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피스,멤피스!

2007.04.25 07:39

고현혜(타냐) 조회 수:48 추천:5

테니시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해야하는 딸아이는 엘비스 프레슬리 선글라스를 쓰고 막내동생을 청중으로 앉혀놓고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 아이 덕분에 우리는 그 주에 대해서 많은것을 알게 되었다.

테니시의 꽃은 아이러스, 새는 마킹버드, 나무는 튤립 포풀라 그리고 동물은 라쿤. 컨츄리 뮤직의 발상지인 내시빌이 수도이다. 내 귀가 솔깃해진 건 아이가 멤피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였다.

"멤피스에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던 그래스 랜드가 있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 당한 곳이며 블루스의 시초가 된 빌 스트리트가 있다."

아 가만가만. 그곳엔 오프라 윈프리를 닮은 내 친구 알리스도 있다. 알리스를 만난 건 대학교 기숙사에서 였다. 아마 10살이란 나이 차이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친한 친구 사이가 된 것은 서글서글 하면서도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그녀의 성격 때문이였을 것이다.

알리스를 마지막으로 본 건 15년 전, 흑인이 별로 없던 우리 학교에서 그녀는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고 중국에 교수로 떠났을 때였다. 어쩌다 연락이 끊어져 버리고 말았는데 지금은 고향인 멤피스로 돌아와 고등학생을 가르치고 있다고 얼마전 연락이 온 것이다.

봄방학을 이용해 나는 딸과 단둘이 멤피스로 가는 비행기에 사뿐히 몸을 실었다.
우리 모녀에겐 상당히 친절한 흑인 승무원이 옆에 앉은 백인남성에겐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지적을 하는 모습에는 왠지 긴장감까지 느껴졌다.

멤피스에 도착하자 아이는 두리번 거리며 아시안은 우리 밖에 없다고 소근거렸다. 우리를 반색하며 맞아주는 알리스. 우리는 어제 만났다 헤어진 것 처럼 15년의 공백이 무색하게 하나도 낯설지가 않았다.

그 유명한 남부의 친절, 이른바 '서던 하스피탈리티(Southern Hospitality)'를
체험 하라는 듯 알리스는 친구까지 동원해 음식을 만들어 냈고 아침마다 스타벅스에 가서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와 나를 즐겁게 했다.

어디 그 뿐인가. 왕초기질이 있는 그녀는 친구 조카 그리고 아이들을 동원해
함께 그래스 랜드를 가자고 했다. 쏟아지는 빗속에 간 엘비스 프레슬리의 집. 무려 한시간 반을 기다려 엘비스의 집을 볼 수 있었다. 헤드폰 속에서 엘비스가 '웰컴 투 마이 월드'라는 노래를 아주 감미롭게 불러준다.

우리가 가장 감동 받은 곳은 민권 박물관(Civil Rights Museum)이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형편없어 보이는 모텔(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한 곳)이었지만 그 안에는 정말 놀랍게 흑인의 역사를 잘 전시, 기록해 놓았다. 우리는 그 유명한 로자 팍스(민권운동의 단초를 제공한 흑인여성)가 앉아 문제가 되었던 버스에 올라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녹음으로, '일어나 뒤로 가라'는 백인 운전자의 치욕적인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만일 로자 팍스였다면, 주인이 나의 아내를 데리고 나가도 단 한마디 말을 할 수 없었던 노예였다면....
순간 나는 어젯밤 빌 스트릿에서 블루스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흑인들의 마음이나, 비행기 승무원의 철부지 같던 행동도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댕큐 유 베리베리 마치." 엘비스의 흉내를 내며 스피치의 마지막을 장식하겠다는 아이의 말을 들으며 나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등과 자유를 위해 희생하신 모든 분들께, 다시 친구를 만날 수 있었음에, 그리고 딸과 평생 공유할 수 있는 귀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것에,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는 많은 것에 '댕큐 유 베리베리 마치.'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07년 4월 23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