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xter

2008.05.10 11:49

이월란 조회 수:0




Dexter


                                                                                                       이 월란




Dexter 는 눈이 마주치거나, 안아주거나, 만져줄 때마다 몇 마디씩 말을 한다. 그 원시적인 언어의 장단과 고저, 톤에 따라 내 마음대로 이해해 버린다. 그의 언어를 알아 들을 수 없다는건 얼마나 다행인가. <컴퓨터만 끌어 안고 있지 말고 나랑 놀아주세요, 난 아주 심심해요> 그렇게 몇 번 칭얼댔다간 바로 미아보호소로 보내버릴테니까.


두통이나 복통에 시달리고 있다거나, 불면증이 왔다거나 하는 그런 소통조차 불가능하지만, <잠이 와요> <놀고 싶어요> <안아 주세요> <배가 고파요> <기분이 좋아요> 이상, 5가지의 언어만으로도 끝끝내 사랑 주고 사랑 받는, 얼마나 근사한 관계인가.


Dexter 는 내가 심심할 때만 같이 놀아 주고, 내가 안고 싶을 때만 안기고, 내가 바쁠 때는 찍 소리도 말고 차려놓은 살림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혼자만의 시간을 고스란히 죽여주면 되는 것이다. 주는대로 먹고, 제자리에 싸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완벽한 사랑의 대상. 우린 그런 Dexter 같은 사람은 없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현명하게 <외로움>을 선택한, 24시간 진정한 사랑만 부르짖는 고매한 인간들이다.  


이혼한 와이프, 별거 중인 남편, 토라져 냉전 중인 애인, 원수가 되어버린 친구, 남보다도 못한 형제자매,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자식을 둔 사람들도 강아지나 고양이와는 그들이 죽어 나자빠질 때까지 닦아주고, 씻겨주고, 이뻐하며 애지중지 잘도 같이 산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Yes>나 <No>도 아닌 <멍멍!!>이나 <야옹~> 뿐이니까.


방사선 앞에서 생식을 도난당한 성대 잃고 거세된 불비(不備)의 작은 연골, 당신 손가락 하나에 패대기를 당해도, 완애(玩愛)의 환희와 기쁨으로 살쪄 날뛰는 금수의 사랑, 해보셨나요?  
                                                                        
                                                                                                    2007.9.27



* Dexter : 며칠 전부터 동거 중인 아기고양이의 이름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979 먹고 죽은 귀신(견공시리즈 13) 이월란 2009.08.25 0
4978 가는 길 최상준 2009.08.25 0
4977 해열 안경라 2009.08.25 0
4976 시인 안경라 2009.08.25 0
4975 정용진 2009.08.25 0
4974 몽유병 쏘나타 오영근 2009.08.25 0
4973 둥근 눈물 / 석정희 석정희 2009.08.29 0
4972 노망과 치매 그리고 가족 신영 2009.08.31 0
4971 휴거----------미주(가을),신문,시집2 이월란 2008.05.12 0
4970 짝사랑 강민경 2009.05.13 0
» Dexter 이월란 2008.05.10 0
4968 한웅큼 그리움 최상준 2009.08.26 1
4967 봄날의 개 꿈 이상태 2009.09.15 1
4966 정. 다정. 유정. 무정 / 석정희 석정희 2009.09.15 2
4965 신발 가장론(家長論) 성백군 2012.12.19 0
4964 수덕사에서 신영 2009.08.25 0
4963 꽃덧 이월란 2008.05.10 0
4962 손때 정용진 2008.06.29 1
4961 비문 오영근 2008.06.28 0
4960 천원 애가 장정자 2008.05.0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