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상복으로 입고
2007.05.17 06:20
아픔을 상복으로 입고 (소설을 쓰지 못하는 이유) 6/5/2000
시도 때도 없이 죽은 그 친구가 생각난다는 것은 당혹스런 일이었다. 옷장을 열면서도 그녀를, 신문을 보면서도 그녀를 생각한다. 그 친구는 여기에 걸린 이 옷을 좋다고 했지. 왜 그때 그 옷을 훌렁 벗어주지 않았을까. 이런 옷 쯤 열벌 스무 벌이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그러나 그 생각은 틀렸었어, 절대로 틀리고말고.
오래 전 일이다. 미국에 들어오는 인편에 친구는 내게 돈 팔백 불을 보내왔다. “아빠가 쌘프란시스코에서 팔백 불에 사 온 옷이 너무 좋아서 너도 그런 옷 하나 사 입으라”고. “웬 돈을...”하며 인사를 하는 내게 말했다. 나는 마땅히 그녀가 좋다는 그 옷을 그 때 벗어 줘야 했었어, 또 후회한다.
금년에는 IMF의 한파도 가시고 한국의 관광객이 물 밀 듯 밀려온다고 보도되었다. 그 기사는 내 마음을 다시 흔들어 놓았다. 아무리 많은 발길들이 들락거려도 거기에 묻어 올 아끼는 사람의 모습이 영원히 빠졌다는 사실은 참기 힘든 허탈과 상실의 슬픔을 몰고 왔다.
지금은 모르는 사람끼리도 인터넷으로 접속을 한다는데 나는 그녀와 어떻게... 친구와 연결되는 어떠한 접속이라도 갖고 싶었다. 한 가지 길이 생각났다. 과거 한 두 번 만난 적이 있는 그녀의 외사촌 동생을 만나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모습을 거기서 찾고 싶었고, 그녀에 대한 얘기가 듣고 싶어서였다. 수소문해서 불러냈다.
아침부터 서성거리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그 여자를 기다렸다. 여자가 나타났다. 친구와는 전연 다른 인상인 것에, 그랬었는가 하며 깜짝 놀란다. 여자에게 그리 많은 기대는 갖지 않았지만, 그래도 핏줄이 섞인 인척이니 친구의 모습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바랬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완전히 어긋났다. 강 건너에 딩구는 한 덩이의 돌맹이었다. 친구와 연결되는 영상은 내 온 추리를 동원해도 없었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외사촌 동생은 그 외사촌 언니를 그리 좋게 말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내가 간직한 친구와의 진한 인연과 아름다운 추억을 연상 막대로 휘적이고 있었다.
돌아오면서 차 속에서 생각했다. 그래 친구에게는 그녀가 말하는 그런 점들이 있기는 했었지. 그러나 그것이 장점이지 단점이 아니라고 생각해 온 나다. 어쩌면 사람이 사람을 보는 관점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을까, 놀라고도 슬펐다.
친구가 세상을 뜬 후, 그녀가 왜 그렇게 갑자기 갔을까 하는 것이 너무 궁금했었다. 그러나 그것을 전화로 물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남편에게 표할 조의의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선생님, 어떻게 지내십니까?” 조의로서는 너무 담담한 어투다. “선생님, 퍽 힘이 드시지요.” 이것은 지나친 간섭이다. “선생님, 참 인간무상입니다.” 저 여자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누가 그것을 모르나. 이러다 보면 친구를 잃은 슬픔도 전하지 못한 채 차라리 입을 다물고 만다. 부인이 하도 빈틈없고, 넘치는 재치와 아름답기까지 하니 사람들은 그와 비례한 말을 찾지 못하고 벙어리가 된다. 아! 너와 바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는 많게 적게 이 친구에 대해 네 번 째 글을 쓰고 있다. 내 머리 속에 많은 쓸거리를 준 사람이다. 그녀가 좀 더 살아 주었다면 또 내가 미국에 와서 삼십 년을 떨어져 살지 않았어도 그녀에 대한 얘기꺼리는 장편 소설을 쓰고도 남았을 것이다. 해학도 남다르며 흥미진진한 그녀의 인생 항로는 글로 써 볼만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글 쓰는 일, 한 인물을 놓고 글을 쓰는 일을 시도할 때 거기에 어느만큼 살을 붙여 써 나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그렇게 살을 붙어 써 나가는 동안 어느새 다른 사람을 그려 놓는게 아닐까 하는 기우는, 그래서 그녀를 그르게 할 수도 있다는 배려로 소설 쓰기를 포기했다 하면, 소설을 못 쓰는 이유가 되어 참 좋다. 가끔 사람들은 수필 같은 부스렁이 글을 쓰지 말고 소설을 써 보라고 권한다. 됐다! 이제부터는 소설 쓸 재질이 없다는 말은 접겠다. 소설을 쓰고 싶지만 아끼는 친구의 영상에 손상을 입힐까 무서워, 그래서 그런 좋은 소재가 있어도, 소설을 쓰지 않기로 했다고 대답하면 되겠다.
그녀가 내게 남긴 수많은 추억은 내 마음속에 담긴 소설책이다. 나는 그것을 그녀가 그리울 때면 한 장 씩 넘기고 있다. 가끔은 기쁘게 가끔은 슬프게 그 장을 넘길 때마다 웃고 울고 한다. 내 소설 감이 된 인생을 산 내 이 소중한 친구, 그 친구를 잃은 아픔을 상복으로 입고 오늘도 그녀를 그리며 산다.
