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의 의미

2020.01.20 12:55

조윤수 조회 수:30

[금요수필]차(茶) 한 잔의 의미


/새전북신문 이종근 기자

...


차(茶) 한 모금 머금고 창밖의 회색 하늘을 바라본다. 차(茶)를 대하면 화창한 봄날의 차밭이 그려진다. 매화 꽃잎을 따다 찻잔에 띄웠다는 옛 다인(茶人)들의 풍류를 그려보며 지난 늦가을 차밭에서 만난 매화 닮은 어여쁜 차꽃도 떠오른다.
차(茶)라 함은 차나무 잎으로만 만든 고유의 정통 차를 말한다. 차(茶)에 반하여 차를 생활화하며 다례(茶禮)를 보급하는 일에 반평생을 보낸 셈이다. 차는 언제 마셔도 처음의 맛 그대로의 생기를 준다.

문명 평론가인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을 통해 21세기는 과학기술을 통한 정보화 시대가 찾아올 것이라고 예견했던 말도 이미 옛날이 되었다. 기술 혁명의 하나가 현대인들에게 필수가 된 스마트폰이다. 손전화 없이는 하루를 지탱할 수가 없다. 많이 쓰지도 않지만, 스마트폰을 집에 놓고 나간 날은 뭔가 불편한 것도 같고 불안해지기도 한다. 바쁜 현대 생활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초점을 잃어가기도 쉽다. 이런 때일수록 차 한 잔의 여유가 필요한 게 아닐까. 차 생활은 인간이 참으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덕목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더욱 절실히 느껴진다.
삶을 아름답게 창조해내고, 인생의 내용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길이며, 조화와 균형을 터득하는 길잡이의 하나가 될 수 있는 게 바로 차 생활이다. 차 한 잔을 온전히 마시기 위해서는 일 년의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아니, 평생이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찻잎을 봄철에 정갈하게 따서 만들고 잘 보관하여 눈서리 내리는 겨울까지 내내 따뜻이

우려 마신다. 물을 붓고 끓이며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자신을 성찰한다. 끊임없이 일렁이는
갈등의 요소들을 해소하며 안정을 찾는다. 다관에 물과 차를 넣고 알맞게 농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의 여유는, 영원을 향해 마음이 열리는, 사랑이 머무는, 축복의 순간이기도 하다.
차 한 잔을 마신다는 것은 기호음료의 물질적 개념만은 아니다. 사철 푸른 차나무의 꽃이 열매로 맺어 익어가는 일 년의 과정.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인 차나무 본질의 의미, 차(茶)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우려내는 여유, 그 분위기 전체를 마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목적을 위한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게 한다. 차를 마실 때 색, 향, 미를 잘 음미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몸과 의식이 분리되지 않고, 이때 이 순간에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 순간 목전의 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집중력을 키우기도 한다. 색향미가 잘 조화된 차 맛을 내기 위하여 자신이 직접 차를 행하여 가는 동안 자신의 삶을 조화롭게 꾸려 갈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차(茶)에는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고 비만을 막아주며 노화를 지연시킨다는 것이 과학적 분석에서도 증명이 되었다. 요즈음 수입되는 각종 음료가 많지만, 우리 고유의 음료 중에 이 정도로 다양한 영양분과 약용성분을 조화롭게 포함하고 있는 것도 드물다. 더구나 오묘한 맛과 향까지 겸비했으니 과연 초의선사(1786-1866)가 노래한 대로 하늘과 사람, 귀신이 모두 아끼고 사랑한 기절한 성품이 아닐 수 없다. (天仙人鬼俱愛重知爾爲物誠奇絶)
진정 정갈한 차 맛과 차향처럼 나의 지닌 맛이 그리되어 가는지 찻물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이다. 그러기에 나의 차마고도(茶馬孤道)의 행군은 계속되리라. /조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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