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가는날
2008.10.28 13:18
휘발유 냄새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
그건 세라복의 냄새야
차 꽁무니에 매달려 모퉁이를 돌 때
왜 내가 연통에 코를 대냐 하면
딱 한번이었지만
도시에서 태어난 친척 여동생의 옷냄새를 맡은 적이 있거든
단 맛이 오래 가는 바브민트를 또 하나 까면서 생각했어
씹던 껌과 새 껌이 입 안에서 잠시 낯설어 하듯
걔를 만나면
땀 젖은 이 껌종이처럼 내 손도 녹녹해 질거야
오줌이 또 마렵네
아버지의 이 목장갑같이
누군가의 자리를 지키는 저 비료포대의
‘질소질 46%’
고개를 고만치 왼쪽으로 갸웃거려도 도무지 모르겠어
왜 응 자만 삐딱하지?
지금 내 마음이 초조한건
똥누러 간 아버지를 두고 버스가 떠나버리면
휘발유 냄새도 날아갈까봐서지
난 겁많은 아이일까 의젓한 학생일까
성에 낀 차창의 바깥 풍경처럼
세라복의 윤곽은 늘 뚜렷하지 않지만
아버지가 오면
삽자루에 걸쳤던 저 목장갑만은 버리자고 할거야
차장이 앞바퀴의 버팀목을 툭 찰때도
부릉 부르릉
성난 버스가 풀려난 앞발로 땅바닥을 긁어 댈 때도
철렁 가슴이 내려앉아
버스는 우리 황소와 달리 내 속내를 모르고 떠나버릴까봐
* 질소질 46% : 질소의 함유량이 46%인 요소 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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