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살이 겨울나기
2013.03.22 06:37
하루살이 겨울나기 / 이주희
**질경이가 뽀그르, 씨를 올리며 번져있는 배나무 아래를 지나자 풀냄새 가득한 아침 공기가 가슴속으로 밀려왔다. 집을 에워싼 회색빛 담장은 군데군데 밤이슬로 얼룩졌고, 실금이 나 있던 장독대 근처의 담벼락은 한 뼘이나 벌어져서 그 틈새로 이웃의 난초 잎이 끝 날을 세우고 들어왔다. 아무래도 사람을 불러 담을 새로 쌓아야 할까 보다. 대문으로 내려가는 둔덕에 밤나무는 알은 작아도 빛깔이 노랗고 단맛과 향이 강한 재래종이다. 봄철 내내 꽃을 피우더니만 이제는 이파리만 무성한 나뭇가지를 담 너머로 늘어트려 놓았다. 그녀는 한 무리의 새떼들이 재재거리며 날아가고 있는 야산을 바라보며 늘어진 운동복 바지 주머니 안에서 덜렁거리는 열쇠뭉치를 꺼내 윗옷 주머니에 넣었다. 남편은 대문 열쇠를 뽑아 현관 앞에 있는 화분이나 신발 흙을 터는 깔게 밑에 두라지만 그 방법은 연속극에도 나오는 것이기에 귀찮아도 가지고 다닌다. 이곳에 이사를 오고부터 시작한 산행이 어느덧 8년째다. 집안의 애경사(哀慶事)가 있는 날을 빼고는 별로 거르지 않았다. 숨이 차오를만한 비탈에 다다르면 가을에는 밤이나 도토리를 줍고, 겨울에는 작은 산 짐승들이 눈 위에 발자국이름을 찍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개발 때문에 통일로 주변지역은 여기저기 땅이 파헤쳐지고 있지만, 아직까진 푸릇한 곳이 더 많아 인적이 드문 곳에는 집 잃은 아이 같은 불안감이 적막하게 숨겨져 있다. 서쪽 방향 오솔길로 10 여분 가다 보면 보름 전부터 눈에 들어오는 오는 것이 있다. 아주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탁 의자다. 누군가 앉았었을 의자, 네 개가 한 조였을 것인데 굳이 저것 하나만을 여기까지 끌고 올라온 사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등판은 용의 머리가 새겨져 있고, 바닥은 네모진 고동색가죽으로 감싸졌으며, 다리는 사자의 발처럼 조각되어 있다. 겨우 살아남은 다리 하나를 세우고 산행하는 이들을 향해 삿대질하듯 웅덩이에 처박혀 있다. 의자 둘레로 산 쑥이 뿌리를 쑥쑥 뻗치며 자라나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그 옆 작은 구덩이에서 어른거리던 하루살이들이 오늘은 보이질 않는다. 솔 향이 흐르는 곳을 향해 가노라면, 불끈 쥔 힘줄처럼 뿌리를 땅 밖으로 솟구친 큰 소나무가 있다. 흙이 깎여나가 털 뽑힌 닭 모양새가 되어가는 무덤도 나온다. 성묘객을 대신하듯, 개미들만 소리 없이 분주히 오고 간다. 산은 통일로가 보이는 곳에서 끝이 난다. 여러 개의 비닐하우스가 산자락 밑까지 들어차 있는 그 앞 도로변에는 ‘도태전문식당’이 있다. 원래의 식당이름은 ‘동태전문 식당’이었으나 지난 겨울바람에 '동; 자의 'ㅇ' 받침이 뜯겨나가서 ‘도태'가 된 것이다. 여러 날이 지났건만 주인은 고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녹색 지붕을 한 식당 뒷마당에는 얼기설기 만들어진 닭장과 얼룩진 술병,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긁혀진 밥상들이 먼지를 쓰고 포개져 있다. 한쪽 끝을 땅바닥에 대고 긁어줘야 열리는 뒷문 밖에는 폐타이어들이 솜씨 없는 아낙네 바느질처럼 삐뚤빼뚤, 밭과 뒷마당을 구분 지어 묻혀있다. 버드나무는 그 중간에 있다. 삐딱하게 서서 넓은 그늘을 드리우며 한 아름 되는 밑동에 고물 오토바이와 개 묶어 놓은 줄을 두어 번 휘감고 있다. 저 나무에 붙들려 앉아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지나는 차를 바라보는 개의 이름은 ‘깜씨’다. 첫눈 내리던 재작년, 내 집 근처로 와있던 것을 식당주인이 깜씨라고 부르며 끌고 간 적이 있다. 온몸의 털이 먹처럼 검고, 하얗게 둥근 달이 가슴 중앙에 새겨진 멋진 개다. 식당영업이 되지 않고부터 주인의 관심도 멀어졌는지 털이 잔뜩 뭉쳐지고 꾀죄죄해 졌다. 발길을 동쪽 비탈로 돌리면 쌀가마니만 한 크기의 물개 바위가 나온다. 그 위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가던 곳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지나쳐버린다. 