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음의 자리에서

2006.03.06 16:29

김영교 조회 수:60 추천:2

하늘과 땅사이
마른 가슴 있는대로 다 열어 재끼고
빗물 받으러 문밖에 나 앉는다

옆에는
기다림에 전부를 맡긴
크고 작은 몸집의 실내 화초들
아무리 목을 뽑아도 여전히 작은 키

세상이 다 젖어드는 주말 오전
화분은 작게 젖고
그리움 크기만큼 젖어드는 나
아랫 마을로 나드리 간 겉옷마저 푹 젖어
쭉 짜지는 물기
뚝 뚝

문득
악보가 건반 위에서
아름다움을 조률하더니
유리창 두들기는 소리
품에 품었다 되팅겨 내 보낼 때
증폭되는 힘이 싱싱함을 흔들어 댄다

활력과 생동감은 앞, 뒷바퀴
탄탄하게
늘 거기있어
비오는 날은 함께 젖음에 들어가
끝까지 푹 빠지도록 비워낸다

나를 가둔 고마운 빗줄기
새벽부터 화초들 자리 돋구며
뻐뻣한 목이 나도 모르게 부드럽게 굽혀져
흙 저미어지듯 잘게 부서지는 자아
흠뻑 젖어 생명물 오를 때
나는 없어지고 그만 하나가 된다

가진 것 누리게 하는 저 시커먼 하늘이
속마음은 절대 껌지 않다는 것을
화초들 사이에 앉아 보고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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