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덴버

2009.11.11 13:47

이월란 조회 수:62


미역국




이월란(09/11/08)




오랜만에 미역국을 끓여 혼자 사흘 째 먹고 있다
산모처럼


느거 엄마도 너 낳고 미역국 묵었제
내세울 것 없는 농땡이들에게 입버릇처럼 던지던
중학교 국사선생님의 독설이 미역처럼 둥둥 뜬다


울 엄마도 날 낳고 미역국을 드셨겠지
내가 흡혈귀처럼 빨아 마신 당신의 피가
미역 한 줄기로 맑아지고 또 맑아지다 마침내 투명해져
전신이 눈물로만 도셨겠지


시골 조산원 온돌방마다
전투의 상흔처럼 부른 배를 이불 속에 숨기고
패잔병처럼 누워 있던 예비 산모들
전리품 같은 아이를 옆에 뉘고서야 포상처럼 받아 마시던
그 바닷말, 바다의 말


한 번씩 뜨거운 미역국을 한 사발 퍼먹고서
분내나는, 발가벗은 아기를 안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럼, 뱃속이 휭하니 비어버린 해산어미 같은 가슴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지막 말이
신생의 두 눈동자 속에 뜬금없이 새겨져 있을 것만 같아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459 나무와 조각가 이영숙 2009.11.17 54
7458 소통(疎通) 강성재 2009.11.16 49
7457 테스트 이월란 2009.11.16 60
7456 가을 죽이기 이월란 2009.11.16 65
7455 사랑의 기원起源 이월란 2009.11.16 31
7454 리크 leak 이월란 2009.11.16 48
7453 잠버릇(견공시리즈 47) 이월란 2009.11.16 61
7452 인사동을 걷다 박정순 2009.11.21 60
7451 추억 최상준 2009.11.16 66
7450 황혼이혼 강성재 2009.11.15 55
7449 로맨스? 그건 불륜 노기제 2009.11.15 40
7448 산타로샤에서 박정순 2009.11.14 47
7447 13월의 산책 강성재 2009.12.21 44
7446 여행의 목적 서용덕 2009.11.13 54
7445 말렝카 구자애 2010.02.19 69
7444 春泉이 가까웠나 보다 백선영 2009.11.11 30
7443 천정에 불빛 한 줄기 안경라 2009.11.14 55
» 미역국------------------------덴버 이월란 2009.11.11 62
7441 바람의 그림자 이월란 2009.11.11 61
7440 진화 이월란 2009.11.11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