실지렁이 같은 혀를 날름거리며 바위 밑으로 기어드는 꽃뱀을 보고 나서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내뺀 후론 발걸음이 빨라지는 곳이다. 길섶에는 팔 벌려 길을 가로막는 잔 목들이 있다. 자기들만이 살아가는 세상이니 들어오지 말라며 거미줄도 쳐놓는다. 밀치며 가지만, 다음 날은 회초리 바람까지 내세우며 더 길게 끝을 갈아 달려든다. 시야가 트이며 시작되는 오르막길, 저벅거리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난다. 바라보니 한 사내가 마주 걸어오고 있다. 그런데 언뜻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붉은 고무 칠이 돼 있는 목장갑에 들려있는 낫이다. 섬뜩하다. 빛바랜 푸른 색 와이셔츠에 카키색 면바지, 입을 가린 마스크에 구질구질한 등산모를 눌러썼다. 신체 부위 중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것은 금빛 안경테 안에서 빛나고 있는 눈동자뿐이다. 낫으로 산행에 거치적거리는 넝쿨이나 나뭇가지를 쳐내며 내려오는 것도 아닌 듯, 앞만 보고 성큼성큼 내려온다. 외길에서 도망가자니 좀 우습고, 지나치자니 소름이 돋는다. 비껴가는 사람의 눈길을 피하려고 시선을 아래로 두고 태연하게 발걸음을 내딛지만, 스치게 되는 상황에 이르러선 자신의 심장 소리가 천둥을 치는 것처럼 크게 들린다. 드디어, 엷은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는 사람, 체격이 왜소하게 느껴진다. 키도 그리 큰 것 같지 않다. 마스크로 가려진 입가에 뜻 모를 웃음을 지었을 것만 같고, 갑자기 등을 돌려 달려올 것 같아 오금이 저려 온다. 그저 상대와 멀어지는 간격을 발걸음소리로 가늠해 본다. 행여 저 사람을 마스크 벗은 얼굴로 공공장소에서 마주친다면? 아마도 그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왜소한 키에 눈빛뿐 일 것이다. 숨이 가쁘다. 평소보다 비탈이 높아 보인다. 그녀는 상 정상에서, 올랐던 길로 내려가는 것이 두려워 한참을 돌아내려 갔다. 그리곤 집으로 돌아와 시간표를 다시 짰다. 새벽 산행은 피하고, 개를 꼭 데리고 다니기로 작정했다. *남들에게만 있을 줄 알았던 암 수술을 받고 퇴원해서 불광동 집에서 지냈던 겨울은 끔찍한 나날이었다. 내가 암이라니! 낮에는 잡다한 생활 반복으로 그냥저냥 지내다가도 밤만 되면 암이라는 말 자체도 용서되질 않아 괴로웠다. 정신적 고통이 육체적 고통보다 컸다. 불면 속으로 피를 말리는 시간은 면도날을 들고 들어와 잠과 체중을 베어 갔다. 건강에 자신하던 오만이 수그러들면서 신경은 예민해졌다. 전에는 지나치던 소소한 것들이 들리고 보였다. 바로 위층에서 아래로 물 내리는 소리도 그중 하나다. 물 내림 한층 가깝게 들리는 베란다 벽에는 손 맵시 좋은 남편이 엮어놓은 무청 시래기가 흐트러짐 없이 말라갔다. 타일바닥에는 세 식구 겨울나기 위한 김장 항아리 몇 개, 시어머니 생전에 예뻐 사셨다는 소금 항아리 위엔 양은쟁반이 얹혀있다. 국화꽃 그림이 닳아 이제는 얼룩이 남은 쟁반에는 무딘 칼에 손가락을 베며 길쭉길쭉 썰어놓은 무말랭이와 붉은 고추 몇 개가 벌레처럼 널려 있고, 에어컨에서 쫓겨나온 선풍기 상자는 접힌 빨래걸이 뒤에서 여름을 보냈다. 바람은 끊임없이 휘파람을 불며 창가에 매달리고, 메마른 낙엽은 가로수나 벤치 곁에서 온몸을 키질하며 뒹굴었다. 시계의 분침도 어느 사이 멈추어 있었으며 출근 전에 남편이 켜놓은 TV는 온종일 저 혼자 떠들었다. 스포츠용품 가게를 하는 남편은 몇 년 전만 해도 연예계에서 제법 이름이 나 있던 사람이었다. 대학 동문과 산악자전거를 타다 입은 부상 때문에 그 세계로 복귀하질 못했다. 미련이 많이 남아있어서인지 어쩌다 연예계 친구들을 만나고 오는 날이면 거울 앞에 서서 표정 연기를 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녀가 통원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오니 그 시간이면 직장에 있어야 할 아들이 퇴근하여 집에 있었다. “강우야, 무슨 일 있니?” 라고 물었더니 시무룩한 얼굴로 경호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경호는 아들의 초등학교 교실에서 앞줄에 앉았던 코 흘리기 친구다. 수줍음을 잘 타고 말도 별로 없던. 