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숨소리<토요연재4>
2009.04.24 15:05
습기를 밴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 빗발이 가는 금을 그으며 흩뿌리고 있는 오후였다. 도서관에서 나와 집엘 가려고 막 학교 문을 나서는 참이었다. 분명히 그였다. 우산을 쓰지는 않았지만 옷이 젖을 정도의 빗발은 아니었는데도 그의 어깨는 축 쳐져 있었다. 고개를 떨군 뒷모습이 참 쓸쓸해 보였다. 나는 뒤를 좇아가며 “저기요” 하고 그를 불렀다. 무심결에 나온 호칭이었다. 그는 계속 앞만 보고 걸었다. 나는 다시 한번 “여보세요” 하고 불렀다. 그가 휙 뒤돌아보았다.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는 “네가 여기 웬일이냐” 면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가 A대 배지를 달고 있는 것을 보고는 일부러 눈을 크게 뜨면서 농담조로 말했다.
“부잣집 딸들은 머리가 텅 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어딘지 빈정거림이 내포돼 있는 말투였지만 내가 느낀 그의 뒷모습과는 달리 표정과 말투에는 생기가 넘쳤다. 그리고 첫날처럼 건방진 태도는 아니었다. 내가 A대학에 입학한 것을 모르고 있는 사실이 이해가 안 됐으나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얼른 내 우산 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으면서 우산을 치켜들었다. 그의 손이 내 손을 스치는 순간, 나는 흠칫했다. 그는 근처 빵집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군말 한마디 없이 자석에 끌리듯 그를 따랐다. 그는 말을 참 잘했다. 자기 이야기도 줄줄 잘도 늘어놓았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여 삼 학년에 재학 중이라고 했다. 나보다는 나이가 무척 많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학교생활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뭐든지 서슴치 말고 물어보란다. 그의 유창한 화술에 말려들어 나도 이야기가 술술 잘 나왔다. 한마디로 말해 우린 서로 대화가 통한 것이다.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나를 비하하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데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진심 같지가 않고 괜히 한번 해보는 지나치는 말처럼 들렸다.
“대전에서 A대에 들어오기는 하늘의 별따기인데, 어떻게 네가 A대엘 붙었지? 고등학교 때 공부 잘했나 보네. 설마 보결생은 아니겠지? 사장님 성격에 자식을 뒷문으로 들여보낼 분은 아니지. 그리고 A대에는 보결생이 있을 수도 없고.”
마침 배가 고팠던 참이라 나는 콜라를 한 병과 커다란 빵 두 개를 후딱 먹어치웠다. 그는 껄껄 웃으면서 나를 놀리기까지 했다.
“아니, 여학생이 매력 없이 그렇게 막 먹으면 어떡해?”
이민우는 학교생활의 길잡이가 되어 나를 도와주었다. 법대 학생인 그가 내 전공인 물리학에도 아는 것이 많았다. 아니, 모든 분야에 다 박식했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 우린 가끔 만나 저녁도 같이 먹고 영화구경도 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엄격한 가정에서 틀에 박힌 생활을 했었다. 아버지는 큰 사업을 하는 대전의 유지였고, 나 또한 전교 수석을 놓친 적이 없는 그 집안의 외동딸이었기에 늘 행동의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서울의 A대에 들어간 다음부터 나는 제약받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도 맘대로 만날 수가 있어 좋았다. 만나면 만날수록 나는 점점 그에게 빠져들었다. 매일같이 그를 만나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더 그와 같이 있고 싶었다.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부모의 틀을 벗어난 것만도 양 어깨에 날개를 단 듯이 자유로웠는데 그를 알고부터는 공중을 내 맘대로 훨훨 날아다닐 수가 있었기에 온 세상이 내 눈 안에 있었다.
그는 대학 입시생들에게 과외공부를 시키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일을 시작한 후부터, 학비는 아버지 회사에서 지급해주는 반면, 생활비는 스스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었다. 학교 끝난 후, 항상 학생들 공부방으로 달려가야 했기에 우리는 데이트할 시간이 충분치가 못했다. 이민우보다도 항상 내가 더 몸이 달았었다.
이 학년으로 접어든 어느 날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주위는 이미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길가의 네온사인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히는 가운데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을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부산을 떨고 있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우리는 둘 다 하숙방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라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어딜 가는지 그는 계속 걸었다.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꾹 찌르고는 묵묵히 걸었다. 사람들의 인파가 어깨를 부딪치는데도 그는 내 손을 잡아주지도 않았다. 한참을 걷던 그는 가슴이 답답하다면서 “어디 조용한 데가 없나” 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민우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덕수궁이었다. 나는 밤에도 덕수궁이 문을 여는지 몰랐었다. 불을 어슴푸레 밝히고 있는 길을 따라 청춘남녀들이 손을 붙잡고 더러는 어깨를 감싸안으며 걷고 있었다. 어두운 숲속에서도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그날 밤, 구석진 벤치에서 그는 내게 조심스럽게 첫 키스를 했고, 그날을 계기로 우리의 사랑놀음은 서서히 시작되었다. 만나기만 하면 나를 만지려 했고 사람들의 눈이 없는 곳에선 얼굴이 화끈거리는 추한 짓도 서슴치않고 하려 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뿌리칠 수가 없었다. 한데, 우리에겐 한 가지 불문율처럼 되어 있는 철칙이 있었다. 이민우가 맘먹기에 따라 깨져버릴 수도 있는 철칙이었으나, 그것은 끝까지 잘 지켜졌다. 그는 룸메이트가 있었으나 나는 독방을 쓰는 하숙생이었다. 그러나 이민우는 한번도 내 방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었다. 하숙집 담벼락에 기대서서 나를 으스러지도록 껴안고 놓아주지를 않다가도 그대로 돌아서곤 했다.
