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넘어간 집의 은행나무

2007.10.20 03:28

장정자 조회 수:40 추천:1

그 집을 처음 살 때는 꽤 행복했으리라
마주보는 은행나무 있어
그 밑에 자리한 테이불은 유리같이 맑은 기쁨이 영글었고
그것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다
감나무는 실하게 열매 맺어 보기에 좋았고
맛있어 이웃과 함께 무엇이나 풍성한 것이 좋았고 또 좋았다

은행나무가 은행에 넘어갔다

나무는 누군가 돌보지 않아 시들어 가고
겨우 비가 와야 곧추 서는데
켈리포니아는 비에 인색했다  
누군가 물 주지않아 목이 타들어갈 때
집은 은행에 넘어가지만
나무들은 주인의 사정을 몰랐다
그냥 애타게 물을 기다릴 뿐

오늘도 내일도
몇달을 기다리다
할 수없이 생을 마지막 정리할 때 쯤
누군가의 손에 패여 다른집으로 옮겨갔다
아프고 아프지만 주인의 행방을 알 지 못하고
언제 돌아와서 쓰다듬어 줄 기약도 없이
다만 생명이 있음으로
물을 주는 기다림을 면하고
버티고 있다

주인은 언제 그 집을 되찾을 수나 있는지
마음이 얼마나 처참한지는 모르지만
은행나무는
감나무가 어떻게 안 죽고 사는지도 궁금했다
홀로 떠나올 때 모든게 시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무화과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여러가지 계절마다 주인을 기쁘게 했던 꽃들은
은행에 힘없이 넘어갔을까
아니면 바람에 흩날려 가버렸을까

은행에 넘어간 집의 나무들은 한없이 아프다 주인과 함께.
                                              장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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