시도 때도 없이 죽은 그 친구가 생각난다는 것은 당혹스런 일이었다. 옷장을 열면서도 그녀를, 신문을 보면서도 그녀를 생각한다. 그 친구는 여기에 걸린 이 옷을 좋다고 했지. 왜 그때 그 옷을 훌렁 벗어주지 않았을까. 이런 옷 쯤 열벌 스무 벌이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그러나 그 생각은 틀렸었어, 절대로 틀리고말고.
오래 전 일이다. 미국에 들어오는 인편에 친구는 내게 돈 팔백 불을 보내왔다. “아빠가 쌘프란시스코에서 팔백 불에 사 온 옷이 너무 좋아서 너도 그런 옷 하나 사 입으라”고. “웬 돈을...”하며 인사를 하는 내게 말했다. 나는 마땅히 그녀가 좋다는 그 옷을 그 때 벗어 줘야 했었어, 또 후회한다.
금년에는 IMF의 한파도 가시고 한국의 관광객이 물 밀 듯 밀려온다고 보도되었다. 그 기사는 내 마음을 다시 흔들어 놓았다. 아무리 많은 발길들이 들락거려도 거기에 묻어 올 아끼는 사람의 모습이 영원히 빠졌다는 사실은 참기 힘든 허탈과 상실의 슬픔을 몰고 왔다.
지금은 모르는 사람끼리도 인터넷으로 접속을 한다는데 나는 그녀와 어떻게... 친구와 연결되는 어떠한 접속이라도 갖고 싶었다. 한 가지 길이 생각났다. 과거 한 두 번 만난 적이 있는 그녀의 외사촌 동생을 만나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모습을 거기서 찾고 싶었고, 그녀에 대한 얘기가 듣고 싶어서였다. 수소문해서 불러냈다.
아침부터 서성거리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그 여자를 기다렸다. 여자가 나타났다. 친구와는 전연 다른 인상인 것에, 그랬었는가 하며 깜짝 놀란다. 여자에게 그리 많은 기대는 갖지 않았지만, 그래도 핏줄이 섞인 인척이니 친구의 모습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바랬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완전히 어긋났다. 강 건너에 딩구는 한 덩이의 돌맹이었다. 친구와 연결되는 영상은 내 온 추리를 동원해도 없었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외사촌 동생은 그 외사촌 언니를 그리 좋게 말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내가 간직한 친구와의 진한 인연과 아름다운 추억을 연상 막대로 휘적이고 있었다.
돌아오면서 차 속에서 생각했다. 그래 친구에게는 그녀가 말하는 그런 점들이 있기는 했었지. 그러나 그것이 장점이지 단점이 아니라고 생각해 온 나다. 어쩌면 사람이 사람을 보는 관점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을까, 놀라고도 슬펐다.
친구가 세상을 뜬 후, 그녀가 왜 그렇게 갑자기 갔을까 하는 것이 너무 궁금했었다. 그러나 그것을 전화로 물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남편에게 표할 조의의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선생님, 어떻게 지내십니까?” 조의로서는 너무 담담한 어투다. “선생님, 퍽 힘이 드시지요.” 이것은 지나친 간섭이다. “선생님, 참 인간무상입니다.” 저 여자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누가 그것을 모르나. 이러다 보면 친구를 잃은 슬픔도 전하지 못한 채 차라리 입을 다물고 만다. 부인이 하도 빈틈없고, 넘치는 재치와 아름답기까지 하니 사람들은 그와 비례한 말을 찾지 못하고 벙어리가 된다. 아! 너와 바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는 많게 적게 이 친구에 대해 네 번 째 글을 쓰고 있다. 내 머리 속에 많은 쓸거리를 준 사람이다. 그녀가 좀 더 살아 주었다면 또 내가 미국에 와서 삼십 년을 떨어져 살지 않았어도 그녀에 대한 얘기꺼리는 장편 소설을 쓰고도 남았을 것이다. 해학도 남다르며 흥미진진한 그녀의 인생 항로는 글로 써 볼만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글 쓰는 일, 한 인물을 놓고 글을 쓰는 일을 시도할 때 거기에 어느만큼 살을 붙여 써 나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그렇게 살을 붙어 써 나가는 동안 어느새 다른 사람을 그려 놓는게 아닐까 하는 기우는, 그래서 그녀를 그르게 할 수도 있다는 배려로 소설 쓰기를 포기했다 하면, 소설을 못 쓰는 이유가 되어 참 좋다. 가끔 사람들은 수필 같은 부스렁이 글을 쓰지 말고 소설을 써 보라고 권한다. 됐다! 이제부터는 소설 쓸 재질이 없다는 말은 접겠다. 소설을 쓰고 싶지만 아끼는 친구의 영상에 손상을 입힐까 무서워, 그래서 그런 좋은 소재가 있어도, 소설을 쓰지 않기로 했다고 대답하면 되겠다.
그녀가 내게 남긴 수많은 추억은 내 마음속에 담긴 소설책이다. 나는 그것을 그녀가 그리울 때면 한 장 씩 넘기고 있다. 가끔은 기쁘게 가끔은 슬프게 그 장을 넘길 때마다 웃고 울고 한다. 내 소설 감이 된 인생을 산 내 이 소중한 친구, 그 친구를 잃은 아픔을 상복으로 입고 오늘도 그녀를 그리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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