덕수궁에 밤나들이를 원하는 그에게 "싫다"는 말로 대응을 했으나 결국 나는 숲속에서 그의 품에 안겨 있곤 했다. 하루는 아침나절인데도 덕수궁엘 가자고 했다. 과외도 쉬고 모처럼 자유로운 주말이라 종일토록 같이 있을 수 있다면서 그도 즐거워했다. 그날은 미술전시회가 있는 날이었다. 숲속을 지나면서 그는 싱긋이 웃으며 그윽한 눈길로 내 손을 꼭 쥐었다. 밤도 아닌데 숲속으로 가자 할 리 만무했지만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앞질러 뛰었다. 한참을 뛰어 대리석 계단에 올라 돌아다보니 그는 그 자리에 선 채 활짝 웃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바바리 코트를 걸친 모습이 참 멋있었다.
실내에 들어서니 국전에 입상한 작품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등의 작품들은 커다란 리본을 매달고 금테를 두른 번쩍번쩍 빛나는 액자 속에 들어 있었다. 원래 미술 작품에는 문외한인 나인지라 모든 게 낯설었다. 어떤 그림은 아름답다고 느껴졌으나, 어떤 그림은 어린아이가 낙서를 해 놓은 것 같았다. 자랄 때 엄마를 따라 음악회는 더러 가 보았지만 미술 전람회에는 간 기억이 없다. 문화생활을 하며 살긴 했으나 엄마도 아버지도 미술 쪽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림이 아닌 붓글씨도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대충대충 보고 지나쳤다. 작품에는 관심이 없고 이민우와 함께 전시회에 왔다는 그 자체에 관심이 집중되었었다.
나보다 조금 쳐졌던 그가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고, 이방 저방 기웃거려도 없었다. 보는 둥 마는 둥하고 출구 쪽으로 나왔는데도 그는 없었다. 언듯 초조함이 가슴을 스쳤다. 나는 거꾸로 다시 가면서 두리번거렸다. 한참 가다 보니 그가 어느 붓글씨 액자 앞에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잃어버렸던 아이를 찾은 것처럼 반가워서 다가갔으나 그는 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붓글씨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커다란 한문을 두 줄로 내리 쓴 문구였는데 나는 읽을 수도 없었다. 무슨 뜻이냐고 물으려고 하는데 뒤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이게 누구야. 이민우 아냐.”
그제서야 그는 나의 존재를 의식하고는 내게 잠깐 시선을 준 후,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얼른 돌아섰다.
“김 부장님, 오랜만입니다.”
이민우는 금세 딴 사람이 되어 만면에 희색을 띄고 김 부장이라는 사람에게 아주 반가운 어조로 인사를 했다. 김 부장은 내게 먼저 눈길을 주면서 “사장님 따님?”하고 이민우에게 물었다. 김 부장은 나를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인사해. 아버지 회사 총무부장님이셔.”
갑자기 가슴이 철커덩 내려앉았다. 도둑질을 하다 들킨 사람 모양 얼굴이 빨개졌다. 이민우랑 같이 있다는 자체도 문제가 되겠지만 남자를 사귄다는 것이 아버지 체면을 깎는 일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라 소문이 나 있었기에 더 그랬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다음, 저만치 앞서 가면서도 김 부장은 우리를 흘금흘금 훔쳐보았다. 같이 온 일행 역시 고개를 뒤로 빼고는 우리를 훑어 봤다.
그는 여전히 그림 감상에 몰두했다. 표정이 너무나 근엄해 아무것도 묻지를 못했다. 아니 나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어 나도 말이 하기 싫었다.
덕수궁을 나와서 우린 돌담길을 걸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걷기만 했다. 아버지의 노한 얼굴을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나 역시 아버지가 시커먼 돌덩이가 되어 가슴 한 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다. ‘덕수궁 돌담길’ 하면 데이트하는 한쌍의 아름다운 그림이 연상되건만 우리는 둘다 무거운 기분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걷고 있었다. 아침부터 하늘이 내려앉아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감돌더니 드디어 후득후득하고 빗방울이 떨어졌다.