서로 다른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소식이 끊겼다가 근래에 다시 두어 번 본 것이 전부였다. 며칠 전, 전화를 걸어와 만나자고 하던 것을, 별로 바쁜 일도 없이 미뤘다고 했다. 그것에 대한 자책감에 괴로워했다. 경호는 아버지와 단둘이 지냈다. 어려서는 별 탈 없이 자라다가 중학생이 되고부터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주로 굴러가는 것에 집착해서 처음에는 아이들이 차고 노는 공을 집어 들고 달아나던 것을, 세워둔 자전거를 타고 달아나고, 그러다가 키가 꽂혀있는 오토바이만 보면 잡아타고 돌아다니다가 기름이 떨어지면 아무 데나 버리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는 것이다. 사고가 날 때마다 친구 아버지가 찾아가 사과를 드리고, 자식에게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지만, 며칠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그래서 결국 학교마저 다닐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일 저 일로 식구에게 다가온 겨울은 바뀌지 않는 지문처럼 버텼지만, 그 길고 불편한 허물을 봄의 문턱에 가까스로 벗어냈다. 그녀는 곰삭아버린 배추김치 한 폭을 꺼내 냄비에 옮겨 담고 들추어낸 우거지를 제자리에 집어넣고 꼭꼭 눌렀다. 불현듯, 외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담근 김장을 올겨울에 먹을 수 있으려나? 김장이 익기 전에 하나님이 부르시면 떠나야 할 텐데.”라고. 하시던 할머니는 그 후로도 여러 번 김장하셨고, 김장할 때마다 똑같은 말씀을 하시다가 92세 되시던 가을에 세상 끈을 놓으셨다. “그래! 우리의 내일은 아무도 몰라, 나도 살게 되면 살고, 죽게 되면 죽으리라! 이 집을 떠나 마음먹고 새로운 인생을 한번 살아보자.” 마음을 그리 먹으니 당장 이 집을 떠나야만 하는 것처럼 마음이 바빠졌다. 무엇보다 남편이 반가워했으며 아들도 식탁으로 나와 밥에 물을 말아 묵은지를 먹었다. 순풍에 돛단배처럼, 아파트도 순조롭게 팔렸으며 모든 것이 석 달여 만에 처리되어 지금의 집으로 옮겨오게 된 것이다. 그녀는 지나간 겨울을 생각하며 안방으로 들어왔다. 친정오빠의 가구공장에서 가져온 단풍나무옷장의 문을 열었다. 예전 것보다 훨씬 여닫는 소리가 부드럽고 가볍다. 자신이 서랍 정리를 자주 하게 된 계기는 대수술 할 날짜를 받아 놓은 후부터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훗날을 기약할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이 살아온 흔적을 남기거나 지워버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쓰는 좌측 칸엔 속옷이 차곡차곡 접혀있다. 둘째 칸을 열어보니 줄지어 놓았던 밤색 양말 한 켤레가 구겨져 나와 옆줄 흰 양말 줄에 걸쳐져 있다. 아마도 오늘 낮에 장례식에 가느라 서둘러 옷을 갈아입는 남편에게 검은색 양말을 꺼내주며 헝큰 모양이다. 줄을 맞춰 집어넣고 맨 아래 칸을 열었다. 지난번 서랍 정리 때는 눈에 띄지 않던, 옅은 밤색바탕에 이름 모를 꽃이 듬성듬성 피어있는 원피스가 눈에 들어온다. 설레는 가슴으로 캐나다에서 고국 방문 온 언니가 입었던 옷이다. 자신에게 덜미를 잡혀 병시중 들어줄 때도, 수술을 무사히 끝내고 나서 펑펑 울어줄 적에도 입었었다. 콧날이 시큰해지더니 꽃무늬 위로 툭,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입고 있던 운동복을 벗고 그 옷으로 갈아입은 뒤, 주방으로 갔다. 녹차 한잔을 만들어 식탁 위에 올려놓고 한 모금씩 마시며 편지를 썼다. 시력이 나빠진 친정어머니께는 읽기 편하도록 큼직하게 글자를 써서 안부를 여쭙고, 어머니와 함께 사는 언니에겐 자신의 건강상태와 오빠의 소식과 그리고 남편과 아들 강우의 안부도 써넣었다. 항공우편 봉투에 주소를 적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초상집에 가 있는 남편에게서 온 것이려니 했는데 광고전화였다. 늦은 시간에 오는 전화는 항시 가슴에 바람을 우~하고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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