다면 눈이 오는 곳을 찾아가서 추억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제발 전주에도 눈이 좀 내리면 좋겠다. 산에도 들에도, 거리에도 지붕에도 눈이 좀 내리면 좋겠다. 그러면 처마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리게 될 것이다. 옛날 어린 시절에는 그 고드름으로 친구들과 칼싸움을 하면서 즐기지 않았던가?

하나님에게 제발 전주에도 눈이 내리게 해달라고 빌어야겠다. 전주에 함박눈이 펄펄 내리면 이 기쁜 소식을 누구에게 먼저 전할까?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아들딸과 손자손녀들에게 카톡으로 눈 사진을 보내주고 싶다. 그리고 눈이 내리지 않는 나라에 사는 친구들에게도 눈 사진을 보내 주어야겠다.

옛날에는 도시의 길거리에 포장마차가 많아 겨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정다운 친구들과 참새구이를 안주 삼아 정종 원 컵을 몇 잔 마시면서 세상 이야기를 하고나면 기분이 좋았었다. 그런 낭만이 사라져 아쉬운데 눈조차 내리지 않으니 겨우내 추억을 만들 수 없어 안타깝다.

(2020. 1. 11.)

댓글 0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00MB
파일 크기 제한 : 200.00MB (허용 확장자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53 날개를 달 수 있다면 new 최상섭 2020.01.18 0
1152 친구 재정이와 성덕이 한성덕 2020.01.17 0
1151 부자마을이 된 내 고향 정성려 2020.01.16 1
1150 경자년 새해 첫날 아침에 하광호 2020.01.16 1
1149 마침표는 시작이다 정근식 2020.01.16 7
1148 잉꼬의 장례식 구연식 2020.01.16 1
1147 취학통지서 이진숙 2020.01.15 3
1146 작은 일 하나라도 김학 2020.01.14 1
1145 장수매 백승훈 2020.01.14 2
1144 KBS앵커와 볼펜 한성덕 2020.01.14 1
1143 [김학 행복통장(80)] 김학 2020.01.14 1
1142 잘 걸으면 운명이 바뀐다 김경록 2020.01.13 3
» 눈 눈 눈 김학 2020.01.13 3
1140 마음씨 고운 며느릿감들 구연식 2020.01.11 4
1139 데이트합시다 박용덕 2020.01.11 2
1138 대중목욕탕에서 생긴 일 정석곤 2020.01.11 1
1137 들꽃에 담은 사랑 한성덕 2020.01.10 2
1136 이안에게 최윤 2020.01.10 3
1135 나무난로 앞에서 윤근택 2020.01.08 5
1134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두루미 2020.01.0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