내가 이민우와 자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우리가 얼마큼 가까운 사이로 지내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인데도 아버지의 진노는 하늘을 찔렀다. 이민우를 남자친구로서 사귄다는 것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안 된다고 했다. 가정환경이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났지만 사람 하나 똑똑하면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라는 것이 내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워낙에 어렵고 무서운 아버지라 잠자코 순종하는 척 했으나 조건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덕수궁 미술전시회에서 김 부장을 만난 후, 아버지가 곧 아시리라고는 각오했지만 이리도 강력하게 반대를 할 줄은 몰랐다. 똑똑한 이민우이니 아버지가 어느 정도는 수용을 하리라 믿고 있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의 아버지는 사장이고 그의 아버지는 일개 트럭 운전수이지만 그것은 그들의 직업이다. 인간은 다 평등하기에 직업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내겐 그런 조건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 항상 당당했고 자신만만했다. 나는 그런 그가 더 좋았다. 한데, 나중에 아버지가 그렇게 반대하는 아유가 딴 데 있다는 것을 어머니로부터 듣게 되었다.
첫째 이유는 본인인 이민우가 아버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어찌된 셈인지 아버지는 그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가 믿을 만한 녀석이 못 된다는 것이었다.
둘째 이유는 그의 아버지에게 있었다. 거짓말을 잘 하며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고 또한 부부싸움을 할 땐 아내를 두드려팬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 회사 야유회 때, 그 많은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아버지는 아내에게 손찌검을 했다고 한다. 그보다도 더 큰 이유는 딴 여자한테 아이까지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 역시 남편에게 맞을 짓을 하며 끝까지 바락바락 대든다는 것이다. 또한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일을 서슴치않고 하는 뻔뻔스러운 여자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본인은 똑똑하지만 그런 부모 밑에서 어떻게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았겠느냐고 어머니 역시 그를 못 만나게 했다.
그런 것은 내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악조건으로 등장한 그의 가정환경도 내게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런 부모를 둔 것이 그의 잘못은 아니잖는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얼마나 불행하게 자랐을까 하고 생각하니 나는 도리어 그가 불쌍했다. 내가 누려온 현실들이 미안하기까지 했다. 어깨에 가지런히 주름을 잡아 볼록하게 만든 원피스를 입고 발목 부분에만 레이스가 달린 하얀 양말에 까만 구두를 신고 엄마랑 아빠랑 같이 나들이를 할 때, 그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까? 그리고 헤드보드에 조각된 두 천사의 취침 나팔 소리를 들으며 날아갈 듯한 폭신한 양털 이불을 덮고 침대에 파묻혀 있을 때, 그는 딱딱한 바닥을 등에 지고 잠못 이루고, 뒤척이며 밤을 지냈을지도 모른다는 그림을 그려보면서 가슴 아파한 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그를 잘못 본 것도 내겐 아버지의 실수 같았다.
그와 계속 만나고 있는 것을 눈치 챈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그리고 계절은 빠르게 흘러 그도 나랑 같은 학교에 유학을 왔다. 그는 나를 따라온 것은 아니라고 했다. 사법고시에 낙방을 해 미국으로 현실도피를 한 것이라 말했다. 부모와 동생들이 언제나 자신의 어깨에 잔뜩 매달려 있어 걸음조차 떼놓을 수가 없어 그 짐 덩어리를 바닥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고시에 낙방을 한 후,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세상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자신의 힘으로 날개를 달아 바다를 건널 수밖에 없었다고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그는 그동안 내가 까마득히 몰랐던 아버지 소식을 전해주었다. 나는 아버지의 사업이 좀 부진하다고만 생각했지 아주 파산을 한 것은 몰랐다. 빚에 몰려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채 피해 다니는 것도 몰랐다. 어찌할 줄을 몰라 울기만 하는 나를 그는 꼭 감싸안았다. 그의 품에 안기니 이 모든 시련과 고통을 그가 다 해결해 줄 것만 같았다.
“사업의 흥망은 정한 이치 아니니? 떠나기 전 날, 어머닐 잠깐 뵈었는데, 어떻게 해서라도 학비조달은 할 테니까 집 걱정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랬어. 아버지도 분명히 다시 재기하실 거야.”
그러나 그 후, 내겐 심장마비로 아버지 사망이라는 비보가 날아들었고,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머니마저 저 세상으로 가버리셨다. 불과 이 년 동안에 한평생을 살아도 격지 못할 비극을 나는 체험했다. 허지만 그가 내 곁에 있었기에 나는 그 비극을 딛고 일어설 수가 있었다. 부모처럼 그를 의지했고, 남편처럼 그를 믿고 따랐다.
우리는 학교에 적을 둔 채 일을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졸업은 자꾸만 멀어져갔다. 미국에 온 후 그는 전공을 공과 쪽으로 바꾸고 다시 시작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우린 둘 다 영주권이 없는 유학생이었기에 생활고로 인해 더 힘든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내게서도 점점 멀어져 갔다.
눈앞에는 자욱한 연기들이 날이 갈수록 짙어만 갔고, 가슴 속에도 연기가 쌓여 숨을 쉬어도 답답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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